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스물아홉, 결국 다시 미국으로 오게 된 이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뉴욕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바로 그날부터 뉴욕을, 미국을 늘 그리워했던 것 같다. 처음 뉴욕에 도착해 느꼈던 공기의 느낌, 살아있는 사람들의 표정, 분주함 속 자유로움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문화,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며 타인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외국인들의 모습. 그 모든 것들이 여전히 선명했다.
마치 기분 좋은 꿈을 생생하게 꾸었다가 깬 느낌이었다.
6개월 간의 뉴욕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말이다. '내가 정말 미국에 있었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처음 몇 주간은 현실에 적응이 되지 않았을 정도였으니까. 그만큼 뉴욕에서의 6개월은 강렬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난 재빨리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한국에서 나는 곧바로 취업준비생이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달콤한 기억은 잠시 뒤로한 채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남들은 회사로 출근할 때 나는 매일 아침 강남역 스터디 카페로 출근했다. 9개월간의 취업준비 끝 온라인 리테일 패션 회사의 MD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수십 번 낙방의 고배를 마시며 어렵게 입사한 회사였다. 그런데 왜인지 2년 3개월 간 회사생활을 하는 내내 전혀 행복하지가 않았다. 뉴욕에 있을 때는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느낌이었는데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회사생활에 뉴욕에서 반짝였던 열정의 불씨는 점차 꺼져가고 있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형용할 수 없는 답답함이 온몸을 감쌌다. 죽은 듯이 잠을 자도, 술을 마셔도, 사람을 만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건 오직 스스로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내겐 무언가 큰 전환이 필요했다. 그동안 아무런 의심 없이 지극히 평범한 루트를 따라 살아왔던 내 인생에 처음으로 회의와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정답이 아닌 나만의 해답을 찾고 싶었다. 이를 위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나는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언제 가장 행복했지?'
'나는 언제 가장 보람 있었지?'
질문은 단순했지만 답을 구하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은 끝에,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미국에 있었을 때'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해외'는 줄곧 내 마음속에서 꺼지지 않고 있던 불씨였다. 대학생 시절 뉴욕에 있었을 때 가장 나답게 느껴졌고 많이 웃었고 행복했다. 그렇게 나는 서른을 1년 앞둔 스물아홉, 다시 한번 더 미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에 대한 고민과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은 내려두기로 했다. 내 마음이 따르는 길을 가기로 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뒤엔 1초의 고민도, 한 톨의 미련도 없었다. 마치 긴 겨울을 지내고 따사로운 봄햇살이 들기 시작할 때 고향으로 다시 날아가는 철새처럼.
이후 미국으로 떠나기 위한 모든 준비 과정은 마치 오래전부터 계획된 것인 양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로부터 약 5개월 뒤, 나는 캘리포니아에 본격적으로 둥지를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