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직업은 사회복지사였다. 사회복지에 큰 뜻을 가졌던 건 아니고, 그저 성적에 맞춰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학교에 다니다 보니 사회복지학이 재밌었고, 자연스럽게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첫 복지관을 낙하산으로 입사했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정식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입사했으니, 낙하산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
업무강도가 상당하던 종합사회복지관이었다. 신입에게 인수인계만 하면 잠수를 타는 바람에, 늘 채용공고가 끊이지 않고 올라오던 곳. 채용공고가 자주 올라오면 기관 이미지에 좋지 않다며 관장은 해결책으로 주변에 괜찮은 사람을 채용하기로 했다.
당시 나는 그 기관의 실습생이었다. 졸업 전에 한 번만 하면 되는 현장실습을 더 배우고 싶다며 추가로 신청했었다. 실습 2회 차에 4학년인 나는 첫 현장실습인 사람들보다 능숙할 수밖에 없었고,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관장과 부장이 나와 같은 학교 졸업생이었다.
‘학교 후배’ + ‘일 잘했던 실습생’ + ‘졸업 예정자’
‘주변에 괜찮은 사람’은 어느새 내가 되었고, 신입사원이 3명째 잠수를 시도했을 때 나는 입사할 수 있었다.
그땐 몰랐다.
그렇게 입사하게 된 일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는지
실습했던 부서로 발령 나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까다로운 팀장이 있는 부서로 발령이 났다.
J는 공과 사가 명확한 사람이었다. 일할 때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냉정했지만, 친한 직원들과 사담을 나눌 때는 웃음도, 장난기도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J는 언제나 나에게 엄격했다. 늘 차가웠고 위엄 있게 행동하였으며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첫 회사의 긴장감 때문이었을까, 그냥 내가 일을 못하는 거였을까. 정말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작은 실수들이 항상 나왔다. 자그마한 실수들은 모이고 모여서 산더미 같은 이면지들을 생성해 냈다.
당시 직원들이 사용한 종이들을 모아두면 사회복무요원들이 이면지로 사용 가능한지 내용을 확인 후, 이면지 활용 도장을 찍어 이면지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혼자서 엄청난 이면지를 내보내는 것이 부끄러웠다. 결국 책상 서랍에 종이들을 꽁꽁 숨겨놨다. 서랍이 꽉 찰 때면 주말에 집으로 몰래 가져가 내가 직접 도장을 찍었다. 어떻게 이렇게 간단한 서류조차도 한 번에 결재가 나기가 어려운지, 어떻게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는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꾹-꾹 도장을 눌렀던 것이 기억난다. 잦은 실수의 향연에 시간이 갈수록 J의 인내심은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숨은 깊어졌고, 점점 더 차가워졌으며, 나에게 무관심해져 갔다.
입사 3개월 차. 설날 맞이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명절행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매년 하던 행사였기에 어려울 일이 없었지만, 신입인 나는 보기 좋게 행사를 망쳐버렸다. ‘신입이니까 누군가가 어떻게든 챙겨주겠지’라고 생각한 나의 태도가 불러온 참사였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신입이라면 다 그럴 것 같기도 하고.....)
행사가 끝나자마자 관장은 나와 함께 각 부서의 팀장들을 불러 세웠다.
“신입이 첫 행사를 하면 너희가 챙겼어야지?! 얘가 뭘 알아!? 얘 신입이야! 겨우 3개월 됐어. 뭘 믿고 얘한테 다 맡긴 거야? 너네 이 행사 처음 해봤어? 매년 하던 행사잖아, 근데 이렇게 될 때까지 뭐 했어?”
그야말로 가시방석이었다.
내가 망친 행사로 팀장들이 다 같이 혼나는 모습을 보는 건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제가 팀장으로서 신경을 못 써준 게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J는 관장과 팀장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후 J는 나를 따로 불러 이야기했다.
“그렇지- 내가 방 선생님 어떻게 일하는지 다 아는데, 내가 신경 못 써줬어요. 미안해요”
사과였지만, 사과가 아니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널- 믿은 내가 죄지’
J는 행사 이후 더욱 싸늘해졌다. 웃다가도 나를 보면 웃지 않았다. 그리고 종종 그럴듯한 업무지시로 나를 곤란하게 했다.
“오늘 외근 나갈 때는 그레이스 끌고 가요.”
“그레이스요?!”
그레이스는 1종 수동 차에 연식이 오래되어 회사 내에서도 베테랑 운전실력을 가진 몇 명의 직원들만 운전할 수 있던 차였다. 그때 나는 마티즈도 벌벌 떨면서 겨우 운전하는 생초보였고.
“스틱도 할 줄 알아야지 않겠어요?”
‘본인도 못 하지 않나.....’
J는 꽤 좋은 운전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레이스를 운전하지는 않았었다.
“편하게 차 운전할 생각 말고, 그레이스로 다녀와요.”
“..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클러치를 밟게 되었고, 그날 혼돈의 질주 끝에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기관에 복귀할 수 있었다.
생일이 찾아왔다. 직원들이 준비해 준 축하 파티를 즐겁게 보내고 롤링 페이퍼를 천천히 읽어본 나는 익숙한 J의 필체를 발견했고, 보자마자 숨이 탁-! 막혀버렸다.
축하의 말도 없이 강렬하게 적혀있는 짧은 문구
'본인의 역할을 잘하기를 바랍니다.'
