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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빨강 Oct 30. 2022

#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남는 건 물건보다 사람과 추억

  자취할 때는 다이소에서 파는 물컵도 그릇도 잘 사다 썼다. 하지만 이제 식기류는 다이소에서 잘 안 사게 된다. 평생 쓸 것, 식세기에 들어가는 것, 나 혼자가 아닌 가족이 함께 쓰니까 안전한 재료로 만들어진 것 등등의 이유로 이젠 구매하려고 집어 드는 식기류가 예전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비싸진다.      


  나 같은 경우 친정엄마가 요리엔 진심인 분이라, 그릇 세트에 냄비 세트, 칼 세트, 수저 세트, 락앤락 세트 아주 그냥 셋뚜셋뚜 모든 것을 다 맞춰주었다. 심지어 엄마는 초장 종지도 셋트를 맞추어주었다. 우리 지역에서는 회를 많이 먹으니까 이게 있어야 해- 등등 부엌을 물건만으로 아주 그냥 복작복작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혼 1년간은 월급 들어오는 족족 열심히 나만의 신혼살림을 채우느라 바빴다. 세제 디스펜서, 식재료 소분 하는 통, 양념통, 정리함, 네트망, 어쩌고저쩌고. 완벽한 우리집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자잘자잘한 소품 한두 개로는 맛이 안 난다. 하나를 하면 또 그거에 맞는 두세 개를 맞춰서 사줘야 집이 통일되어 보이고 깔끔해 보이니 여러 개 산다. 남는 건 어떻게든 또 잘 쓰게 되어 있다. 여튼 그렇게 우리집은 완벽한 집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완벽한 우리 신혼집, 아이 좋아.

  하지만 그렇게 평화로웠던 우리집에도, 이사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새로운 집을 구했다. 이사계획도 세웠다. 남편도 나도 집 꾸미기엔 일가견이 있고 좋아해서 이사할 새집에서 꾸미고 다시 정리할 생각에 신이 났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예전 집에 있던 팬트리가 이 집엔 없었네? 그럼 지금 팬트리 안에 있는 물건들이 다 어디로 가야 하지?      


  가정집을 이사한다는 것은, 자취방을 옮기거나 기숙사 방을 옮긴다는 수준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일단, 드는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무엇보다 가구와 가전의 압박이 컸다. 그 친구들은 이삿짐센터에 견적을 받을 때부터 큰 역할을 차지하더라. 특히 신혼 가전은 새 제품이라 기본적인 견적부터 더 높게 부르고 시작한다. 살 때는 거거익선이라 무조건 큰 인치를 추천하는 TV가, 이사를 할 때는 큰 사이즈로 올라갈수록 추가 견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권유받은 TV보다 한 치수 적은 사이즈의 TV를 샀었는데, 그게 딱 추가 견적을 받지 않는 마지노선의 인치였다. 

  중요한 건 아무리 이삿짐센터가 일을 잘해주어도, 기본적으로 가구와 가전은 옮기면 옮길수록 망가진다. 우리의 신혼과 신혼살림들은 적어도 아기 낳기 전까진 멀쩡할 줄 알았다. 살 때 가전도 가구도 평생 쓴다며 좋은 것으로 사야 한다고 욕심부리며 샀는데 딱 2년 살고 이사했더니, 금세 우리 가전과 가구는 중고가 되었다. 

  거실 서랍장 몇 개는 슬라이더가 뻑뻑하게 삐거덕거리고, 냉동실 왼쪽 칸 하나는 자꾸 바닥에 얼음이 얼어서 서랍이 달라붙는다. 서재 책상은 큰 찍힘이 생겼다. 심지어 몇 가지는 이사하다 파손되어서 버려야만 했다. 이삿짐센터를 잘못 고른 우리 탓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회의감이 든다. 망가진 가구와 가전처럼 우리 결혼생활도 언젠간 멍이 들 수도 있나, 세상에 영원한 게 있기나 한가-라는 회의감까지 들었다. 심지어 이전 집에서 잘 쓰던 정리함도 이사할 집에서는 사이즈가 맞지 않아 쓸 수가 없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새로운 정리함이 필요하다는 거다. 기존에 쓰던 정리함은 쓸 수가 없고 짐이 된다. 아, 정리함도 짐이 되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최근 큰맘을 먹고 주물 냄비를 하나 샀다. 그 전에는 새로운 프라이팬도 하나 더 샀다. 집에 셋뚜셋뚜 스테인레스 냄비도 프라이팬도 많지만 사고 싶었다.

  프라이팬은 뜯자마자 센 불 화악 올려서 스테이크를 해 먹었고, 주물 냄비도 집에 오자마자 김치찜으로 개시했다. 스테이크는 아주 잘 익어서 겉바속촉의 야들야들한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주물 냄비로 한 김치찜은 별다른 양념하지도 않았는데 아주 깊은 맛에 수육 같은 보들보들함이 완전 밥도둑이었다. 앞으로 이걸로 갈비찜도 해 먹고 솥밥도 해먹을 생각에 너무너무 신이 나고 기대된다.      


  앞으로 우리집 부엌살림이 어떻게 될지는 또 모를 일이다. 십 년쯤 뒤에는 그릇을 절반쯤 다 깨 먹어서 싹 다 바꾸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프라이팬도 식세기에 돌려서 다 망가트려서 스탠팬으로 싹 다 바꾸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쯤엔 식세기도 다른 걸로 바꾸었을지도 모르지만, 고장난 걸 어째저째 달래가며 여전히 쓰고 있을 수도 있다. 지금 가진 물건과의 마지막이 어떨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도 내 옆에서 함께 하고 있을 사람과 그 추억은 영원하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만 생각하면 물건 망가지는 것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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