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것도 안해도 되지만, 행복해지는 법은 알아야해
결혼하고 처음엔 마냥 행복했다. 집에다가 있는 영혼 없는 영혼 다 털어 넣어, 인테리어도 못하고 도배만 새로 한 집에 들어와 살았지만 다 좋았다. 저녁엔 뭘 먹을까, 영화를 한 편 볼까, 뭘 하고 놀까, 함께 노닥거리는 게 늘 새롭고 즐거웠다. 남편과 나는 결혼 후에도 여전히 죽이 잘 맞았고, 세상엔 우리 둘이 같이 놀 것 천지였다. 살림에도 나름 재능과 흥미가 있었다. 아직도 남편 친구들 사이에서 회자 되는 식고문 집들이 일화가 있는데, 입맛이 까탈스러운 남편이랑만 소소하게 해 먹다가 집에 다른 사람들이 놀러 오면, 내 안의 숨어 있던 큰손마마가 일어나 이것저것 도전해보면서 다양하게 해 먹고 사람들에게 맛있는 걸 많이 먹이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남편 친구들이 내 친구가 되기도 했고, 내 친구들이 남편 친구가 되기도 했다. 나중엔 다 같이 놀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세상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한 순간, 살면서 처음으로 안정감이라는 감정이 든 순간에도 마음 한편에는 불안함이 있었다. 시험 준비를 해야 해, 아니더라도 뭔가를 해야 해, 일을 그만두었을 때를 대비해 준비를 해야 해. 이쯤 되면 거의 강박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난 그게 익숙했다.
학교 다닐 때도 딱히 뭘 열심히 집중해서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바지런히 쏘다녔다.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다니고 공강 시간에 카페에 가서 커피랑 디저트를 사 먹으며 노닥거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시간과 돈이 아까웠으니까. 그 시간에 동아리 연습실로 가서 기타를 손에 쥐고 띵가띵가 거렸다. 제대로 연습하지도 않았다. 연습실에서 죽치며 보낸 그 시간들만 제대로 활용해 연습했다면 지금 기타 레슨을 해서라도 먹고 살 수 있었을 텐데. 대체 뭘 했는지도 모르겠다. 말 그대로 그냥 노닥거리고 아주 가끔 연습하고 그랬겠지. 그런데도, 그렇게 뭔가를 하는 기분이라도 내어야 내 마음이 편했다.
동아리에서 일이 많아지면 학과 걱정이 되고, 과에서 참여할 일들이 많아지면 동아리가 걱정되고. 그러면서도 일 벌이는 건 좋아해서, 공모전도 가요제도 이것도 저것도, 기회가 생기면 생기는 대로 닥치면 닥치는 대로 그걸 에너지원으로 사용해서 자신을 갈아 넣으며 살았다. 일정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열심히 굴러가며 살았고, 일정이 없으면 또 진이 빠져 한참의 시간을 허비했다. 돌이켜보니 지금까지도 하는 꼬라지가 딱 그랬다.
치열하게 살다가 갖게 되는 고요한 여유, 쉬면서 에너지를 보충하는 순간. 그게 귀한 건데, 난 그때가 가장 불안했다. 그리고 그게 준비되어 있지 않은 내 미래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끝도없는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죽기 전에는 절대로 끝이 안 날 것 같은, 결승전도 보이지 않는 마라톤을, 그것도 단거리 뛰기로만.
남편은 본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과 쉬게 하는 것, 그리고 에너지원이 되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다. 간단하다. 설령 그게 라면에 스팸 한 조각이 되더라도, 오늘의 기분과 컨디션에 알맞은 맛있는 저녁을 먹는 것. 집중해서 다른 데에 정신을 쏟을 수 있는 게임 한두 판(한판이 몇 시간이 걸릴 때도 있지만). 함께 하루를 공유하며 응원하고 응원받는 소소한 노닥거림 그리고 고양이들.
