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록] 모두가 지나온 격동의 시기

#장편소설

by 늘보리

✿ 제목 : 데미안(DEMIAN)

✿ 저자 : 헤르만 헤세

✿ 출판 : 열린책들

읽고 있으면 저절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읽는 동안 내 고등학생 조카에 대한 생각이 함께였다.


본인 스스로도 주체하기 어려운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그 친구에게 내가 이모로써 해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나는 항상 위로와 격려의 말을 고민하지만,

내가 겪어본 적 없는 감정에 대해 조언이라고 몇 마디 건냈다가 섣부른 훈계질로 치부될까봐 늘 조심스럽다.


표현력이 뛰어나지 않은 나는 가끔 하고 싶은 말을 작가의 손 끝에서 나온 말로 대체하곤 한다.

내 어쭙잖은 말을 대신해 이 책도,

전하고 싶었던 의도들을 예쁘게 전달하는 수단이 되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갈피를 꽂았다.


모든 인간의 삶은 저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고, 그 길을 가려는 시도이며, 하나의 좁은 길에 대한 암시이다.
- Prologue


머리가 다 커버린 나에게 소설의 주인공인 "싱클레어"의 이야기는,

때론 이해되지 않고 그래서 그가 내리는 판단이 어리석게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어린 날의 나도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나만의 세계에 빠져있지 않았던가.

내 안의 세계에 갇히는 건, 심지어 지금까지도 종종 경험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 무렵 나는 특이한 피난처를 찾아냈다. 흔히 말하듯이 <우연히> 찾아냈다. 하지만 그런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내게 되면, 그것은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 자신, 그 자신의 갈망과 필연이 그것으로 이끈 것이다.
- 제5장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힘겹게 싸운다


-


그것은 감정이었으며, 불길이 타오르고 심장이 꿈틀거렸다! 당혹스럽게도 나는 비참한 가운데서 해방감과 봄기운 같은 것을 느꼈다.
- 제4장 베아트리체


싱클레어가 방황하는 청소년기에 부정한 것을 쫓았던 것처럼, 10대 시절의 나도 매사에 꽤나 냉소적이었다.


어린시절 모범생이었던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흥하도록 행동해왔지만

그에 반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일탈에 대한 묘한 쾌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나와 싱클레어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나는 그걸 생각에만 머무르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던 것 뿐.


그런 나를 엇나가지 않게 붙잡아주었던 건, 내 자신에 대한 믿음, 즉 신념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큰언니는 나를 "애늙은이"라고 불렀다.

그 말인 즉슨, 그때부터 스스로 결정에 대해 이유를 붙이고 판단에 대한 확신을 가져왔다는 것이리라.

그건 아마도, 내가 무얼 할 때 기쁘고 무얼 가질 때 만족감을 느끼는지와 같이

"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귀 기울인 덕분일 것이다.


-


그러니까 내가, 지금 내 나이의 딱 절반정도의 세월을 살아낸 그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이런거다.


너만 그런게 아니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이제 그 다음은, 너 자신에 대해 가만히 들여다보고 너의 내면이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라고.


그리고 마침내, 네 안의 피난처를 찾길 바래.


하지만 이따금 열쇠를 찾아서 나 자신 안을 침잠하면, 운명의 형상들이 어두운 거울 속에서 잠들어 있는 곳으로 완전히 침잠하면, 검은 거울 위로 몸을 굽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나의 친구이면서 인도자인 그와 똑같은 모습이.
- 제8장 종말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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