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장 Y

by 빵글

기관의 대표, 기관장 Y. 그는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복지관에 신입으로 입사하여 초고속으로 과장이 되었고, 이후 부장-관장까지 막힘없이 술술 올라온 사람이었다. 학교 선배였으며, 동문회장까지 하고 있었기에 실습생이나 직원을 우리 학교 출신으로만 뽑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다. 직원들이 우리 학교 출신이라면 치를 떨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랄까.



젊은 관장


Y는 기관장으로서 매우 젊은 나이었다. 사회복지는 워낙 보수적인 사람이 많아 그런지 항간에서는 관장이 너무 젊어서 문제라는 수군거림이 있었다. Y는 아랑곳하지 않고 젊은 관장 모임을 만들었다. 다행히 인근 타 기관 관장들도 나이들이 꽤 젊었다. 그들은 자주 모였고, 술잔을 부딪치며 젊음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렇게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며 다짐을 한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새로운 업무가 떨어졌다. 그렇게 젊은 관장들이 똘똘 뭉쳐서 나온 사업 중 하나가 연합사업이었다. H와 그렇게 싸웠던 연합세미나, 연합캠핑 등. 실무자들이 골머리를 싸매며, 다른 기관 상사 눈치도 봐야 하고, 의견이 틀어지면 기관과의 사이가 틀어지기도 하는, 이 연합사업은 기존 관장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젊은 관장들의 열정의 산물이었다.



동문회장


Y는 우리 학교 사회복지학과 동문회장이었다. 알고 보니 거의 떠밀려서 된 자리였다. ‘사회복지계는 학연이다!’라는 말이 많았던 그때. Y는 동문회장으로서 후배들의 취업 길을 열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혼자 시달렸다. 그래서 후배들을 취업시키고 싶어 했고, 실습생으로 뽑고 싶어 했다. 그렇게 뽑은 우리 학교 출신들은 사고를 너무 많이 쳐서 직원들이 기피하게 되었지만, Y는 멈추지 않았다.

학교에는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만나는 동문 행사가 꽤 많이 열렸고 그때마다 Y는 후배인 나를 데려가고 싶어 했다. 물론 나도 사랑스러운 동아리 후배들을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Y와 함께 가면 동아리 후배들을 볼 시간은 커녕 옆에서 시중들고, 인사하고 Y를 띄워주고 칭찬하기에 바빴다. 그러려고 데려가는 것 같기도하고. 그게 반복되다보니 점차 동문 행사를 피하게 되었다. 부장도 그게 너무~ 질려버려서 아예 가질 않는다고....



은근한 질투


회사에서는 뭐 라인을 잘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는 비영리기관이었고 특별하게 라인이 없었다. 라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관장 Y뿐이었다.


“넌 부장 라인이잖아~ 부장 말고 내 라인 할래!?”


말투는 꼭 심통이 난 어린아이 같았다. 다 부장을 좋아하고 자기는 좋아하지 않는다며 은근한 질투를 내비치던 Y였다. Y는 은근히 부장을 의식했다. 관장이 되면서 실무와 동떨어지고, 외부 일을 더 많이 하면서 직원들과 교류가 점점 없어지니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실무에서 직원들과 많은 교류를 하는 C를 부러워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있어 보이는 부장과 나이가 젊어 보이는 Y가 같이 다니면, 모두 부장을 관장으로 보고 관장을 부장으로 보고 인사를 건넸다.


“이럴 땐 어려 보이는 게 참 싫어!”


Y는 나이 들어 보이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앞머리를 올렸고, 염색하지 않고 흰머리가 계속 자라도록 했다. 다만 바꿀 수 없었던 한가지는 목소리. 근엄한 목소리를 가진 부장에 비해 까랑까랑하고 어딘가 가벼워 보이는 Y의 목소리는 무슨 수를 써도 바꿀 수 없었다.



우리 복지관을 위해서!