각자가 가진 이 지점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의 크기는 천지차이다. 아무리 밖에서 깨지고 부서지고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더라도, 남편은 이 중 몇 가지만 충족되어도 금방 회복해서 다음 날 쓸 새로운 힘을 낼 수 있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지점들을 몰랐다. 막연히 내가 가진 게 없어서, 더 갖고 싶어서, 더 잘하고 싶은데 능력이 없어서, 내 행복의 크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내게 취미를 찾아보라고도 했고, 여러 방면으로 많은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본인처럼 게임에 취미를 붙여보자며 내가 좋아할 만한 게임을 이것저것 찾아오기도 했다. 남편은 게임을 좋아하고 진짜로 잘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시원시원하게 밀어버리고 무찔러버리는 식의 게임만 좋아하는 내 몫까지 세세하게 계산해 아이템과 방법 등을 챙겨줬다. 이유식 떠먹여 주듯 먹여주는 대로 편하게 즐겁게 게임을 하면서도 초반엔 생각보다 빨리 재미가 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놀면서도 즐겁지만은 않았다. 틈틈이 내 안의 불안이 고개를 내밀었다. 할 게 얼마나 많은 데 이렇게 놀고만 있어? 지금 취미 가질 때야? 공부는 안 할 거야? 연구 기간 끝나면 뭐할 건데? 전업주부 하면서 집에서만 살 거야? 너 지금 직장은 만족해? 불행하게도 난 '예스'라고 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한 공무원 친구는 대놓고 말했다. 들어보니 나보다 훨씬 쉬운 일을 하면서도 너보다 몇 년의 연차가 더 있는 나보다 많은 월급을 받네, 그런 곳을 넌 참 쉽게 들어갔네. 운이 좋네- 월급을 먼저 물어온 건 본인이었으면서, 4년을 고생하던 나를 꾸준히 봐왔으면서도 그렇게 무례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
그럴 때 지금 하는 일이 좋은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내가 가진 불안들을 가려줄 수 있는, 그 뒤에 잠시라도 숨을 수 있는 훌륭한 도피처. 거쳐온 다른 직장들도 어찌 보면 비슷했던 걸까. 도피처에 터를 잡고 뼈를 묻으려니 그렇게도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웠던 걸까.
당연하겠지만 여기도 들어와서 보니, 그 일이 그 일이 아니었고, 생각만큼 성취감이 느껴지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만둘 수도 없었다. 여기서 일을 하면서 결혼을 했으니까. “그 집 며느리 어디서 무슨 일 한대?”, “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일한대” 같은 것들을 구지 정정해야 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정말 이건 아니다 싶었던 순간들도 많았다. 오른쪽 관자놀이가 콩닥콩닥 숨을 쉬는 걸 처음으로 느끼며, 사람이 일하다가 망가지는 게 이런 건가 싶을 때도 있었다. 한참 힘들어 할 땐, 남편이 그만두라고 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곳이면 그만두는 게 맞다고.
하지만 성격상 또 그러고 싶지 않았다. 패배하는 기분으로 물러서고 싶지가 않았다. 별의 별 일을 겪다가, 한참을 공백기로 있다가, 내가 지금 어떻게 다시 일하게 된 건데. 산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또 일을 해야 하고, 살다가 또 다른 갈등상황이 생길지도 모를 텐데, 매번 나는 못 버티는 사람인 거야? 사회생활 나만 이래? 아니면 다들 참는 건데 나만 못 참아?
지금의 이 순간들이 패배의 기억들로 남지 않길 바랐다. 그 간의 내 커리어 중 승리의 기억은 없었다. 근데 그걸 또 반복하라고. 확신도 없이? 너무 지겨웠다. 괴로워도, 버티는 게 편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 탓할 곳이 없으니, 모든 화살은 내 자신에게 돌아왔다. 모두가 그냥 다 내 탓 같았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심리 결과지를 분석해주던 상담사가 말했다. “회사가 참 안 맞으셨겠어요”
기질적으로 성취와 인정 욕구가 큰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조직적으로 내려오는 오더보다 스스로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위치, 그러니까 회사에서는 팀장 정도가 되면 스트레스를 덜 받을 거란다. 지금 내재된 화가 엄청나게 많은데 버틸 수 있던 힘은, 순전히 명예욕 때문이란다. 그거 하나로 지금까지 버틴 것 같아보인다고 했다. 이 얇팍한 도피처가 지옥을 버티는 힘의 근원이라니, 세상에 이럴수가.
