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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Oct 30. 2022

썩어 가는 나무에 다시 생명의 잎이 돋아나기 위해

스물아홉, 미국으로 떠났다



나: "저 내년에 미국에 가려고 합니다."

사주 선생님: "가. 선생님은 가라고 하고 싶어."

나: "네?"



"썩어가는 나무가 다시 자라기 위해서는 토양을 완전히 바꿔줘야 해."


친구와 함께 재미와 호기심에 들어간 한 사주카페에서 사주를 봐주셨던 선생님의 말이었다. 

2017년 11월 1일. 알싸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던 겨울날, 미국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스스로 내린 뒤였다.

현실 유지와 도전, 두려움과 설렘, 주저함과 용기, 망설임과 결단 사이 당시 내 마음의 저울추는 그 어느쯤에 있었을까. 미국을 가고자 하는 나의 계획에 사주를 봐주셨던 선생님은 마치 이 저울추를 오른쪽으로 조금 더 끌어당기듯 내 결정에 힘을 보태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맞는 말이다. 썩어가는 나무가 다시 생명의 잎을 피우기 위해서는 나무가 뿌리내리고 있던 토양을 통째로 바꿔줘야 한다. 그런데 나무에게는 이 과정이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내가 나무가 되어보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던 익숙한 환경과 온도, 습도, 조건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토양에 다시 또 힘겹게 뿌리를 내리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하지만 토양을 완전히 뒤엎지 않고 만약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아마 나무는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그때 내 상황과 심경이 딱 이 나무와 같아서였을까. 왠지 모르겠지만 그때 사주를 봐주셨던 선생님의 그 말이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씩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어쨌든 이후 두 달이라는 시간이 더 흘러 2018년 새해는 어김없이 동그란 얼굴을 하고 떠올랐다.



스물아홉. 여자. 미혼. 3년 차 직장인. 리테일 온라인 MD. 내년이면 나이 서른

2018년을 맞이한 당시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한 설명이었다. 사실 서른을 넘기고 몇 해를 지나온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나이 서른은 아무 의미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왜 그렇게들 서른에 큰 의미를 두는 건지. 서른에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서른이든 마흔이든, 쉰이든, 눈 감는 그 순간까지 우리의 삶은 변함없이 계속 이어진다. 저마다 어딘가에 심은 삶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어 소중히 키운 그 꽃이 언제 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근데 왠지 그때는 그랬다. 나이 서른이 주는 의미는 거부할 수 없는 압박과 불편으로 다가왔다. '3'이라는 숫자가 주는 삶에 대한 책임과 부담의 짐이 나를 더욱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각자 자신의 삶의 방식과 속도가 다름을 믿으며 크게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온 나였지만 그때는 어쩐지 나만 빼고 다 괜찮아 보였다. 멋진 남자 친구, 화려한 타이틀의 직장, 높은 연봉, 알뜰살뜰 재테크로 훌륭한 밑천을 마련해놓은 친구들. 스무 살 때 상상했던 서른의 모습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당당한 커리어우먼으로서 내가 온전히 내 삶을 주도할 줄 알았는데. 슬프게도 그때 난, 나의 희망과는 완벽히- 반대로 가고 있었다.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부터 교대역까지. 일면 부지의 사람들과 초밀착해 부동자세로 꼼짝 않고 가던 출근길
매일 ctrl+c ctrl+v처럼 반복되는 무채색의 회사생활
긴 야근 끝,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밤바람에 겨우 숨을 실어 보내며 타고 가던 밤 택시


그 어디에도 '나'는 없는 듯했다. 간절히 바라고 꿈꿔왔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겨우'이러려고 그토록 스펙과 학점에 아등바등하며 여기까지 온 건지 허망한 마음마저 들었다.


'나도 나름대로 꾀부리지 않고 꿈을 좇아 열심히 산다고 살아온 것 같은데.'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마치 그게 인생의 정답인 듯 제대로 의문을 가져보지도 않은 채 우리는 살아간다. 그렇게 대부분이 그렇듯 남들은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돈을 모으고 결혼을 준비할 바로 그때, 내게는 두 번째 인생 사춘기가 제대로 찾아왔다. 나는 일단 나를 먼저 찾는 일이 더 시급했다. 


나는 지금 내 삶에 만족하고 있나?
나의 삶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나의 꿈은 무엇이었는가?
나는 지금 행복한가?

 

그 어떤 질문에도 자신 있게 'Yes'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긴 여행길 가야 할 길은 한참인데 꽉 막힌 고속도로의 중간에서 되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길이 뚫릴 기미도 보이지 않는 암울한 느낌이랄까. 그렇게 삶과 스스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밤낮으로 이어졌다. 아마 그때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계속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된다는 것을. 썩어가는 나무를 살리기 위해 토양을 바꿀 때가 되었다는 것을. 해가 바뀌면 앞자리 숫자 '3'이 주는 부담과 현실의 벽에 부딪혀 용기를 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설령 처음의 기대와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래서 그 선택을 후회할지라도 그 과정 속에서 분명 배우는 게 있으리라. 겁이 나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삶은 비겁하며 죽은 삶이기에.

결국 수많은 선택의 '점'들이 모이고 모여 저마다 자신만의 고유한 '선'을 그려나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스스로만이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을뿐더러, 자신의 인생에 대한 물음과 답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그렇기에 답을 찾을 때까지 집요하게,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야 한다. 


오랜 물음 끝 당시 나의 답은 '미국'이었다. 삶을 화분에 비유한다면, 나는 화분의 토양을 완전히 갈아엎어 새로이 뿌리내리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2018년 4월 18일. 평생을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스물아홉, 아무 연고 없는 미국으로 떠났다. Los Angeles가 선명히 찍힌 비행기 티켓과 몸만 한 이민가방, 도합 3개의 캐리어를 끌고서.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러 가는 길. 끝과 시작. 아쉬움과 설렘의 교차. 미묘 복잡한 감정들에 괜히 셔터를 눌렀던 것 같다.



그리고 이때는 몰랐다. 낯선 환경에 나를 던져보기로 결정한 뒤, 유익한 인생 경험을 하고 돌아와야지 생각하며 떠난 미국에서 영주권을 받게 될 줄은. 4년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이곳에서 계속 살고 있을 줄은. '미국'이라는 선택이 내 인생의 '선'위에서 또 하나의 끝과 시작을 구분 짓는 경계'점'이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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