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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Oct 30. 2022

신분 때문에 울고 웃는 미국

미국에 정착하기 위한 필수 관문, '영주권'



21세기에 신분이 웬 말이람?


혹자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도 아니고 굳이 거창하게 신분이라고까지 표현하느냐?라고 말이다. 물론 내가 지금부터 말하는 '신분'이라는 단어에 담긴 뜻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바로 그 '신분'과는 다르지만 미국에서는 정말 '신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신분'이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미국에서 신분이 상징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잠시 설명하고자 한다.



미국에서의 '신분'에 담긴 의미

미국은 동양인, 흑인, 백인, 남미인 등 다양한 인종이 한데 모여사는 이민 국가인 만큼 비자 종류도 수없이 많지만 그만큼 불법체류자의 수도 어마어마하다. 미국과 국경이 인접한 멕시코에서는 지금도 매일 하루 평균 1,300명 이상이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온다고 한다. 미국에 입국해 합법적인 체류 기간이 지난 후 다시 돌아가지 않고 불법으로 계속 체류하는 사람들도 많다. 즉,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합법적으로 거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신분'의 의미는 통상적으로 넓게는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상태 혹은 비자를 가지고 있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영주권' 또는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을 '신분'이 있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미국에 살기 위해서는 이 '신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신분'때문에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는지. 이 '신분'을 얻기 위해 얼마큼 고군분투하는지. 물론 일부이긴 하지만 신분을 얻기 위해 미국 시민권자 혹은 영주권자와 오직 '서류상으로만' 결혼하는 남녀들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 신분을 얻기 위해 수년간 열악한 환경과 조건의 회사에서 자신의 법적 권리를 당당하게 누리지 못한 채 숨죽이며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소위 '영주권'을 볼모로 제대로 된 임금을 주지 않거나 오랜 기간 마음대로 고용인을 부리는 일부의 나쁜 고용주들도 있다. 이외에도, 미국에 살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것이지만 미국에는 한국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웃지 못할 인생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왜 사람들은 미국에서 '신분'을 얻고자 하는 걸까?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에는 불법체류자의 수가 정말 많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체류자도 운전면허와 소셜 번호(일종의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가 있으면 단순히 미국에서 살아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다만 미국 외의 국가로 출국'할 수는' 있지만 일단 한번 나가면 다시 미국으로 입국할 수 없기에 활동 범위가 미국 내로 국한된다. 또 신분이 없으면 일할 수 있는 회사 및 직업 선택의 폭이 굉장히 제한적이게 된다. 대부분의 미국의 회사는 합법적인 신분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 채용하기 때문이다. 쉽게 한 예를 들자면, 영주권이 없으면 미국에서 의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영주권 또는 시민권이 없으면 미국 의대 입학 가능성 자체가 희박하며 설령 학생비자로 힘들게 입학한다 해도 전문의가 되려면 인턴, 레지던트, 펠로우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병원에서 일을 하기 위한 취업비자를 스폰해주는 병원을 찾는 것 자체부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불법체류자 혹은 비자 신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세금 보고를 하지 않거나 Pay Check(급여명세서)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회사에서 일을 한다 하더라도 캐시를 받으며 일을 하거나 한정된 업종의 일만 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관공서, 학교, 병원 등을 이용할 때도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제약이 따른다.

그렇다면 '신분'이 있다면 뭐가 좋을까? 영주권 또는 시민권이 있으면 학비 및 장학금 혜택, 절세 효과, 다양한 복지 및 의료 혜택, 취업 및 비즈니스 기회 확대 등을 누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신분'때문에 수많은 세월 동안 울고 웃는 것이다.


결혼, 가족 초청, 투자, 취업 등 미국에서 영주권을 얻는 방법은 다양하다. 나 같은 경우는 회사에서 영주권 스폰서를 받아 취업영주권을 얻게 된 케이스이다. 그렇다면 만약 고용주 입장에서 영주권 스폰을 해주고 싶은 고용인인이 있다면 무조건 영주권 스폰을 해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모든 회사가 영주권을 스폰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 규모, 재정 상태 등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며, 그 기준에 따라 한 회사에서 영주권 스폰을 해줄 수 있는 고용인 수의 범위도 상이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미국 회사에서 오래 일했다고 해서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일단 회사에서 영주권 스폰을 받았다 해도 끝난 게 아니다. 그것은 끝과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고독한 여정의 시작일 뿐이다. 영주권을 진행하는 개개인이 처한 상황, 이를 테면 미국 입국 후 출국 횟수, 영주권 진행 전까지 어떤 비자로 합법적 신분을 유지해왔는지 등 이 모두 다르고 영주권은 미국의 정치(대통령의 성향과 정책에 따라), 사회(코로나 팬더믹과 같은)적인 요소에도 민감하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즉, 영주권을 받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영주권 획득은 영주권 진행에 소요된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 누구는 2년이 걸릴 수도, 누구는 몇 년 동안 Pending(미결) 상태로 희망고문이 계속될 수도 있다. 당연히 영주권 진행을 먼저 들어간 사람보다 나중에 들어간 사람이 영주권을 더 먼저 받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나보다 거의 10년 전에 미국에 오신 분이 영주권 인터뷰까지 보았지만 이후 계속 Pending 상태로 아직까지 영주권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한편 몇 년간 영주권 인터뷰 일정이 잡히지 않다가 작년에 극적으로 영주권 인터뷰 일정이 잡혀 미국에 온 지 10년이 넘어 비로소 어렵게 영주권을 딴 분도 있다. 또 코로나가 한창일 때, 대면으로 진행되는 미국 대사관의 영주권 인터뷰 일정이 무기한 지연되었는데 이 같은 상황에 영주권 인터뷰를 보지도 않았는데 바로 영주권을 받은 분도 있다. 이외에도 내 주위만 봐도 정말 다양한 케이스가 많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영주권은 신의 영역이다."라는 말까지 있다. 즉, 개인이 컨트롤할 수 없는 요인이 너무 많기 때문에 미국에서 신분을 얻고 못 얻고는 운명과도 같은, 신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미국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주권을 따기 위해 오늘도 맘을 졸이며, 울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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