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 C

by 빵글

이제 팀장들 이야기가 끝났으니 부장 이야기를 할 차례다. 부장 C는 신뢰감 있는 외모와 중후한 목소리, 차분하고 깊이 있는 모습으로 타 기관에서 많은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학교 선배였으며, 중간에 다른 직종의 일을 하고 돌아오긴 했지만, 졸업 후 지금까지도 한 기관에만 종사한 고인 물 중의 고인 물이었다(찐 고인 물은 관장인 건 안 비밀).



실습 지도자


C는 내가 실습할 때 실습 지도자였다. 그는 실습일지의 소감문 분량을 A4 1~2장 이상 길게 써오라고 했다. 매일매일 설문조사를 하는 똑같은 일이었는데 소감문을 길게 쓰라니 참 어려웠다. 하루가 끝나고 밤이 찾아오면 실습 팀원들의 카톡방은 난리가 났다.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하냐며, 없는 말 지어내려니 차라리 소설가가 되는 것이 낫다며 매일 투덜거렸다.

소감문을 길게 쓰기 위해 매일 똑같았던 일을 더듬고 더듬어 다른 점을 찾아내야만 했다. 달랐던 점과 그거에 관한 느낀 점을 썼다. 잘 찾아보면 무언가 다른 점이 하나씩 있었다. 도저히 생각이 안 나면 느낀 점을 지어내어 쓰기도 했는데, 쓰다 보니 내가 직접 느낀 것 같고 그랬다. C는 실습일지를 꼼꼼히 읽으며 두리뭉술하게 적힌 부분은 더 자세하게 쓸 것을 요구했고, 좋은 아이디어는 아낌없이 칭찬하는 피드백을 줬다. 일지를 쓸 때는 정말 고역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 과정이 정말 좋았다. 그때 배운 지식은 금방 잊었지만, 고심해서 쓴 소감들은 깊숙하게 남아있었다. 이후 번아웃이 올 때마다 그때 실습일지를 펴서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열정이 가득했고, 생각을 깊게 하려고 노력했던 모습들이 담겨있었기에 읽다 보면 다시 일어날 힘이 생겼다.

경력이 쌓여 실습 지도자가 되었을 때 나도 C와 똑같이 실습생들에게 소감을 A4 1~2장 분량으로 쓰도록 지도했다. 나에게 좋았던 그 과정이 그들에게도 의미 있는 과정이 되길 바랐다.



결재를 미뤄야하는 날


사실 신입 때 C의 모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J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었고, C에게 결재를 받기 전에 팀장 J에게 늘 컷 당해서 혼날 일이 별로 없었다.

다만 입사 초에 기억나는 C의 모습이라곤 어마어마하게 기분파였다는 것. 아- 곧 다음에 나오는 관장도 마찬가지구나.

도대체 왜 그들은 기분파일까? 기분을 숨길 체력이 부족한 걸까? 의지가 부족한 걸까? 아무튼 C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사무실이 턱턱 숨이 막혔다. 관장은 따로 관장실이 있었기에 거기에만 있으면 그 아우라가 문에 막혔는데, C는 사무실 중심에서 어마어마한 아우라를 내뿜었다. 그런 날 잘못 걸리면 된통 까이는 날이다. 관장까지 기분이 나쁘다고? 그럼 그날 결재는 다음 날로 PASS!



꼭 그렇게 남들 앞에서 혼내야했냐!


C는 불같이 화를 낼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는 사무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사무실에 손님이 있는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직원들 앞에서 혼나는 것도 서러운데, 외부 손님이 있을 때 혼나는 것은 더 고역이었다.

어느 날 월급이 20만 원 정도가 더 입금되어 회계 담당 직원을 찾아갔다. 전에도 몇백 원, 몇천 원씩 실수로 입금되어 다시 돌려준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입금이 잘못되었으리라 생각했지만 회계직원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20만 원씩이나 더 들어올 리가 없을 텐데요?”

“아니야! 잘 들어갔다니까?! 빵이 열심히 일했나 보지.”

“아니 열심히 일해도, 여긴 초과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더 들어올 게 뭐가 있어요.”

“아! 저번달 고생했나 보지~빵! 잘 들어간 거 맞아! 저번달도 고생 많았어~”

“이상한데.... 저 이거 써요! 나중에 딴말하지 마세요~”

“어~”


열심히 일한 값이라고 했지만 절대 그럴 일이 없는 구조였고, 열댓 번을 묻고 물어 확인을 받아낸 뒤 꽁으로 들어온 돈은 바로 학자금 상환하는 통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의 한 달 뒤 다급한 회계직원의 목소리가 울렸다.


