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없는 수난시대 H

by 빵글

R이 휴직계를 내고, 우리 팀은 팀장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대체 근무자가 들어왔지만 실질적으로 팀을 이끄는 건 내가 되었다.



자신감과 부담


‘R보다 못하지 않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그렇다고 엄청나게 잘 할 자신은 없는 묘한 상태였다. 팀 성격상 세미나 말고는 각개전투 방식의 업무라 크게 해야 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J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박힌 터라 팀장이 없는 지금이 나를 더 잘 보여줄 수 있다는 기회로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들을 잘 해내고, 잘 보내면 한 단계 더 성장해있을 거란 강한 믿음이 있었다.



다시 시작된 세미나


6+6+6에서 우리 팀장이 제외된 5+6+6이 되었다. 우리 기관 정보의 부재가 없어야 했기에 실무자 회의와 팀장 회의를 동시에 참석해야만 했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팀장 회의에서 나는 유일한 실무자였고, 실무자 회의에서는 유일한 팀장이었다. 전년도 세미나 때 고집부려 지켜낸 한 줄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할 말은 해야 하는 사람’으로 낙인되어 버렸다.


“실무자들이 좀 더 욕심내줘야지. 빵쌤이 팀장 회의에서 나눈 이야기들 실무자에게 잘 전달해 줬으면 좋겠어요.”

“아~ 빵~~. 팀장님들이 너무 무리한 걸 요구한다고 해줘요. 팀장 회의 때 전해줄 수 있죠? 할 말 다 하잖아!”


각자 기관에서 본인 팀장, 팀원들과 이야기해도 충분한 이야기들을 나에게 전달해달라 부탁했다.



안 만만해보이는 방법


워낙 동글동글하니 만만하게 생겨 길거리에 나가면 도를 믿으십니까를 열 번도 넘게 잡히는 나였다. 연합회의만큼은 만만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팀장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 기관이 부족해 보일까 걱정되었다.

안 만만해 보이는 방법을 찾다 찾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아이라인 진하게 그리기였다. 더 높고, 더 진하게. 연합회의가 있는 날이면 아이라인은 높게 치솟았다.


‘눈매라도 싸나워야 만만하지 않겠지!?’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지만 정말 진지하게 번지지 않는 아이라이너를 잔뜩 구매하며 낄낄거렸다. 우리 직원들은 내 얼굴로 연합회의 날을 알아챘다.


“빵 오늘 연합회의가?!”

“네! 잘 올라갔어요!? ”

“어! 아이라인이 관자놀이까지 가겠는데?”


직책도 팀장도 없는 내가 선택한 덜 만만 해보이는 방법이었다.



주관기관 B


이번 세미나 주관기관은 B 기관이었다. B 기관은 우리 기관과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 회식이나 워크숍도 연합으로 종종 같이했기에 모든 직원과 안면이 있었고, 친하기도 했다.

B 기관장은 주관이 매우 뚜렷했다. 본인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맹렬히 맞서 싸우는 사람이었다. 어떠한 설전도 피하지 않았고, 어떠한 부당한 대우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 단어로 말하면 외골수랄까. 주변에 적이 많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던 사람이었다. 그 관장 미니미가 세미나를 총 담당한 H 팀장이었다.



B 기관의 H 팀장


H는 J와도 매우 친한 사이였다. H는 의욕 넘치던 나를 흥미로워했고, 자주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는 ‘수준’을 따지는 사람이었다. 기관과 사람 수준을 평가하는 말을 자주 했다. ‘수준이 많이 올라왔네, 예전엔 진짜 떨어졌었는데. 이젠 같이 해도 괜찮겠어.’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사람이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되어 B 기관과 함께 간 연합 워크숍, 술에 취해 잠든 이가 많았던 늦은 밤. J와 H는 나를 앞에 두고 무능력한 R을 한참이나 험담했었다. 팀장 ‘수준’도 아니고, 기관의 ‘수준’을 떨어트린다면서. 그들은 밤새 ‘수준’을 논했다. 어차피 다른 회사의 사람이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저 사람 밑에 팀원은 힘들겠구나 딱 그 정도.



‘주관’이라는 이름하에


6개의 기관이 함께하는 연합 세미나를 ‘주관’이라는 이름 하에 B 기관은 마음껏 주무르기 시작했다. 연합이란 단어가 무색하게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진행하는 일들이 많았다. 다른 의견들은 묵살되었다. 전년도 세미나는 수준 낮은 ‘발표회 수준’이었다며, 이번에는 ‘높은 수준’의 세미나를 해야한다고 했다. B 기관장이 워낙 외골수였기에 다른 기관의 관장들도 쉬쉬 넘기는 분위기였다.

