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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빨강 Oct 15. 2021

# 엄마는 왜 맨날 엄마 딸한테만 참으래

  차를 긁어먹었다. 정확하게는 기둥에 차가 꼈다. 출장 간 남편에게 SOS를 쳤는데, 이번 기회에 스스로 고쳐보라고 했다. 엄마가 와서 도와주기로 했다고 말하자, 공업사를 같이 가는 것은 괜찮지만 아예 다 장모님께 맡겨버리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남편은 ‘스스스’에 여러 번 방점을 찍었다.

  반차를 내고 쭈굴해진 차를 몰아 엄마 집으로 가서 엄마를 태워서 엄마가 소개해 준 공업사로 갔다. 아니, 이런 골목길로도 차를 끌고 잘 들어오는 사람이 이렇게 차를 해 먹었다고요?- 라는 공업사 직원분 말에 내 마음도 그렇게 쭈굴해질 수가 없었다. 난 초보운전러다.

  차를 맡기고 돌아오는 길 택시가 안 잡혀 카카오택시를 잡아탔다. 엄마 차가 있는 엄마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기사님은 하이고오 딸래미인가 봐요, 이 시간에 일 안 하고 뭐합니까-로 시작하는 넋담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이야기는 곧 딸래미 무슨 일 하냐, 시집은 갔냐-로 이어졌다. 

  택시라는 공간은 묘한 공간이다. 내릴 때 지갑이라도 흘리고 내리지 않는 이상, 다시는 안 만날 게 분명한 남과 남이, 서로에게 별의 별걸 묻게 되고 별의 별걸 다 대답하고 있게 된다. 서로 대면하지 않는 환경이라 그런가. 

  딸래미 시집은 갔다고 엄마가 당당하게 쉴드를 쳤는데, 무례한 기사님은 “그럼 애는요?”로 응수했고, 난 조용히 빠직빠직 마크를 이마에 띄우며 그때부턴 입도 다물었다. 눈치 빠른 엄마는 내 시그널을 읽었을 것이다. 그래서 장가간 아들이 먼저 애를 낳을 것 같다고, 각자가 때 되고 살만하면 알아서 낳을 거라고 말했지만, 아저씨는 물러나지 않았다. “아니 왜 애를 안 낳아?”

  내가 참전했다. “전 낳을 건데, 그게 지금이 아닌 거예요.”

  아저씨는 완강했다. 아니 왜 애를 안 낳아? 대체 왜? 그럼 언제 낳아? 아저씨는 택시 운전대를 잡은 채로 소리 소리를 질러댔다. 어이가 없었다. 엄마는 주제를 돌리며 그러는 아저씨 자식들은 다 장가갔냐고 부드럽게 물었다. 그 집 아들은 둘인데 심지어 둘 다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데, 하이고 아직도 장가를 안 갔단다. 속으로 너나 잘하세요- 피식 웃으면서도 부글부글 화가 났다. 결혼하고서 생긴 이상한 데서 눌리는 급발진 버튼이, 바로 감히 우리 ‘친정’ 엄마 앞에서도? 같은 지점이다. 이럴 때는 꼭 우리 엄마가 갑자기 ‘친정’ 엄마가 된다.

  아저씨는 끝까지 단 한 순간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 나중엔 모녀가 쌍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도 아저씨는 혼자서 출산율에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관에 나라 걱정에, 또 뭐에 뭐에, 아주 또랑또랑 일장연설을 펼쳐댔다. 여자 둘이라서 만만한가. 우리 ‘친정’ 아빠 앞에서도 저럴 수 있나?

  내리고 조용히 차 문을 닫고 나오면서 엄마에게 슬쩍 흘렸다. 마침 앱으로 부른 거라, 저 아저씨한테 별점을 줄 수 있다고, 나는 별 하나를 줄 거고 더 낮은 게 있으면 더 낮은 걸 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얌전히 있던 엄마가 냅다 한소리를 보탰다. 너 못 되게 그러면 안 된다고, 사람이 맘을 곱게 먹어야 한다고. 

