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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빨강 Oct 30. 2022

# 결혼과 신혼 가전의 비밀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마케팅의 비밀

  전쟁통에도 결혼은 하고 애기는 낳는다고 했던가, 결혼하는 사람들은 시기를 불문하고 여전히 많다. 처음 내가 할 때는 정신없어 몰랐지만 이것도 나름의 경력직이라고, 한번 하고 나니 주변에 하는 것들을 보면 대략 사이즈가 나온다. 특히 최근에는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았고 이야기하다 괜히 나서서 한 두마디 훈수 얹어보기도 하다 보니, 요새는 또 유행이 어떤 것인가 들여다볼 기회도 많았다.


  결혼식이 다들 비슷비슷하다 한들, 그래도 내 결혼식은 남들과는 조금이나마 다른 결혼식이었으면 하는 건 세상 모든 신랑 신부가 원하는 것이리라. 드레스는 어떤 드레스를 할지, 메이크업은 어느 샵에서 할지, 사진은 어떤 스튜디오에서 찍고 싶은지, 꿈꾸는 결혼식은 어떤 것이었는지. 신랑 신부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절호의 찬스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건 뭐지?


  막상 내가 참석했던 결혼식은 30분 정도의 짧은 웨딩 그리고 부페 정도로 이어지는 크게 다를 것 없는 비슷비슷한 결혼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웨딩홀 종류가 뭐 그리 많은 것인지, 드레스 종류는 벨라인, 머메이드 라인 등등 처음 보는 식의 라인도 디자인도, 소재까지도 다 처음 듣는 것 투성이다. 메이크업은 그냥 전문가가 알아서 해주는 것 아니었나, 샵에서 뭘 어떻게 해주는지도 잘 모르는데 내가 샵도 골라야 한다. 이쯤 되면 스튜디오 고르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대충 원하는 세트와 배경이 있는 곳으로 고르면 되겠지. 그런데, 이렇게 대충 골라도 되나? 결혼은 살면서 딱 한 번 하는 건데? 

  신혼 가전도 마찬가지. 기껏해야 30년 남짓한 인생, 살면서 가전이나 가구를 사본 적은 없었다. 자취를 하면서도 대부분 옵션으로 제공되는 곳을 들어가지, 내 돈으로 냉장고나 TV, 에어컨, 세탁기 같은 것들을 사본 적은 없다. 기껏해야 생활의 편의를 위해, 혹은 취미 생활하느라 산 작은 오븐, 작은 화장대, 침구 청소기 같은 것들이 대부분인데, 결혼이라는 과제를 앞두고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TV는 몇 인치, 세탁기 건조기는 몇 키로, 에어드레서는 몇 구. 몇 군데 상담을 돌면서 얻어온 정보만으로 바짝 촉을 세워 잘 비교를 해야 한다. 맞아, 가구랑 가전은 사면 거의 평생 쓴다고 하니까, 지금 잘 골라서 잘 사야 해.


  잘 모르니까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본다. 몇 가지 키워드로만 검색해도 자주 검색되는 것들이 보인다. 그래, 몇 곳을 가입해보자. 유명한 결혼 준비하는 커뮤니티나 카페 몇 곳을 가입해서 열심히 정보를 검색해본다. 다른 예비 부부들은 이미 이런 정보들에 대해 바싹한 것 같다. 역시, 정보가 중요해, 나만 모르면 바보가 된다니까. 뿌듯한 마음에 열심히 골몰한다. 그렇게 한참의 써치 후 한 곳으로 수렴되는 '정보'는 다른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어떻게 준비하는가-이다. 

  '평균'이라는 가이드는 그게 설사 정답이 아니라고 할지언정,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구석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잘 모르면 그것을 따라만 가도 큰 실패는 하지 않는다. 이젠 조금이나마 갈피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여태 내가 고민하며 작성하던 답안지와 가답안인 '평균'치를 비교해본다. 아, 고칠 것이 많네-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결혼식, 가전과 가구를 비롯한 혼수, 그리고 허니문 여행. 

  살면서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최대의 소비 시기, 우리는 오랜 시간 들여 고민한 만큼 원하던 것을 잘 선택한 것이 맞을까. 잘 알고 선택한 것은 맞을까. 뭘 좀 알아야 원하는 게 생기지 않나?

  결혼 시장은, 이 지점을 절묘하게 파고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와 남편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스튜디오 사진 외에 스냅 사진은 찍지 않았다. 동생이 스냅을 왜 빼먹냐고 꼭 둘이 가까운 근교로라도 가서 찍으라고 여러 차례 권유했다. 난 결혼식 영상이 잘 남았으면 해서, 영상작가 한 분을 더 추가 섭외하면서까지 영상제작을 의뢰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한사코 그걸 말렸다. 의외로 결혼 영상은 잘 안 보게 되고 찍더라도 작가 추가 섭외는 진짜 아니라고 했다. 우린 세탁기와 건조기의 용량을 키우고 싶어 신모델을 양보했는데, 가전은 무조건 신모델을 사야한다고 반대하는 지인도 있었다.

  우린 그냥 우리가 하고싶은 데로 했고, 우리의 선택에 지금까지도 후회하지 않는다. 


  사실 평균대로 가는 게 제일 속 편하고 저렴하긴 하다. 결혼식도 공장식 결혼은 싫다곤 하지만, 알아보다 보면 가장 합리적이고 편하고 시스템화가 잘 되어 있는 것이 공장식 결혼이다. 내 결혼도 따지고 보면 우리는 우리만의 소중한 추억과 의사가 담겼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에게는 그저 부페가 맛있었네, 차가 막혔네, 드레스 이쁘더라- 이게 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그 평균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나려고 애썼던 것들. 우리에게 정해진 예산 안에서 그래도 요리조리 빼보려 애썼던 항목들, 남들은 안 해도 우리는 더 하려고 했던 것들. 그런 것들이 모여 우리만의 결혼에 가깝게 완성 시켜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을 준비하는 지인에게 연락이 오면, 이런저런 이야기의 끝에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 결혼과정에서 '정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들어오는 '평균치'에 속지 말라고. 실체가 없는 '평균치'에 어느 순간 내가 치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꼭 한 번쯤은 정신을 차려보라고.

  당장은 웨딩 베뉴, 예물 예단, 집 평수에 그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결혼식이 끝나고 난 후에도 멈출 수 없다면, 그 평균치는 계속해서 우리의 인생 전반에 스며들어 남편 수입, 집안 재력, 자식 학력의 비교- 끝이 없을 정도로 우리를 숨 막히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평생을 쉐도우 복싱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결혼식 외에도, 모든 순간이 일생에 단 한 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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