여기저기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그나마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어느새 ‘할 말 다 하는’ 나였다.

연합이란 단어에 독단은 있을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특히 팀장이 없어서 무시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마치 한껏 부풀려진 복어처럼 의견을 피력하며 H의 대척점에 섰다.

그렇다고 H와 B 기관장의 파워를 꺽을 수는 없었다. 관장들도 피하는 마당에 내가 맞선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H와의 신경전, 팀장 회의와 실무자 회의를 번갈아 참석하며 서로의 의견을 전달하는 비둘기가 되어버린 탓에 엄청난 부담과 피로감에 휩싸였다.



부장이 나서다


보다 못한 부장이 나섰다. 팀장 회의에 참석할 테니, 실무자 회의에만 참석하라는 지시였다. 직원의 힘듦을 볼 수 없다며 부장은 연합 회의에 참석했다.

부장이 참석한 회의. 팀장들은 불편한 기색을 가감 없이 내비쳤다. 과장도 아닌 부장이 팀장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앉아있으니 다들 좌불안석이었다. 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부장님을 소환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부장의 등장에 태도가 싹 바뀐 팀장들을 보며 묘한 쾌감을 동시에 느꼈다.



밤 늦게 걸려온 전화


부담감을 내려놓게 된 금요일 밤. 직장동료와 함께 생맥주를 들이켰다. 저녁 9시 기분 좋게 취기가 올라오려는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H 팀장이었다.


“여어- 빵! 뭐하나~ 우리 빵은 팀장 없어도 잘하지?”


약간의 발음이 눌린 걸 봐선 H도 불금을 즐기는 것 같았다.


“팀장 없어도 빵은 잘하잖아-!”

“에이-아니에요”

“잘하는데.... 꼭, 부장님이 와야겠어?”

“제가 부족해서 그렇죠.. 그리고 회의는 부장님이 하시겠다고 하셨고”

“아냐. 지금 여기 부장님 계시거든?! 같이 한잔 중이야. 우리 회의 참석하는 거 부장님이 부담스럽데, 다른 팀장들도 부담스러워하는데 꼭 부장님 껴야겠어? 그냥 빵 혼자 해”

“부장님이랑 같이 계신다구요?”

“어~ 부장님이 회의 가는거 부담스럽데 -어!*&(*@(*T”(뚝)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술에 취한 H에게 다시 전화하고 싶지 않았고, 전화도 다시 오지 않았다.

부장과 H 팀장은 친했다. 음- 친했다기보다 H 팀장이 우리 부장을 존경하고, 좋아하고, 잘 따랐다.

부장에게 회의 참석을 요청하지 않았다. 부장의 선택이었다. 막상 참석해보니 부담스러웠다면 나한테 말하면 될 일이었다. 그 이야기를 다른 기관 팀장 입에서 듣고 싶지 않았다. 배신감에 화가 났다.

월요일이 공휴일이었기에 찝찝, 찜찜, 분노로 금요일 밤부터 월요일까지 보내야 했다.

그래, 혼자 하리라 부장이 부담된다면 나 혼자 보란 듯이 하리라 결심했다. 화요일 아침 바로 부장을 찾았다. 부장도 마침 할 말이 있으시다며 따로 자리했다.


“생각해 봤는데 내가 팀장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네, 같은 생각입니다. 회의에 참석하시는거 부담스럽다고 H 팀장한테 얘기하셨다면서요.”


서운하고 속상했던 마음이 터져 바로 말로 튀어나왔다.


“내가? 내가 부담스럽다고 했다고?”

“네, H 팀장한테 금요일에 전화왔었어요. 부장님이 회의에 참석하는거 부담스러워하신다고.”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H의 진심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부장은 ‘팀장’ 대행으로 참석한다고 했지만, 팀장들은 달랐다. 팀장들에게는 ‘팀장’ 대행이라 해도 부장은 부장이었다. 팀장들이 자기 때문에 부담스러워 의견도 자유롭게 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참석하기는 어렵겠다는 말을 H에게 했다고 했다.