  난 택시 아저씨보다 엄마에게 더 짜증이 나서 화를 냈다. 예전 같으면, 그래도 엄마 말을 반쯤은 들어서 투덜거리더라도 낮은 별점은 안 주던가, 아니면 낮은 별점은 몰래 주고 엄마 앞에선 조용히 있던가 했을 텐데. 나는 투덜거리기도 했고 내가 생각한 별점도 그대로 줬다. 아저씨가 너무 무례하다고도 썼다. 폰을 붙잡고 있는 나를 보며 엄마는 옆에서 하지 말지, 왠만하면 하지 말지-라는 말만 계속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는 내게 늘 참으라고 말했다. 좋게좋게, 친구와도 싸우지 말고 둥글게 둥글게. 나는 내가 나쁜 아이라고 생각했다. 예민하고 잘 따지고 드는, 늘 나만 못 참고 화내는, 나쁜 아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의 희망과 다르게 나는 여럿의 친구들과 두루두루 사이좋게 지내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먼 쌈닭이었다. 

  결혼을 했고, 독립을 했으니, 이제는 엄마가 있는 그대로의 날 인정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나 보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나한테만 뭐라고 했고, 내가 왜 화가 났고 억울해하는지를 듣지 않는다. 심지어는 옆에서 같이 겪어놓고도 나에게만 참으라고 말한다.     


  결혼 후엔 참아야 하는 상황들이 더 많아졌다. 내 작은 행동으로 남편까지 밉게 보이게 하고 싶진 않아서 엄마에게 말도 이쁘게 하고 말도 잘 듣고 더 잘하려고 했다. 툭하면 주말에 남편이랑 와라, 밥해 줄게, 반찬 가져가- 같은 것들을 거역하지 못하고 가끔은 다 먹지도 못하는 걸 부지런히 날라대며 꾸역꾸역 착한 딸 코스프레를 힘겹게 해내고 있는데, 서서히 엄마는 선을 넘고 있었다.

  남편이 없을 때마다 엄마는 조용히 다가와 은밀하게 말했다. 아기는 언제 가질 거니, 생각은 있니 없니- 꼬치꼬치도 캐물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고 있으면, 정말이지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이 집은 저랬대 저 집은 저랬대 같은 이야기들을 엄마는 줄줄이도 읊고 있었다. 그리고는 머쓱했는지 항상 끝에는 웃으며 덧붙였다. 며느리에게는 이런 이야기 절대 못 해, 아마 너네 시어머니도 그럴 거야. 나도 내 며느리에겐 이런 말 못 해. 넌 내 딸이니까 해주는 거야.


  이 지점을 맞서 싸울 용기를 얻게 된 건, 12주 차에 걸친 심리상담의 결과였다. 

  실전은 아름답지 않았다. 침착한 어투로 차근차근 잘 말하지 못했다. 평소와 똑같이 그냥 대드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해 내 속마음을 말했다. 엄마 며느리에게도 못하는 거는 엄마 딸에게도 하지 말아라. 우리 시어머니가 나한테 하는 것처럼 엄마도 나한테 거리를 두어 달라. 나는 결혼하고 나서 엄마 때문에 힘든 것 같다...는 것들을 한꺼번에 몽창 쏟아냈다. 엄마는 알았다고 그만 짜증 내라고 얼추 받아주는 것 같았다. 더 쏟아내고 싶은 감정들이 많았지만, 처음으로 엄마 표정이 보였다. 웃고 있는데 웃고 있지 않은 것 같은 표정.

  그 주가 이상하게 긴 느낌이었다. 엄마가 밥 먹자고 먼저 연락을 안 한다. 고민하다 저녁 사달라고 먼저 전화를 했다. 엄마가 선약이 있고 이번 주는 바쁘고 뭐 그랬다.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엄마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번 주 주말에는 남편과 꼭 맛있는 것 해서 둘이 잘 챙겨 먹으라고 했다. 잘 할 수 있지? 응...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게 난, 다시 독립했다. 


  엄마를 더 진심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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