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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빨강 Oct 26. 2022

# 숙제 같은 소비를 끝내는 방법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살면서 맞이하게 되는 몇 번의 변곡점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운이 좋게도, 기존의 내 소비관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일하면서 친해진 한 언니의 신혼집이 될 공간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다. 역시 새집이고 아직 짐이 들어오지 않아서 그런가 집이 참 깔끔하고 이뻤다. 

  "언니 화장대만 먼저 들어온거야? 화장대 참 이쁘다"

  "아니, 짐 다 들어온거야."

  "이게 짐이 다 들어온거라고?"


  언니의 화장대 위에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눈 비비고 쳐다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눈을 비비고 쳐다봤지만, 피지오겔 튜브 하나만 달랑 있었다. 핸드크림용으로 갖다 둔 것 아니었어? 이걸로 화장이 된다고? 아니 기초를 이거 하나로만 써도 돼? 언니, 내가 추천하는 화장품 몇 개 선물해줄까? 

  내가 제안하는 몇 가지의 선물을 언니는 한사코 마다했다. 본인이 엄선해서 쓰는 것들이 있고, 그것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언니 피부가 나보다 더 이뻤다.


  너무 궁금해서 물어봤다. 결혼식 참석이나 가족 경조사같이 화장이 필요한 자리는 어떻게 해?

  "샵 가서 받고 가면 돼. 내가 직접 연습해서 화장하는 것보다 그 사람들이 더 잘해"

  매번 너무 비싸지 않아? 그래도 평소에도 연습해서 화장하고 싶은 날 화장하고 다녀도 좋잖아.

  "생각해봐라? 정말 풀메이크업이 필요한 날은 일 년에 몇 번 안 된다?"

  언니는 쿨하게 대답했다.


  집에 온 나는, 넘쳐나는 화장품으로 가득 찬 화장대를 보면서 생각에 빠졌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고 비싼 것이라 해도, 남들의 추천템이네 인생템이네 어쩌고저쩌고해도 본인이 안 쓰면 그만이었다. 저 화장품들의 산 속에서 내가 진짜 필요로 하고 잘 쓰는 건 뭐지? 나도 결국 쓰는 것 몇 개가 정해져있는데, 내 화장대도 그렇게 깔끔하게 할 수는 없나? 옷장은 왜 또 이렇게 심란하대. 복작복작 든 것들은 많은데, 당장 꺼내입고 싶은 옷들은 없었다. 그러니까 기회만 되면 옷을 샀지. 그런데 매일 입고 출퇴근하는 것들은 딱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정해져 있었다. 이유는 입고 싶은 옷을 못 찾겠으니까, 귀찮으니까, 손이 더 잘 가는 것들이 편하니까. 


  숙제 같은 소비에 지쳐있을 때였다. 그득그득 쌓여있는 물건들의 숲에서, 필요한 게 저 안에 있는데 있는데 하면서 정작 찾지도 못해 자꾸자꾸 또 사모으기만 할 때였다. 그때쯤이었다. 미니멀리즘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게 되었고, 곤도 마리에의 책을 만났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 책. 


  당시에는 몰랐다. 그냥 신박한 방식의 새로운 정리정돈을 방향을 알려주는 책이네- 정도로 생각했다. 예쁜 수납박스나 우유곽 등을 이용해 아기자기하게 잘 수납해서 정리정돈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기존의 컨텐츠들과 달리, '버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또, 버리는 기준이 사용하지 않은 지 3년, 망가지거나 고장나서 효용을 다한 것- 같은 머리 기준이 아닌, '설레지 않는 것'이라는 마음 기준으로 두는 것이 신기했다. 하다하다보니 이런 식으로도 책 마케팅을 하네-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신기하고 재밌어서 잘 따라하고 직접 적용해보려고 많이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언니와의 대화, 그리고 곤도마리에의 책이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을 바꾸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번 싹 버리고 나니, 놀라울 정도로 머리가 맑아지고 개운하고 상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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