가끔은 아주 놀라운 결과를 만나기도 한다
‘시골 생쥐와 도시 생쥐’라는 동화책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도시에 처음 가본 시골 쥐가 고개를 한껏 들고 입을 떡 벌린 채 도시의 고층 빌딩들을 바라보던 장면. 시카고에 처음 갔을 때, 그 모습은 꼭 내 모습 같았다. 서울 강남이나 여의도에서 보았던 20층 남짓의 빌딩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스카이라인을 가득 채운 마천루들을, 마치 추앙하듯이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 교환 학생으로 처음 들었던 수업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규모 오페라 공연장처럼 복층으로 된 거대한 규모의 강의실. 주황색 턱수염의 교수님이 1시간 반 정도 강의를 했다. 수업이 끝난 뒤 나는 상기된 표정과 먹먹한 마음으로 강의실을 걸어나왔다. 90분 동안 도대체 어떤 주제에 대해 강의를 한 건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같이 수업을 들었던 한국인 친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영어로 진행된 수업이었지만, 마치 생전 처음 접하는 아랍어로 수업을 듣고 나온 기분이었다. 조금, 아니 많이 막막했다. 과연 이 낯선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컴포트 존’(Comfort zone)을 벗어난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전략적으로 친구를 사귀겠다는생각은 없었다. 편하고 안전하게 느껴지는 한국 사람들과 대부분 어울려 다녔다. 학기 중간에는 수십 명의 외국인 학생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했다.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배심원들 앞에 서는 기분이 이런 걸까 상상해보았다. 그 당시, 내 영어를 제대로 알아들은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었을 거다. 하지만 놀라웠던 것은, 내 모습을 보며 딴청을 피우는 사람도 없었고, 무시하는 눈빛을 보내는 사람도 없었다는 점이다. 부끄러움이나 두려움과 같은 감정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학기 말 평가는 서술형 시험이었다. 강의 이해도가 낮다 보니, 책을 읽고 암기하며 무식하게 공부할 수 밖에 없었다. 시험 문제를 보자마자, 공부했던 내용들이 마치 퍼즐처럼 연결되며 생각났다. 시험지의 자투리 공간까지 빼곡히 채워 내가 아는 것을 적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확한 정답을 많이 알아서라기보다는, 양으로라도 어떻게 만회해보려는 본능에 충실했던 것 같다. 1-2주 후, 채점 결과를 받는 날. 이름이 호명 되길 기다리며 두군 거렸다.
100점 만점에 120점.
아주 묘한 감정이 들었다. 우리는 늘 100점을 기준으로 삼고, 최대한 그에 가까운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어렸을 때 1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으면 칭찬 받았던 기억, 만점을 받았던 과목은 더 기쁘고 뿌듯했던 기억들이 있다. 하지만, ‘100점 이상’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었다. 만점을 넘는 점수를 받았음에도, 오히려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왜? 120점을 주었을까.? 100점이 아니라 120점인 이유는 무엇일까?’
정곡을 찌르는 정답이 아닌 불필요한 내용을 썼다면, 오히려 감점이 되었을 수도 있다. 나의 가치를 누군가가 오롯이 인정해 준 거 같은 느낌. 그 교수님에게 이상한 ‘충성심’같은 감정마저 생겼다.
우리는 항상 평가를 받고, 평가를 하며 살아간다. 나 자신에 대한 절대적, 그리고 타인과의 상대적 평가를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타인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한다.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생기는 상대적 평가는 박탈감을 안겨 주기도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인정 받았을 때의 기쁨과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정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나와 함께 할 때 시너지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색깔과 가치를 알아봐 주고,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하면, 나도 모르고 있던 내 잠재력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