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퇴사 후, 8개월 정도 휴식 시간을 가졌다. 한 달 제주살이도 하고, 글도 쓰고, 캘리그라피도 배웠다. 콘텐츠 에디터가 되고 싶었고, 디자인도 하고 싶었던 나는 쉬는 동안 디자인툴(포토샵, 일러스트, 인디자인) 자격증을 땄다. 무슨 패기인지 모르겠지만 겨우 자격증 3개로 디자인 회사에 이력서를 주구장창 냈고, 그중 딱 한 군데서 면접 제의가 들어왔다.
작은 오피스텔에서 운영되는 편집디자인 회사였다. S는 40대 중반이라 했지만, 나이보다는 젊어 보였다. 느낌이 디자이너 같지는 않았다. 일에 찌들어 보였지만 사람은 좋아 보이는 인상이었다.
관련 학과, 관련 경력이 있던 것도 아닌데 면접의 기회를 준 이유가 궁금했다. 이력서 내용도 인상 깊었고, 전혀 상관없는 직종에서 넘어올 정도면 열정이 대단할 것 같아 직접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S는 본인을 실장으로 소개했다. 주로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대표를 실장이라 부른다고 한다. 대표로 칭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S는 스스로 느끼기에 대표라고 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스스로 대표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때 실장이 아니라 대표라고 하려고요.”
S는 디자인에 자격증은 아무 소용이 없고, 학원도 다닐 필요가 없다고 했다. 본인은 20년 이상 디자인 업무를 했기에 편집디자인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려줄 자신이 있다고 했다.
이상하게 면접은 내가 보러 온 건데 마치 내가 S를 면접 보는 느낌이 났다. 면접자에게 어필하는 대표 아니 실장이라.... 진귀한 경험이었다. 사흘 후, 합격 전화가 울렸다.
편집디자인 일은 재밌었다.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질리게 했던 서류 작업도 없었고, 고심해서 행사를 기획할 일도 없었다. 행사나 프로그램으로 주말에 출근할 일도 없었으며, 가정방문이나 후원품 등 외근하는 일도 없었다. 그냥 자리에 앉아 레이아웃에 맞게 글을 책으로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은 즐거웠다. 내 손으로 무언가가 만들어진다는 것도 좋았다. 다만 하루 종일 앉아있으려니 허리도 아프고 눈도 아파서, 안경도 맞추고 방석도 새로 사야 했다.
S는 내가 모르는 것들을 세세하게 체크했고, 알아야 할 것들을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이건, 고-급 기술이에요. 이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20%밖에 모르는 고-급 기술. 학원에서 이런 거 안 배웠죠? 나랑 있으면 고-급 기술을 많이 알게 될 거니까. 잘 메모해요.”
자꾸 고급 기술이라고 강조하는 S. 오래 일한 사람들도 잘 모르는 기술이라고 자꾸 어필하는 S가 살짝 못미덥기도 했다. 허풍 같기도 하고.
그러던 어느 날 다른 회사에서 작업했던 파일을 받아볼 기회가 생겼다. 파일을 열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작업이라니...! 이렇게 레이아웃이 엉망일 수가...! 그제서야 나는 S에게 정말 잘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후 S를 전적으로 믿기 시작했다.
주로 라디오를 들으며 일을 했는데 라디오에서 힙합만 나오기만 하면 S는 신이 났다.
“오~ 나플라~! 이거 명곡이지”
나도 잘 모르는 래퍼들의 이름을 알았고, 랩을 흥얼거렸다. 휴대폰 벨 소리마저도 그때 유행하던 랩이었다. 나이로는 김광석이나 변진섭 노래를 즐겨들을 것 같은데(부장 C는 엄청 좋아했음) S는 힙합을 좋아하고 쇼미더머니 프로그램을 사랑했다. ‘이 나이에도 힙합을 좋아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노래방 가면 동창들이 다들 뭐라 해! 랩 부르면 애들이 노래를 꺼버려~ 다들 나이에 맞게 노래를 부르라는데... 아니 힙합에 나이가 어딨어!?”