“미안! 빵... 4대 보험을 안 뺐네, 그거 다시 돌려줘야 하는데”

“제가 몇 번을 여쭤봤잖아요...... 저 그거 학자금 갚아서 없어요. 다음 월급 때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안되는데...흠.... 그럼.... 이건 편법인데 사우회 통장에서 뺐다가 다시 넣으면 안 될까?”

“그래도 돼요?”

“안되긴 하는데....”


그때 사우회장은 나였으니 사우회 통장에서 돈을 잠시 빌려서 쓰자는 제안을 했다. 아니, 회계가 이래도 되는 거야? 엄청난 일인 것 같았고, 여러 번 확인했는데도 이런 일이 생겨 당황스러웠던 나는, 팀장이었던 R에게 보고했다. 보고하자마자 날라온 사내 메신저


- 빵, 근데 이거 팀장한테 얘기하지마-

- ...?얘기했는데요? 이 일을 어떻게 얘기 안 하고 넘어가요?

- 아..... 벌써 했어? 그냥 내가 알아서 하려고 했지...


메신저를 주고받는 사이 R은 그대로 회계직원의 팀장이었던 M에게 보고하고, M은 그 즉시 부장 C에게 보고했다. 말 그대로 속전속결로 보고가 이뤄졌다. 부장 C가 벌떡 일어나서 나를 쳐다봤다.


“너- 평소에 월급 얼마나 들어오는지 몰라?”


엄청난 위압감과 함께 갑자기 들어온 질문. 회계 직원이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순식간에 보고가 되어, 이렇게 빠르게 추궁을 당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기에 순간 얼굴에 멋쩍은 미소가 지어졌다.


“...아...그게 ..”

“웃어!?!?!? 너 지금 웃음이 나와!!!!!?! 이게 우스워!?!!!”


울려 퍼지는 C의 사자후.


도대체 왜 혼나는지 모르겠는 상황. 몇 번을 확인했었는데도 왜 이렇게 된 건지. 이쯤 되면 제가 잘못 알려준 거라고 바로 나서야 하는 회계직원도 입을 꼭 다물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크지도 않은 눈에 물이 차올랐다. 억울하다는 한마디도 못 한 채 눈물이 또옥-또옥- 흘러나왔고, C는 화가 많이 났는지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설상가상 사무실에는 직원들뿐만 아니라 사무보조 봉사자도 함께 있었다. 억울함과 민망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M은 후다닥 C를 따라갔고, R은 나를 달래줬다. 끄윽끄윽거리는 울음소리는 한참을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시간이 지나 C가 나를 따로 불러내었다. 눈은 퉁퉁 붓고 입은 한껏 나온 채로 C의 앞에 앉았다. C는 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해진 상태로 나에게 되물었다.


“차근차근 상황을 얘기해 봐”


사실대로 다 이야기했다. 회계직원한테 이상하다고 여러 번 확인했던 것, 본인의 실수를 모면하기 위해 사우회 돈을 쓰자고 했던 회계의 제안, 팀장에게 보고하지 말라고 했던 말, 아까 웃은 건 부장님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멋쩍어서 나온 웃음이었다는 것. 이야기를 전부 들은 C는 곧바로 사과했다.


“미안하다. 너한테 화낼 일이 아니였구나.”


사과받자마자 또 눈물이 났다. 억울하게 혼난 것도 있었지만 직원들과 봉사자 앞에서 혼났다는 것도 부끄러웠다.

그 이후에도 사무실에서 꽤 크게 혼나는 직원들이 많았다. 그럴 때는 직원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모니터에 고개가 빨려 들어갈 것처럼 목을 쭉 빼어 시선을 낮췄다. 혹여나 혼나는 직원이 민망하지 않게, 혹여나 본인도 잘못 걸려 혼날까 걱정하는 마음에.

추후 직원들의 자존감을 지켜달라는 건의 사항이 몇 건 있고나서야 C의 사자후는 줄어들 수 있었다. 아주 가-끔- 기관에 치명적인 폐를 끼치는 경우는 제외하고.



둘이서 합의를 보시죠


부장 C와 관장 Y는 대학생 시절부터 신입 그리고 각자 부장과 관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항상 함께 있던 사이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았지만 각자 바라보는 지향점은 너무나 달랐다. 그래서 곤란한 점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부장에게 가면 이런 피드백, 관장에게 가면 저런 피드백을 받았다. 두 피드백 방향이 N극과 S극 수준이었다. 대체로 부장이 관장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고 더 많이 양보했지만, 가끔 양보할 수 없는 부분도 존재했다.