H는 부장이 참석하지 않기를 바랬을 것이다. ‘주관’을 등에 업고 본인이 끌고 가던 회의가 존경하던 부장의 등장으로 어렵게 될 것 같아 싫었던 것 같다. 잔뜩 들어간 술은 연락처에서 나의 번호를 찾게 했고, 본인의 진심과 부장의 말을 섞어 전달했다. 술김에 저지른 실수라고 믿고 싶다. 맨정신이었다면, 진짜 세상 너무 쪼잔하고 치졸하잖아.



표정 좀 풀어


이간질(?) 사건 이후, H에게 남은 것은 악감정뿐이었다. ‘수준’을 따지며 말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 강약약강 태도, 뭐 하나 맘에 들지 않았다.

사람이 별로였지만, 일도 별로였다. 실무자 6명+팀장 5명이 회의 내용을 [도]로 이해하고 준비하면 H는 회의 때 이야기 한 건 [솔]였다고, 왜 다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나며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11명 중 10명이 A로 이해했다면 H가 설명을 못 했거나, 중간에 본인이 의도를 비틀었거나 둘 중에 하나일텐데 H는 늘 우리를 탓했다. 기껏 준비해 온 [도]는 무조건 [솔]이어야 한다며 우기는 바람에 재작업하는 일들이 많았다.

반복되는 재작업에 불만들이 머리 꼭대기까지 올랐지만,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고, H에게 악감정이 잔뜩 남은 나는 표정부터 말투까지 독기가 잔뜩 올라 그를 대했다.


- 빵 표정이 너무 무서워. 표정 풀어


회의 중 실무자 카톡방에 카톡이 울렸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그렇게까지 적대감이 들고 그 감정을 표현한 일이 없었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H를 보면 가감 없이 표정이 드러났다. 아! 생각해 보니 지금도 그런 표정을 지을 때가 종종 있다. 길에서 연기를 뿜어대며 담배를 피는 사람을 볼 때!



드디어 끝난 세미나


B 기관의 고집대로 진행한 세미나는 최악이었다. 우리가 발표하기로 준비한 내용을 사회자인 H가 먼저 이야기했다. 참여자가 질문을 하면 논점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며 공개적으로 창피를 주고, 솔직한 의견을 내면 그게 아니라며 언성을 높였다. 엉망진창인 행사에 발표대에 서서 한참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 기관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수준 높은 세미나를 참여자들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세미나 이후 뒷풀이


6기관이 함께 모여 뒷풀이를 했다. 술이 들어가니 아쉬운 피드백들이 오갔다. H 때문에 팀장과 실무자들이 많이 힘들었다는 부장, 관장들의 평가가 이어지고 H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부족했습니다.”


우리 부장은 나에게 수고하고 맘고생 많았다며, 소주를 연거푸 따라주셨고 나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부장님. 저 술 더 먹으면, 앞에 앉아있는 사람한테 주먹을 꽂을지도 몰라요. 정말로요.”


내 앞에는 H가 앉아있었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것


R이 복귀하지 않아 팀 개편이 이뤄졌다. 계속 그 팀에 있으면 또 연합세미나를 하겠다는 생각에 팀을 바꾸고 싶었다. B 기관과 H 팀장에게 질릴 대로 질려버렸고 그 여파는 내 사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팀을 이동하고 싶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여 새로운 팀으로 가게 되었다.



원수는 외다리나무에서 만난다


새로운 팀에서도 연합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새로 생긴 기관과 B 기관, 그리고 우리 기관. 총 3개의 기관이 함께하는 1박 2일 캠프 행사였다.

주관기관은 또 B 기관이었다. 그리고 들려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 총괄팀장이 H였다. 알고보니 B 기관도 인사이동으로 H 팀장이 팀을 이동하게 된 것이었다.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소리를 질렀다.


“그 인간을 또 봐!!? 내가 어떻게 피했는데엑!!!!!!!!”

“빵… 또 관자놀이까지 그림 그리겠네....”

“ㅇㅏ..........아악!!!!!!!!”


잊어야 한다. 일은 일뿐이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 뒤집어지는 속을 잡고 무한정 되뇌이며 회의에 참석했다. 이번엔 팀장이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여전히 휘두르기는 전문이었다. 신생 기관 앞에서 기강 좀 잡고 싶었나보다.



술김이 아니였어


세 기관이 모였다. 본격적으로 행사를 준비하기 전, 화합과 의기투합을 위해 열린 첫 회식이었다. 전년도에 담당했던 전임자들까지 모였다. 공교롭게도 우리 팀장은 참여하지 못했다. 난 왜 이런 자리에 항상 혼자인가...