롤링 페이퍼라 직원들도 돌아가면서 다 봤을 텐데, 이걸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축하 한마디도 안 할 정도로 내가 싫은 걸까? 나는 정말 내 몫을 못하는 걸까? 그날 나는 집에서 한 손으로는 엄마를 붙잡고, 한 손으로는 롤링 페이퍼를 움켜쥐고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J는 나를 싫어하고, 나는 점점 시들어 갔다.
별다른 실수를 하지 않아도 J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J의 표정을 살피며 둥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썼다. 일을 못 하는 스스로가 미웠고, 잔뜩 주눅이 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회식 때 술에 잔뜩 취해 옥상에 올라가 J의 다리를 붙잡고 펑펑 울기도 했다.
“제가 일을 너무 못해서 죄송해요오오오오오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매일 찾아오는 속 쓰림에 온몸이 비명을 질러댔고 급기야 급성 위경련으로 회사에서 쓰러지기도 했지만, J는 그것마저도 꾀병이라 생각했는지 병원에 실려 갈 때까지 단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그다음 날도 몸 괜찮냐는 말을 묻지 않았었지.
윗선에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했던 건지 아니면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입사 7개월 만에 나는 팀을 옮기게 되었다.
“그 팀에서는 적응 잘하기를 빌어요”
J는 짧은 인사를 건넸다. 내가 새로운 팀에 가자마자 J의 태도는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었다. J는 나에게 농담과 장난을 치며 웃기도 했다. 정말 공과 사가 명확히 구분된 사람인 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팀원이라는 사실이 싫었던 걸까?
급속도로 변한 J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뭐 이게 사회생활인가 싶었다.
퇴사 후 정말 오랜 기간이 지나서야 그 당시 같은 팀 선임이었던 D에게 J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때 J가 너 싫어한 거 맞아.”
“그걸 누가 몰라요, 다 알걸?”
“왜 싫어한 줄은 알아?”
“내가 그때 지지리도 일을 못 했으니까!”
“너 정도면 못한 건 아니야, 다른 신입 봐라, 더하면 더했지. 넌 정말 딱 신입만큼만 못했어.”
“어찌 됐든 못하긴 했죠. 뭐, 그럼 J팀장은 절 왜 그렇게 싫어한 건데요?”
D의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관장이 너를 겁~나 좋아해서.”
입사 전 그러니까 정확히 내가 실습생이었을 때, 과제로 제출했던 사업계획서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관장은 내 계획서를 복사하여 직원에게 뿌렸다고 한다.
“너네 부끄러운 줄 알아. 실습생도 이렇게 사업계획서를 써! 보고들 좀 배워라 배워!!!!”
그때부터 내가 입사할 때까지 관장은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J팀장아, 이제 능력 있는 직원 뽑았으니까 잘해야 한다? 너도 그때 그 실습생 알지? 앞으로 기대해!”
난 그저 열심히 했던 실습생일 뿐이었지만, 관장의 언행으로 직원보다 훌륭한 얄미운 실습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거기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관장과 부장과 같은 학교 출신이었다. ‘후배 사랑, 나라 사랑’이라며 관장이 들여온 직원과 실습생들이 사고란 사고는 잔뜩 내고 튀는 일이 많았고, 그 뒤치다꺼리하느라 지쳐있었던 직원들 눈에는 같은 학교 출신인 내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내가 입사했을 때, J도 갓 팀장이 된 상태였다고 한다. 신입이었던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첫 팀장이라 실수도,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했다. 그 실수 중에는 내가 망친 첫 행사도 포함되어 있겠지?
J는 야망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마침 가장 능력이 뛰어나고 경력이 높았던 M이 육아휴직을 냈고, 그걸 기회로 삼아 본인의 능력을 더욱 인정받고자 했다. 그때 하필 내가 팀원으로 나타난 것이다. 관장이 온갖 유난을 떨며 데려온 팀원은 너무나 평범했고, 실수투성이었다. 처음 맡은 팀장직을 잘 해내야 하는데, 자신의 능력은 부족하고, 정신이 없는 이 와중에 생판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은 자꾸 본인의 발목을 잡아채고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때 J의 나이는 겨우 20대 후반이었다. 그 일을 회상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그때의 J보다 나이가 많다. 그렇게 커 보이던 J는 그저 치기 어린 20대 팀장일 뿐이었다.
서툰 신입과 서툰 팀장 J. 그게 내 직장인으로서의 첫 디딤돌이었고, 늘 달고 다니던 위경련의 원인이었다. 실제로 J팀에서 탈출하자마자 위경련은 사라졌다.
J는 애증의 팀장이다. 마치 알에서 갓 나온 새끼 새가 처음 보는 새를 어미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J는 나에게 팀장 그 자체였다.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방식은 옳지 않은 방식이었지만 J가 업무를 대하는 태도와 본인의 욕심을 성과로 이끄는 모습은 내 눈과 뇌리에 지금까지도 새겨져 있다. 내 업무 스타일에는 J의 모습이 녹아있기도 하다. 처음이라 강렬했던 팀장의 기억. 아마 회사생활이 끝나지 않은 이상 내 깊은 곳 어디엔가 어떤 형상으로라도 남아있을 것 같다.
아-! 그리고, 정말 싫은 사람의 롤링 페이퍼를 쓰게 되더라도 거기에는 축하의 말은 꼭 써줄 예정이다.
난 J와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