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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빨강 Sep 13. 2021

# 죽고 싶진 않았어, 근데 딱히 살고 싶지도 않았어

  결혼 2년 차. 어느 순간 모든 것의 의미가 다 사라졌다. 의미가 없으니 의욕이 있을 리가 없고, 의욕이 없으니 일을 할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만사가 하기 싫고 귀찮은데 회사에 출근은 해야 한다. 전날 잠을 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아침에 일어나서 이를 닦고, 머리를 감고 씻고 머리를 말리는 것까지 하나하나의 과정들이 너무 큰 숙제로 다가왔고, 무거운 짐들로 느껴졌다. 힘겹게 출근을 하는 과정을 꾸역꾸역 해내다 보니, 매일 아침을 챙겨 먹거나, 커피를 내려 마시거나 하는 등의 자신을 돌보는 과정들은 사치로 느껴졌다. 화장도 하지 않았다. 코시국이라 얼굴 절반을 마스크로 가리는데 뭐. 대충 입고 다녔다. 대충 먹고 다녔고. 그래도 회사는 가야지. 회사‘만’ 가야지.

  아침부터 그렇게 이미 진을 다 빼고 출근을 하면 일이 잘 될 리가 없었다. 잡일을 시키려는게 뻔하지만 그래도 예의상 “출근 잘했나요? 좋은 아침입니다!”로 시작하는 직장 상사의 카톡, 메일 하나하나가 노이로제였다. 전화는 더 싫었다. 사람들이 내게 인사를 건네고, 말을 건네고 미팅을 잡는 것 자체가 너무 큰 불안의 시작이었다. 막상 미팅을 가면 폭탄 같은 일들이 던져지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모든 게 너무너무 싫고 피하고 싶고, 그냥 집에 가고만 싶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다 그만두고만 싶었다. 정확하게는 그만두고 싶었던 것도 아니라, 이대로 잘려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지인의 권유로 상담센터를 찾았다. 내가 왜 이렇게 무기력하고 만사가 귀찮은지 이유도 몰랐다. 내 손에 쥐어진 상담지에 딱히 답할 말도 없었다. 할 말도 없고, 뭐가 되든 상관도 관심도 없는데 내게 초점이 맞춰진 질문은 끝도 끝도 없었다.

  그렇게 몇 주 뒤, 나는 약 처방을 권유 받았다. 자살 의지도 높다고 했다. 상담 과정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면 언제든 말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나는 죽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이대로 죽어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은 들었었다. 근데, 그게 위험한 거란다. 사실 틀리지는 않은 결과였다. 오히려 너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내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던 건데, 나는 직면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내가 감정의 굴곡이 커서 상담사가 당황을 해서 그런 판단을 내린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 주 상담 선생님이 못 박아줬다. “이거 보세요. 상담 전부터의 검사 결과예요.”

  나를 처음 본, 제3자가 테이블 위에 검사표를 들이밀며 그것도 아주 조목조목, 나의 불안과 분노와 우울에 대해 말해주니 나는 강제로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고, 도망을 갈 데가 없었다. 궁지에 몰리니 분노가 일었다. ‘나를 괴롭게 한 건 다른 사람들인데, 왜 아픈 건 나야, 왜 내가 약을 먹어야 해? 나만 미쳤어? 왜 너는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뭘 한 건데?’

  화가 나는 건 내 안의 어린 애가 아니었다. 현재의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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