“이건 내가 말하는 게 맞아. 관장님의 말씀은 그냥 듣고 고개만 끄덕이면 돼. 한 귀로 흘려버려.”


관장실에 들어가면 관장은 얘기했다.


“여기서 나가면 부장이 이렇게 하지 말라고 얘기하겠지만, 이건 내 말이 맞아! 그러니까 부장 말은 듣지마-. 듣는 척하면서 내 말 들어.”


이럴꺼면 제발 둘이서 원만한 합의를 봤으면 좋겠다. 아직도 이러고 계시려나?



이상과 현실


C는 지향하는 가치가 명확했고, 그 가치에 대해 직원들과 충분히 나누려고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가치에 반하는 업무는 지양했다. 그래서 종종 관장 Y와 부딪히는 일들이 많았다. Y는 기관의 운영을 위해 가치보다는 현실적인 방안을 더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눈감아도 될 일도 있다는 Y와 신념 하나 지키지 못하는 기관이 어딨냐고 반박하는 C가 있었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하지만, 기관 운영은 현실이야. 나 좋자고 이러는 게 아니란 말이야! 너도 관장해 보던가!”


과연 C가 관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할 때가 많았다. 관장이 되면 C는 현실과 타협할까? 아니면 타협 없는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까?



부장이지만 팀장입니다.


M의 출산휴가, J의 퇴사, R의 출산휴가와 퇴사로 팀장이 공석인 날들이 꽤 있었다. 선임 직급이 있는 팀은 선임이 팀장의 역할을 하며(결재권은 없었음) 팀을 이끌어 갔으나, 사원들만 있는 팀에서는 C는 적극적으로 팀장으로 해야 할 역할을 했다.

말만 팀장이 아니었다. 팀 회의도 이끌고, 사업도 같이 나누어서 했다. 특히 팀 내에서 궂은일을 도맡았다. 시간은 엄청 소요되는데 해도 티는 안 나는, 그렇지만 꼭 해야 하는 업무들 (어르신 밑반찬 배달, 후원품 수령 및 전달 등)을 맡아 직원들이 사업에만 열중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직급을 신경 쓰지 않는 C가 신기했다. 부장쯤 됐으면 뭔가 쉬엄쉬엄하며 멋들어진 일을 하고 싶을 텐데, 그는 늘 땀을 흘렸고 궂은일 사이에 있었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내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귀찮은 일, 궂은일에는 손 하나 까딱 안 하던 C였다. 직원들과 사회복무요원이 그의 손발이 되어주었었다. 그랬던 그가 어떤 계기로 변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반의 C의 모습을 아는 직원은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겨서 저러나’라는 신기한 반응이었고, 모르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부장이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술술술술술


입사하고 첫 워크숍. 열 명 남짓한 직원인데 소주 두 짝과 맥주 한 짝이 실리는 것을 보면서 순간 ‘타 기관에서 오는 걸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짐작했겠지만, 그 술은 다 우리 것이었다.

대학생 때도 그렇게 마셔보지 않았던 술이었다. 직원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갔지만, 막내인 내가 쓰러질 수는 없었다.

실습지도자였을 때도 멋있다고 생각한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던 C는 술에 취하니 음...이렇게 말하면 뭐 하지만 정말 개망나니가 되어있었다. 자는 직원들을 발로 툭툭 깨워 자리에 앉혔다. 잠을 편하게 잘 수도 없었다. 엄청난 난리로 C의 안경 한쪽도 부러졌다. 신뢰감을 주던 목소리는 잠을 깨우는 경박한 목소리가 되어있었고, 신남을 주체하지 못한 몸짓이 이어졌다.

10년 전 일이라 이런 회식의 분위기는 당연시되던 분위기였다. 그렇게 술에 쩔어버린 채 C의 추태를 다 보며 버티고 버티니 해가 뜨고 있었다. 아침 7시 C는 서서히 눈을 감으며 바닥에 옆으로 쓰러졌다. C를 보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D 선임도 한 마디 남기며 쓰러졌다.


“드디어....가셨다....”

“고..고생하셨습니다.”


쓰러진 D 선임 옆으로 나도 쓰러졌다. C의 술주정을 처음으로 온몸으로 경험했던 나였다.

우리 복지관은 술을 자주, 잘 마셨다. 회식에서 술을 안 마신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장염에 걸려도 장을 소독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술을 마시게 했고, 소주 3잔이 주량인 사람을 5~6잔씩 늘리며 박수를 치던 날들이 이어졌다.

