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낸 말 몇 마디면 붙었을 그 틈"
가족 여행을 떠나본 지가 까마득했다. 엄마가 부산을 간다고 통보하셨을 때 의아했을 정도로 까마득했다. 부산까지 달려야 할 거리와 차 안에 있을 시간이 까마득했다.
그러나 부산에 머물렀던 이틀에서 까마득함이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배고팠던 우리는 버터에 구운 새우를 허겁지겁 먹었다. 자갈치 시장에서 웬 EDM 행사가 열린 덕에 전자음과 비린내 사이를 걷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여동생이 친구들에게 사줄 기념품을 같이 골랐다. 저런 게 뭐가 재밌냐던 아빠와 함께 '아는형님'을 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백화점 쇼핑을 했다. 꼼데가르송의 카디건을 만지작거리자 40만 원이라는 종업원의 말에 서둘러 자리를 떴다. 해수탕이 정말로 짠지 적신 손을 핥아보았다. 승합차의 트렁크 아래서 비 오는 해운대를 구경했다. 복국은 싱거웠다. 치킨은 바삭했다. 어묵은 화려했다. 우리의 대화는 소박했다. 부산은 사실 소박한 대화였다.
기숙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나는 곧장 학교로 가야 했다. 가족 모두가 부산에서 가평으로 향했다. 가평에 다 와갈 무렵 차가 크게 덜컹거렸고 아빠는 차도 위에 고양이가 있었다고 하셨다. 우리는 고양이의 죽음을 슬퍼했다. 오래지 않은 조금 이상한 슬픔이었다.
부산에서 출발할 때 해는 이미 졌고 학교에 도착하니 일요일이 막 월요일로 바뀐 뒤였다. 다시 가평에서 일산까지 힘든 길을 달릴 가족에게 미안해하며 먼저 따뜻한 물을 맞았다. 땟물이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가족이 빨리 집에 도착하기를 바랐다.
까마득했던 것은 나와 가족 간의 거리였다. 우리 가족에는 얼마의 틈이 있었다고 생각해왔다. 부산을 다녀온 지금 그 틈은 눈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좁아졌다. 그러나 용기 낸 말 몇 마디면 붙었을 그 틈을 위해 수백 킬로미터와, 진수성찬과, 고가의 운동화와, 고양이 한 마리의 목숨을 쓰고 만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부끄럽게 행복한 부산이었다.
16.10.22. 씀
17.05.06. 다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