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통째로 도둑맞은 고통"
부산 여행은 어디까지나 병문안을 가기 위함이었다. 부산에 사시는 고모가 척추를 다치셔서 걸을 수 없는 상태라고 들었다. 지병까지 있었기 때문에 병세가 더 나빠진 듯했다. 긴 시간을 달려서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고모가 입원해 계신 병원이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병원 냄새였다. 소독약 비슷한, 그다지 기분 좋은 냄새는 아니다. 냄새를 가르고 고모가 계신 병실로 향했다. 병실에는 고모부가 서 계셨다. 수척하셨다. 고모부가 아빠와 함께 나누신 대화는 한탄에 가까웠다. 고모의 상태에 대한, 고모의 상태를 관리하는 병원에 대한, 고모의 상태를 관리하는 병원에 지불해야 하는 돈에 대한 한탄이었다. 그것을 무방비 상태로 듣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얼마 안 있어 고모의 아들이자 나의 사촌 형이 병실로 들어왔다. 사촌 형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결혼한 지 몇 년이 넘은 형님에 가까웠다. 사촌 형은 보다 격양된 어조로 고모부가 뱉으셨던 한탄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연주자를 달리해 같은 악보를 연주하는 듯 보였다. 그 우울한 음악회가 며칠 전부터 계속되었음을 생각하니 덩달아 울적해졌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때까지 고모는 침대에 누워계셨다. 병세 탓에 고모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게 말을 거실 때마다 "네?"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말은 "많이 컸네" 밖에 없었다. 많이 컸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까마득하니. 까마득한 것은 단지 부산과 일산의 거리 때문만이 아니었다.
고모의 눈물을 보기 전에 병실을 황급히 빠져나왔다. 내 눈물이 느껴질 때쯤 병원 밖을 나왔다. 그 덥다는 부산도 밤공기는 차가웠다. 난데없이 찾아오는 병마와, 그 병마를 오롯이 견뎌내야 할 고모와, 고모를 오롯이 견뎌내야 할 고모부 그리고 사촌 형과, 고모를 보며 시답잖게 되묻기만 한 나를 보았다. 병마가 주는 고통보다 그로 인해 시간을 통째로 도둑맞은 고통이 커 보였다. 이러한 생각마저 내 이기심이 알아서 차가운 밤공기에 흘려보낼 것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며 병원을 떠났다.
16.10.18. 씀
17.05.06. 다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