신생 기관 팀장과 실무자, B 기관 H 팀장과 실무자, 우리 기관에서는 전년도 행사 담당자였던 선임과 내가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먹음직스럽게 고기가 익어질 때쯤 술잔에 술을 따랐다. 건배를 위해 술잔을 들어 올릴 찰나 H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빵, 내가 세미나 하기 전에는 빵 참 좋아했는데.”


농담하는 건가 싶어 웃으며 받아쳤다.


“저도요. 세미나 하기 전 까진 팀장님 참 좋아했죠.”

“...00 팀장들이 빵 별로 안좋아 하는 거 알지?”


갑자기 세미나를 같이 했던 기관 팀장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아...그래요? 그건 몰랐는데?”

“그 팀장들이 예의 엄청 따지더라고”

“이상하네요. 팀장님들 저랑 엄청 친한데?”

“자-자 옛날 얘기 그만! 짠!!!!!! 짠 합시다!!”


심상치 않은 말들이 오가자 신생 기관 팀장이 서둘러 잔을 들었다. 그는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고, 금세 새로운 행사 이야기로 돌아섰다. 술 한 모금도 입에 안 대고 신생 기관 앞에서 내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깍아내리려는 H의 모습에 기가 차고 놀랄 뿐이었다.


‘그때 부장님 얘기, 술김은 아니였구나.’


차라리 술이라도 잔뜩 마신 상태였으면, 서로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으니 저 행동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을 테였다. 하지만 술 한 모금 마시지도 않은 맨정신이었다는게 놀라웠다. 왜 저러는 거야 도대체?

세미나를 같이 했던 실무자 카톡방에 카톡을 보냈다. 2년을 같이 한 실무자들이었기에 이제는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 팀장님들이 나 예의 없다고 싫어해?

- 누가 그런 말을 해?

- H가

- 지 얘기 아니야?


카톡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미나에 함께했던 팀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빵!!! 얘기 들었어!! H 팀장 미친 거 아니야?!! 우리 빵 안 싫어해! 얼마나 좋아하는데, 고생도 많이 했고! 우리가 같이 H를 욕하면 욕했지-! 오해하지 말아요. 아- 거 참 이상한 사람이네.”

“에~ 팀장님~ 제가 그 사람 말 왜 믿어여 우리 얼마나 친한 데에에에.”


그날 열은 받았지만, 술에 취하지 않았다. 취했다가 정말 후려칠까 겁나서.



'연합'이라는 이름 하에


구구절절 이야기할 것들이 너무 많지만, 결론적으로 엉망진창인 행사였다. 신생 기관과 우리 기관은 맡은 일에 차질 없이 아니 그 이상으로 준비하여 진행했고, 모든 문제와 변수는 B 기관에서 튀어나왔다. B 기관의 직원들은 주관 기관임에도 나 몰라라 귀가했고, 신생 기관의 직원들도 저녁 시간이 되니 사라졌다.

H와 실무자, 그리고 우리 기관 사람들은 발로 뛰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다. H와의 악감정을 넘어서, 같이 하는 ‘연합’ 행사였기에 끝까지 함께 잘 마무리하려고 노력했다.


‘나도 참- 이런 사람한테 깍아내려지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업무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닌데, 번드르르 말만 하는 사람에게 그동안 당했다는 것이 우습기까지 했다.

땀범벅이 된 H와 나, 그리고 부장.

H는 만감이 교차한 듯한 얼굴이었다.


“고마워요. 진짜. 미안하고..”


후련한 듯 후련하지 않은 말과 함께, 행사는 끝이 났다.



지금도 그래


10년의 회사 생활 중 가장 화나고,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뽑으라면 J도 아니고 B 기관 + H와 일한 순간이었다. 같은 사회복지사라는 사실이 환멸 날 정도였다. 실제로 얼마 있지 않아 퇴사를 결심했다. 물론 그들이 퇴사의 주원인은 아니었지만 원인 중 한 가닥 정도는 분명히 차지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속에 불이 일어나는 걸 보면 제대로 해소되지 않는 일인 것 같다. 절대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절대 저런 상사가 되지는 말아야지의 대표적인 사람.

지금도 그럴까 궁금하면서도,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은 그 일을 어떻게 회상할까?


그냥 술 진탕 마시고 한 대 쳤으면 속은 후련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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