“그런데 선생님. 그것도 직장을 꾸준히 다니고 회사에서 인정을 받아야 그런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 자리를 누가 제게 주죠?”
“글쎄요. 그렇지만 본인이 느낀, 안 맞아서 괴롭다는 느낌은 확실히 맞고요. 빨강씨가 엄청나게 노력한 것도 맞는 것 같아요. 채찍질은 그만하고, 본인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취미로라도 해봐도 될 듯해요."
발동 걸리면 시도하는 건 불도저 급이다.
복싱을 했다. 퇴근 후 주 2회. 운동으로 땀도 빼고 몸도 쓰고 기술을 배우는 게 즐거웠지만, 코시국에 마스크 쓰고 체육관에서 뛰는 건 너무 고역이었다. 하면 할수록 체력은 는다던데, 어째 난 하면 할수록 에너지를 너무 빼서 일상이 더 힘들었다.
전자드럼 패드를 샀다. 퇴근 후 시간 되는 대로 유튜브를 켜놓으면서 툭탁툭탁 두드리면서 치는 게 재밌었다. 생각보다 소음도 적고 이건 진짜 재밌었다. 하지만, 고양이가 뛰어다니면서 패드를 엎어서 전원어댑터가 망가졌다...
꾸준히를 못하는게 문제다. 퇴근하면 소파에서 티비 틀어놓고 멍 때리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갔다. 남편은 한두 시간 게임에 힐링이 싹 되어서 새사람이 되어 나타나는데, 나에겐 그런 게 무엇일까. 이렇게 쉬면 안 될 것 같은데 일단 무엇을 하기엔 힘드니까 멍이라도 때리자는 생각으로 죽치다 보면, 한참의 시간이 지나 있었다. 남편 따라 게임 삼매경에 빠져보기도 했지만, 신나게 게임을 한 날에도 답답한 게 있었다. 무엇인지는 모를.
그 주의 심리상담을 받고 자리로 돌아와서 멍하게 있다가 연구실 동료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선생님, 아무리 봐도 저는 꾸준한 취미를 찾을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집에 가면 티비만 봐요. 나름 골라서 보긴 하는데, 지금은 이것만 봐요. 근데 있잖아요. 난 봤던 걸 보고 또 봐요. 방금 그 컷, 10초 전 장면을 보려고 계속 해당 장면만 한참을 돌려볼 때만 있어요. 정신을 놓고 한참을 보고 있다가 남편이 그걸 왜 자꾸 다시 돌려 보냐 물어보면 그때 정신이 번쩍 들어요. 가끔은 정신병 같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생각해요?
가만히 듣고 있다 후음-하던 동료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아니요. 그걸 보는 것 자체가 선생님 취미인 거예요. 좋아하는 걸 여러 번 보는 게 좋은 거예요. 그냥 그게 좋다고 있는 그대로 말해요!”
마음을 관통하는 한마디였다.
맞아. 했던 것 또 하는 건 취미가 왜 안 돼? 왜 꼭 취미는 자기계발적이고 생산적이어야만 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취미야. 여유를 부리는 것도 취미야. 나는 쳤던 곡을 치고 또 치고, 봤던 걸 보고 또 보는 게 좋아. 멍 때리기는 왜 안 돼? 취미까지도 꼭 결과가 있어야 해?
새로운 걸 배우지 않아도 되고 뭔가를 더 잘하게 되지 않아도 되었다. 익숙한 것들에 편하게 노출되는 것. 다시 보고 싶으면 다시 보고, 듣고 싶으면 다시 듣고 제한 없이 맘껏 감상하는 것.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릴렉스 하는 게 날 행복하게 하는 거였다. 내 마음속 중압감만 덜어내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행복해지는 법을 서서히 배워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