Y는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혹은 우리 복지관이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넘겨져 오는 일들을 거절하지 않았다. 타 기관에서 거절한 일들을 냉큼 받아오는 것은 일상 중 하나였다. 그렇게 받아오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었다. 기관의 위상을 올린다고 말을 하지만, 일이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는 직원은 없었다. 재주는 직원이 부리고 영광은 Y가 얻었다. Y의 모습을 계속 보고 있으니 불현듯 내 모습이 생각났다.



방짱인 시절


대학생 때 심리사회극 동아리를 했었다. 사회 문제와 개인의 문제에 대한 극을 대본으로 써서 연기하는 동아리였다. 당시 회장을 짱으로 불렀는데, 어쩌다 보니 방짱이 되어있었다. 소극적이고 리더십이 없던 나는 당연히 동기 2명 중에 짱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짱으로 가장 유력했던 동기는 총학생회로 바빠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으며, 다른 남은 동기는 휴학을 해버려 남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약간 떠밀려 짱이 되었다라는 부담감은 강하게 나를 짓눌렀고, ‘잘해야한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좋은 공연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연습량을 늘렸고, 선배들이 요청하는 공연은 무조건 강행했다. 아이들의 일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선배들에게 잘 보이면 자주 찾아와 주고, 맛있는 것도 잘 사주고, 취업 길도 열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후배들이 더 편하게, 즐겁게 할 거라는 생각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이 짱이 됐지만 정말 잘했다.’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나중에 선배들에게 “처음부터 짱은 너밖에 없었어.” 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건 예의상 해준 말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동아리원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복학한 남자 선배들도 동기들도 후배들도 너무나 힘들어했지만, 동아리에 들어온 순간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나의 꼰대 아닌 꼰대질에 잘 따라주었다. 아마 치열하게, 처절하게 발버둥 치는 나를 안쓰럽게 봐준 것 같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었던 일인지, 그 당시 나는 좋은 짱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시간이 흘러 관장 Y를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Y는 기관장이기라도 했지. 나는 대학교 청춘, 즐거움, 추억을 위해 가입했던 동아리를 의무감으로 짓눌렀던 짱이었다.



어쩌면 Y도


절대 동아리원들을 괴롭히려고 빡세게 굴린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오히려 내가 하는 일들이 동아리를 발전시킬 것이고, 그러면 아이들이 더 편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모든 행동이 ‘내가 리더로서 자질이 없다’라고 생각한 자격지심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어쩌면 Y도 젊은 관장이라 뭘 모를 거라는 그 수군거림 속에서 ‘나-잘하고 있어!’ 를 보여주려고 했던 건 아닐까? 기관의 위상이 높아지면, 직원들도 편할 것이라 믿으면서.



스무고개


보통의 상사가 그렇듯, 사실 상사의 머릿속엔 본인이 정해놓은 정답이 어느 정도 있다. Y는 그게 심했다. 본인이 원하는 정답을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고, 그 정답이 나올 때까지 스무고개를 했다. 특히 사업 평가회의 때 정답이 나오지 않으면 3~4시간 이상도 스무고개를 했다. 엄청난 체력 소모전이었다.

원하는 정답이 나오지 않으면 결재도 이뤄지지 않았다. 며칠째 같은 결재 건으로 들락날락하며 한숨 쉬는 직원들. 그렇게 해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팀장. 그 이후에는 부장이 소환되어 그 스무고개를 이어갔다.


“너희들이 스스로 깨달아야 의미가 있는 거야! 내가 이거야! 하고 알려주면, 너네는 생각이라는 걸 안 하잖아?!”


일리 있는 말이다. 주입식보다 스스로 깨닫는 게 더 오래가기 마련이니까. 뭐 그렇다고 하면 스무고개 하면서 답답하다는 듯, 짜증 난다는 듯한 표정과 제스처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이게 스스로 깨닫는 건지, 쫄려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 건지 구분은 할 수 있어야지. 그리고 사람의 집중력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 질질 끌면 끌수록 아무 생각이 안난다는 것까지는 모르나보다.



