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소설

by 백창인

- 24절기, 잘 알아?


- 동지 하지 뭐 이 정도만 알지. 왜?


- 오늘이 스무 번째 절기라 하더라고. 소설. 작을 소(小)에 눈 설(雪) 자 써서.


- 눈이 작게 내린다 뭐 이런 거야?


- 그런가 봐. 첫눈이 내리고, 이때 앞뒤로 날도 추워진다고.


- 너 소설 쓰잖아 요즘. 말장난하려고 꺼낸 거야?


- 그런데 마냥 언어유희만은 아냐. 내 소설(小說)이 소설(小雪)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첫눈 같은 글을 쓰고 싶어. 나는 물을 내릴 뿐인데. 마음이 추운 이들에게는 사소한 낭만이 되고. 동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저 피하고 말 비가 되고.


- 말은 잘해. 갖다 붙이는 거 아냐? 만약 사라질 소(消)에 눈 설(雪)을 썼으면 이렇게 말했겠지. 마치 눈이 흔적 없이 녹듯. 그렇게 사람들 마음에 살며시 녹아드는 글을 쓰겠다며.


- 맞아. 진짜 맞는 말이야. 갖다 붙이는 거야 뭐든.


- 그래서?


- 소설(小雪)인지 소설(消雪)인지가 중요한 게 아냐. 진짜 중요한 건 갖다 붙이기야.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는지. 맛깔나게 하는지. 말은 잘한다고 했잖아. 나에게는 그게 최고의 칭찬이야. 기자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니까. 말 말고 내가 잘해야 될 건 없어.


- 그래 너 잘났다. 거짓말쟁이로 살아 그렇게.


- 소설이라는데. 첫눈도 안 왔고. 두꺼운 외투가 덥기만 하고. 하늘도 거짓말쟁이면서, 나라고 안 될 건 뭐야?


그러나 나는 내심으로 늦은 밤에라도 눈이 오길 바라고 있었다. 하늘마저 거짓말을 한다면 나는 소설을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19.11.2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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