전체 회식도 잦았지만, 직원들 모두 술을 좋아했고, 비공식적인 술자리도 많았다. 서로의 술버릇을 너무나 잘 알았고, 대처 방법도 잘 알게 될 정도로 많이 자주 마셨다. 그러나 C의 술버릇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고, 아무리 봐도 대처할 수 없었다. ‘술만 안 마시면, 진짜 괜찮은 사람인데’라는 말을 직장 상사에게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타 기관과 함께 간 워크숍. 어색한 타 기관 사람들과 친해지려는 찰나, 맥주를 신나게 흔들어서 숙소 천장까지 뿌려버린 C의 모습에 타 기관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별일 아니라는 듯 흘러내린 맥주를 닦기 바빴다.


“부장님이....술 마시면 사람이 변하네요..;;”


뭐- 공공연하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몇 년이 지나 C의 건강에 이상 신호가 왔다. 그렇게 술을 끊게 되었고 더 이상 망나니 C는 볼 수 없었다.



딱-한잔만


큰 행사가 끝나고, 사내 식당에서 가볍게 회식을 했다. 기분이 좋았던 C는 끊었던 술을 입에 댔다. 가볍게 맥주로 목을 축이던 그는 점점 맥주에 소주를 타고, 맥주보다 소주의 비율이 커질 때 즈음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오랜만에 본 망나니 부장. 오랜만이라 그런지 아니면 참아왔던 모든 것들이 터진 것인지 평소보다 C는 더 날뛰었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고 나는 엄마가 부른다는 핑계로 그 현장을 도망쳐 나왔다.



직원 소환


다음 날 C는 초췌한 얼굴로 출근했다. 출근 안 할 것처럼 마시더니, 그래도 어찌 출근은 했다. 그리고 곧 직원들을 한 명씩 휴게실로 소환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로 부르는 건지 전혀 짐작이 안 갈 때 즈음 내 이름도 불렸다.

C와 마주 앉았다. 그는 머쓱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그저 멀뚱멀뚱 쳐다만 봤다.


“내가.... 어제 많이 취했지?”

“네.”

“내가 너한테는 어떤 실수를 했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빤히 쳐다봤다. 그동안 망나니짓을 해도 기억이 안 나는 척, 시간이 훌쩍 뛰어넘은 척, 입을 꾹 닫았던 그가 무슨 연유로 물어보는 건지.


“빵~ 솔직히 얘기해줘도 괜찮아.”


뭐- 그렇게 말씀하시니 가감 없이 모두 이야기했다. C는 체념한 듯이 듣고 있었다.


“미안하다. 빵”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부장이 돼서 추태를 부렸어. 이제는 그러면 안 되지.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물어보는 거야. 미안하다. 빵.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입사한 지 3년 만에 너무나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그동안의 망나니 C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머쓱하고 민망한 미소를 짓고 있는 C의 얼굴이 겹쳤다. 그렇게 모든 직원과의 면담을 끝내고, C는 전 직원에게 커피를 샀다. 그 이후 정말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부끄럽고 추한 모습을 직면하고, 사과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처음부터 망나니가 아니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퇴사 이후 5년 만에 찾아뵌 C에게 물었다.


“요즘도 술 안 드세요?”

“그때 이후로 한 입도 댄 적 없어. 안 먹겠다고 약속했잖아.”

“딱 한입두요?!”

“어! 딱 한 입도!”



아- 그는 꼰대였지만


평생 조언을 구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본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바로 부장 C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 나이가 들면 들수록 변하지 않는다는 말 모두 C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내가 근무한 4년 5개월 동안 엄청난 꼰대, 전형적인 부장의 모습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바꾼 유일한 사람이었다.

변화의 시작으로 기억나는 것은 C가 매일 아침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조금씩 변해갔다. 기록을 습관화하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그래서 나도 일기를 쓴다. 내 모습이 좋게 바뀌었는지 안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예시를 눈으로 직접 보았기에 꾸준히 스스로를 돌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손 편지


퇴사 후, 모든 직원에게 편지를 썼었다. 얼마 후, 집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C가 보낸, 내가 쓴 편지의 답장이었다. 대부분 편지 잘 받았다며 카톡을 보냈는데, 그는 직접 손으로 답장을 써서 보냈다. 그 이후로 한동안 편지로 근황을 주고받았었다.

퇴사한 지금도 종종 연락해서 만나는 몇 안 되는 상사 C.

J가 업무 성향에 큰 영향을 줬다면, C는 전체적인 삶에 영향을 준 상사였다.

부장님 건강하게! 좋은 모습으로 남아주세요. 또 편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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