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낸 손톱처럼"
이토록 외진 산골에 있으면 작은 것에도 감동을 받는다. 작년 이맘때, 노을빛이 어린 기숙사 벽면이 그렇게 아름다웠다. 붉은 벽돌들이 거대한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타올랐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도 초저녁의 기숙사에 미치지 못했다. 우리의 기숙사는 그 날, 그 빛을 받으려고 그 자리에서 여태껏 기다린 듯했다.
숨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우연히 호사를 누리게 된 나는 곧장 교실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따금씩 같은 자리에 서서 그때의 풍경을 기대했지만 야속하리만큼 다른 모습이었다. 사진을 찍어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그 사진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다를 게 없을 것이었다. 타오르던 불꽃은 깎아낸 손톱처럼 쉽게 죽을 것이었다.
그 풍경은 마음에만 남겨야 하나 보다. 너무나 선명히 어른거리는데 그 풍경 한 번을 못 본다.
17.04.14. 씀
17.06.22. 다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