그렇다. 힙합에는 나이가 없다.
회식 때 노래방을 갔는데 예상치 못한 S의 랩 실력에 기절하는 줄 알았다. 4명이 부르는 ‘오빠차’를 단 한 박자도 절지 않고 불렀다. 느낌까지 비슷하게 따라 부르는 S였다. 나름 나도 힙합을 좋아하던 터라 신나게 호응해 주고 더블링을 쳐줬는데, 그렇게 신나 하는 S는 처음 봤다며 차장이 함박웃음을 지었었다.
회사에는 차장도 있었는데, 차장은 S와 선후배 사이였다. 전 직장도 관장과 부장이 선후배 사이였지..... S와 차장은 철저하게 공과 사를 지켰다. 학교 동창 모임에서는 서로 반말을 하고 친하게 지냈지만, 사무실에서는 깍듯이 서로 존댓말을 했다.
차장은 난치병을 앓고 있었기에, 무리한 야근을 하지 못했다. 나를 채용한 이유도 차장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였다.
S는 차장을 많이 배려하고 있었고, 차장도 S를 잘 뒷받침했다. 차장은 굉장히 섬세한 사람이었다. 주변의 변화를 빠르게 감지해 냈고,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며 배려하는 일이 많았다. 주변 사람이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으면 안절부절못했다. 웬만한 10대 소녀보다 더한 갬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업무가 별로 없던 어느 날 S가 조조영화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보러 가자고 했다. S는 마블의 찐 팬인데 가족들은 같이 안 봐준다며, 직원들과 꼭 같이 보고 싶다고 했다. 차장은 손사래를 쳤다. 히어로 영화는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러닝타임이 세 시간이 넘는데 취향에도 안 맞고 내용도 모르는 영화를 꾸역꾸역 보는 일은 시간 낭비라고 했다. 차장의 완강한 거부에도 S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직원은 그렇게 배려하면서, 영화 취향의 배려는 없었다. S는 무조건 어벤져스! 차장은 그럴 거면 사무실에서 일하겠다!를 반복했다.
둘은 각자 나를 설득했다. 아니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차장님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S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차장은 입이 잔뜩 나온 채 3시간이 넘게 어벤져스를 봐야 했다. 그 후 차장은 3주 동안 우리와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나는 왜?
S는 종종 본인의 신입 시절을 이야기했다. 디자인 업계는 박봉에 야근도 많고,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라떼는’으로 시작했지만, 항상 마무리 말은 ‘난 그러지 않을 거야’였다. 그 시절이 너무 힘들었기에 자기가 회사를 차리면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고.
실제로도 야근은 많이 없었다. 야근이 필요하면 스케줄을 조정해달라고 미리 이야기했다. 직원들을 야근시키지 않기 위해 본인이 밤새서 일을 했다. 직원이 아닌 자신을 갈았다.
야근수당도 잘 챙겨줬다. 밤새워서 야근해도 수당이 없었던 것이 그렇게 서러웠다며, 야근수당만큼은 꼭 챙겨주고 싶다고 했다. 복지관은 초과근무 시간이 10시간이 한도였는데, 여기는 한도가 없었다. 연봉을 확 낮춰 입사했기에 야근을 더 하고 싶기도 했지만, 복지관에서는 100시간이 넘게 야근했던 터라, 돈이 적더라도 야근 안 하는 지금의 회사가 더 좋았다.
업무가 많아 야근이 엄청 많았던 달. 야근수당이 월급을 뛰어넘었었을 때, 세무사와 통화하는 걸 들었다.
“대표님~! 5인 미만은 야근수당 안 줘도 되는데요!? 이렇게 많이 챙겨줘야겠어요?”
“줘야죠~ 일했는데 줘야죠! 5인 미만이 어딨습니까?”