외모지상주의1


글을 쓰는 시점에서 13년 전이니, 지금과는 문화가 아주 다르다. 지금은 또 지금의 문제가 있겠지만 지금 인식으로 13년 전의 모습을 바라보면 억!소리가 나올 지경이다.(라떼는 빙의 중) 특히 여직원에 대한 외모 지적이 아무렇지 않게 이뤄졌다. 특히 안경 쓴 여직원들을 시시콜콜 괴롭혔는데. 특히 나를 보면 어김없이 안경 좀 제발 그만 쓰라는 관장의 지적이 날라왔다.


“난 안경을 쓰는 여자가 싫어! 면접 볼 때는 꼭 안경을 안 쓰고 온다? 그래서 합격시키면 나중에 다~~~안경 쓰더라?!”


본인도 안경을 쓰고, 부장도 안경을 쓰는데, 도대체 왜 여직원이 안경 쓰는 것은 못 보겠다고 안달인 건지, 안경 쓰는 것과 업무와는 무슨 상관이 있기에 그런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갔다. Y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렌즈를 끼는 여직원들이 대부분이었고, 렌즈가 잘 맞지 않아 안경을 써야만 했던 나는 Y의 주된 표적이 되었다. 계속되는 닦달 속에 질려버린 나는 입사 1년 3개월 만에 귀중한 명절 연휴에 라섹 수술을 강행했다.

수술 후, 내 얼굴 중 가장 예뻤던 것이 안경이었음을 깨닫고 꽤 오랫동안 좌절을 했던 기억이 난다. 또, 급하게 수술하고 바쁜 기관 일정으로 관리를 잘못한 탓에 난시가 교정되지 않아, 흐릿한 초점을 맞추기 위해 눈을 찡그리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렸다.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제-발-수-술-하-지-마!라고 외치고 싶다.



외모지상주의2


복지관 식당 맛이 정말 좋았다. 영양사님의 솜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고, 직원들이 좋아하는 반찬들은 수북이 쌓아두셨다. 그리고 우리 기관은 회식도 야근도 밥 먹듯이 하는 곳이었다. 회식과 야근, 야식. 살찌우기 딱 좋은 조건이다. 그를 증명하듯 우리 기관 직원들은 입사 후 평균 10kg 이상이 찌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나는 먹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입사 후 25kg가 찌는 대기록을 세웠었다.

Y는 통-통하게 쪄버린 여직원들을 항상 지적하고 놀렸다. 매일 놀리는 일에 익숙해져서 놀리든지 말든지 했지만, 가끔 탁! 하고 찌르는 말을 들을 때면 심장이 철렁하기도 했다. 타 기관 직원이나, 지인들이 놀러 와도 통통한 직원들 놀리기에 바빴다. 아니- 안경도 그랬지만, 제발 벨트가 터져 나올 것 같이 나온 본인의 배를 보고 입을 열었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입사 후 몇 년이 지나자 외모 지적도 성희롱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관장님! 그거 성희롱이에요!!”


반박하는 직원들이 늘어나며 놀리는 빈도는 현저히 줄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봐


내가 처음으로 기획해서 성공한 추석 행사 이후, Y는 내가 일하는 방식이 맘에 들었는지, 나에게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연합사례세미나에 실패한 사례를 발표하겠다고 했을 때도 그는 흔쾌히 OK했다. 기관의 위상을 올리고 싶은 Y가 기관의 실패 사례를 공식화하는 일을 아무 거리낌 없이 허락하는 모습에 살짝 벙-찌긴 했었다. 다행히 그 사례발표가 가장 반응이 좋아 Y의 입꼬리는 하늘을 찔렀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뒤풀이에 나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신나게 칭찬해주었다. 그 칭찬 속에는 ‘내가 그 일을 허락했다.’가 녹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하고자 하는 방식들이 기존 방식과는 달랐고, 이는 Y가 젊은 관장의 패기를 보여주려는 모습과 비슷해 보였기에 응원해 줬던 것 같다. 덕분에 정말 원 없이 하고 싶은 사업을 했다. 한참 퇴사 고민을 안고 있었을 때 팀장 M이 나에게 해준 말이 있었다.


