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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Oct 30. 2022

바쁘다 바빠. 슬기로운 뉴욕 생활

뉴욕, 그리고 톰 브라운에서의 잊지 못할 6개월 




그때 난 뉴욕의 '바쁨'이 좋았다. 매일 아침 출근길, 스타벅스 커피 한잔은 일종의 뉴요커의 시그니처와도 같았다. 솜뭉치 같은 눈이 아낌없이 쏟아지는 뉴욕의 겨울, 고소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맨해튼의 인파 속에서 그들과 함께 발을 맞춰 걸을 때면 내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세계 경제와 외교, 패션 중심지인 뉴욕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무리 중 한 명에 속해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포 속 열정이 하나하나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뉴욕의 '바쁨'이 내게 일깨워준 것들


생애 첫 해외생활, 드디어 뉴욕에 도착했다. 신호를 지키면 뉴요커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뉴욕 맨해튼 거리는 늘 차로 붐볐고 뉴요커들은 거침이 없으며 분주했다. 당시 내가 인턴십을 했던 회사는 맨해튼의 노른자인 35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가 홈스테이 했던 퀸즈 우드사이드의 Northen Blvd역부터 맨해튼의 34 St-Penn Station역까지. 매일 아침저녁 뉴요커들과 함께 뉴욕 지하철에 몸을 싣었다. 참고로, 깨끗하고 잘 정돈된 한국의 최신식 지하철과 달리 뉴욕 지하철은 지저분하고 열악하다. 쓰레기는 물론 바퀴벌레와 고양이만 한 크기의 쥐가 매일 반겨주는 것은 일상이었다. 지하철 역 간 이동 중에는 핸드폰 신호도 잡히지 않으며, 낙후된 지하철 시스템 고장으로 예고 없는 운행 중단 또는 지연 운행도 다반사였다. 선진국 미국, 그것도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뉴욕 지하철의 실상을 처음 두 눈으로 보았을 때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느 순간 적응이 되었다.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은 뉴욕 지하철을 타고서 매일 30-40분이 걸리는 출퇴근길이었지만, 그저 신이 났다.


나는 6개월간 뉴욕의 가을과 겨울을 지냈다. 뉴욕의 겨울은 정말이지 정말로 추웠다. 칼날 같은 겨울바람, 돌덩이처럼 떨어지는 폭설로 인해 무릎까지 올라오는 레인부츠는 매일 아침 필수 아이템이었다. 뉴욕은 좋았지만 뉴욕의 겨울은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쉽진 않았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차디찬 뉴욕의 겨울바람이 살결을 스치면 스칠수록 내 꿈과 목표는 더욱 강하게 자극되었다. 물론 바쁘게 일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6개월, 하루하루 시간이 가는 게 너무나도 아깝고 아쉬웠다. 누구보다 야무지게 뉴욕을 즐기기 위해 매주 꼼꼼하게 다이어리에 계획을 세웠다. 주말이면 뮤지엄, 갤러리, 뮤지컬, 맛집, 쇼핑몰 가릴 것 없이 뉴욕 시내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어떤 날엔 사람들과 함께, 어떤 날엔 퇴근 후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 바에서 혼술 한잔과 함께. 그 누구보다 알차게 뉴욕 라이프를 즐겼다.



뉴욕의 겨울. 아침 저녁 집밖을 나설 때면 늘 먼저 와 반겨주었던 소복한 눈들.



6개월 간 매일, 수도 없이 오갔던 뉴욕 맨해튼 거리



미국 사람들은 야근 안 한다며! 톰 브라운에서의 잊지 못할 인턴생활

브랜드 톰 브라운에서의 인턴생활은 뉴욕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억이다.

첫 출근 날,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남자든 여자든 직원들 모두가 톰 브라운 슈트를 입고 일한다는 사실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진 톰 브라운 슈트와 구두를 쫙 빼 입고 일하는 직원들의 아우라와 분위기에 나는 압도되었다. 내 눈에 그들은 단순히 조직의 일원으로 일하는 직원 그 이상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그들 자체로서 이미 브랜드의 일부이자 브랜드를 대표하고 있었다. 빳빳하게 각이 잡힌 슈트의 옷깃에서 그들의 프라이드가 묻어났다. 자신이 몸담은 브랜드를 애정하고 사랑하는 게 그대로 보였다. 댄디함의 정석과도 같았던 디자이너 톰 브라운을 두 눈으로 처음 봤을 땐 왠지 모를 친근함이 묻어나는 미소 속에서 날카로운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우스갯소리지만 뉴욕 인턴십을 하기 전까지 나는 미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달리(?) 야근을 절대로 하지 않는 줄 알았다. 그전에 한국 패션회사에서도 인턴십 경험이 있었던 터라 이곳에 오기 전까지 업무 강도가 세지 않을 줄 알았던 건 내 착각이었다. 당시 내 매니저는 늘 점심도 먹지 않고 일에 몰두했다. 오직 커피와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것 같은 간식 조각과 함께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그를 보며 하루는 그 속사정이 궁금해 물었다.


"Is there any reason you don't eat lunch every day?"

"That makes me lazy."


스스로를 게으르게 만들기 때문에 점심을 먹지 않는다니. 누가 뭐래도 밥심이 중요한 한국인에게 그의 대답은 아직까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충격이었다. 어쨌든 점심도 마다하고 매일 늦게까지 일에 몰두하는 그들의 열정은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비록 말이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갓 한국에서 온 인턴의 눈에도 그들이 일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와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톰 브라운에서 나의 포지션은 Production이었다. 제품 생산에 관련된 전반적인 과정의 업무를 맡았다. 생산에 필요한 원단과 부자재, 생산 일정 등에 관해 공장과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다. 또한 거래처에 샘플을 pick up 하고 drop off 하며 생산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관리하는 일을 했다. 패턴 공장부터 원단, 부자재 거래처까지 매일 참 부지런히 뉴욕 거리를 오갔다. 톰 브라운에서의 6개월. 무엇보다 세계적인 브랜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보며 단순히 업무뿐 아니라 그들이 일하는 방식과 마인드를 보고 배울 수 있었던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2015년 3월, 뉴욕의 겨울이 서서히 물러가고 봄을 알리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인턴십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늘 옷과 원단, 부자재로 가득했던 내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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