“빵- 여기가 첫 회사여서 잘 모르겠지만, 여기처럼 직원이 하고 싶은 사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기관이 없어.”



개관기념행사 28


어느 날 관장이 모두를 불렀다.


“우리 개관 28주년 기념 행사를 하자.”

“28주년이요...28?”

"응 28주년"


갑자기 익숙하지 않은 숫자로 기념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보통 10주년 15주년 20주년,, 뭐 이렇게 5단위의 기념행사를 하지 않나? 28이라는 숫자에 뭐가 있나? 다들 의아해했다.

28이라는 애매한 숫자의 기념행사였지만 행사 규모가 컸기에 모든 팀이 행사를 1~2개씩 맡고, 장장 5일 동안 진행되었다. 행사에 참석한 내빈들은 축하하면서도 뒤로는 한마디씩 했다.


“근데 28주년을 왜 하는 거야?”

“글쎄? 28에 뭐가 있나?”



개관기념행사 30


28주년 행사를 거하게 치렀기에, 30주년은 더 특별해야 했다. 연초부터 TF팀이 꾸려지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그저 매년 해왔던 행사에 30주년 로고를 적어넣는 것 말고는 특별하지 않았다. 결국 연말이 되어서야 Y의 지시로 30주년 개관 기념행사를 준비해야만 했다. 이 개관 기념행사 때문에 내 퇴사는 미뤄졌으며, 특별하고 성대하게 치루라는 Y의 말에 모든 직원이 분주히 움직여야만 했다.

개관기념행사 준비에 Y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크고 더 성대하게에 초점이 맞춰진 Y는 우리가 계획했던 사항들과는 사뭇 다른 것들을 준비해서 늘어놓았다. 본질을 잃어버린 개관기념행사에 부장도 나서서 Y를 말렸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행사의 총괄은 나였지만, 줄이 매달린 꼭두각시 인형이었고, Y가 가져온 퍼즐들을 더 틀어지지 않게 늘어놓는 것이 다였다.

결국 30주년 개관기념행사는 폭!망!했다. 이렇게 돈을 많이 들인 행사도 처음이었고, 이렇게까지 망해본 행사도 처음이었다. 신입 시절에 망쳤던 명절 행사가 대성공으로 보일 정도랄까. 30년 동안 걸어온 길, 그 길에 함께 해준 이들에 대한 감사, 앞으로의 포부 등을 전달하고자 했으나 Y가 억지로 밀어붙이고 이어붙인 있어 보이는 것들에게 묻혀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행사 뒤풀이 중 Y는 직원들에게 말했다.


“다들 고생 많았어. 특히 빵! 관장이 이것저것 간섭하고 고집부려서 고생 많았겠네. 그냥 너 하던데로 하라고 할 걸...참. 그래도 이만하게 행사 마무리한 게 다행이다. 다들 고생 많았으니 오늘 많이 먹어!”


가장 성대했어야 하는 행사가 본인의 입김으로 좋지 못한 결과를 보였다. 차라리 온전히 실무로 뛰어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미움받을 용기


Y는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관장이었다. 주변의 수군거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관의 좋은 평가를 위해, 자신의 좋은 평가를 위해.

장난기 많은 미소와 서운함이 잔뜩 드러난 눈과 입도 가끔 기억난다. 위엄있는 목소리가 아니라며 싫어하던 까랑한 목소리까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직원들과 가까이하고 싶지만, 이젠 직원들이 자신을 불편해하는 걸 알고 있기에 누르려고 노력하던 Y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철부지 소년 같았던 관장. 정 많은 삐돌이 Y. 이젠 미움받을 용기가 충분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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