S는 월급날 감사하다는 인사도 받기 싫어했다.
“월급 들어갔으니 확인해봐요-”
“네-! 감사합니다.”
“에잇!!! 감사하다는 말 하지마요! 당신네는 일한 댓가를 받는 거지! 감사하다는 말은 오히려 내가 해야 하는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하지 말래도!!”
입사 후 1년. 내가 업무에 익숙해지고, 한 사람 몫을 다할 수 있게 되자 S는 차장이 더욱더 많은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아무래도 둘만 근무했을 때랑 다르게 직원이 생겼으니, 차장이 선임으로써, 그리고 든든한 자신의 조력자로서 역할을 더 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S는 본인이 하던 수준 높은 작업을 차장에게 조금씩 맡겼다. 차장을 압박하는 말들이 자주 들려왔다. 말이 세지는 않았지만 소녀 갬성 차장이 상처받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내 앞에서 한 소리씩 듣는 것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차장은 점차 하지 않던 실수를 반복했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차장은 퇴사했다.
내 입사가 둘의 사이를 망친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내가 아닌 누가 입사했더라도 결과가 같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뭐 여전히, 동창 모임에서는 잘 지내니까.
S는 거래처에게 유독 약했다. 기존 거래처를 유지하는 데에 힘을 많이 썼는데 새로운 거래처도 기존 거래처에서 소개 받아 유지하는 정도였다. 물론 우린 외주업체였기에 갑과 을이라는 관계에서 을이었지만 거래에 있어서 무조건 숙일 필요는 없었는데, S는 스스로 을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았다.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 갑작스러운 추가 수정 요청을 군소리 없이 수용하였고, 그로 인해 업무가 가중되는 일이 잦았다.
초등학생 수학 문제집 의뢰 건이 들어왔다. 의뢰한 곳은 새로운 거래처로 과외부터 시작해서 학습지, 학습지에서 문제집까지 출간하려는 작은 학원이었다. 학년별로 5단계 문제집, 대략 30권 정도의 건수였다. 편집도 까다롭지는 않았다. 귀여운 그림들과 간단한 수학 문제를 눈으로 풀어가며 작업하는 재미가 있었다. 1~3학년까지 순조롭게 편집이 이뤄졌다. 학원 측에서 원고 수정을 너무 자주 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난이도가 어렵지 않아 S는 서비스 차원으로 수정비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고학년은 문제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편집 난이도가 올라갔다. 큰 어려움은 아니었지만, 학원 측의 원고 수정이 훨씬 더 많아졌다.
보통 최종 원고를 보내주어야 편집 작업이 이뤄진다. 원고 작성과 편집이 동시에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굉장히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보통 원고를 통째로 수정하게 되면 재작업비가 청구된다. 하지만 학원은 수시로 원고를 뒤집어엎었다. 초반에는 서비스 차원에서 별도로 재 작업비를 청구하지 않았는데 고학년으로 넘어오니, 재작업에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요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추가 금액 없이 무한으로 수정을 해주니, 학원에서 원고를 대충 봤다. 꼼꼼히 본다고 해도 오류가 날 판인데, 대충 훑어만 보니 어마어마한 오류가 생겼고 이는 무한 수정 작업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로 인해 야근하는 날이 많아졌고, 슬슬 손목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최대한 수정 횟수를 줄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수정사항을 확인했다. 그렇게 내가 수정할 부분을 체크해서 넘기자, 학원에서는 원고를 더 대충 보기 시작했다. 통일되지 않는 문법부터, 맞춤법. 문제는 수정하고 답을 수정하지 않아 내가 계산해서 넣어 두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방 대리님이 교정자를 하셔야겠어요^^”
울화통이 터졌다. 편집비가 아니라 교정비까지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학원 측도 답답했지만, S도 답답했다.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 야근수당까지 더 줘야 하는데 왜 이 상황에 대해 똑 부러지게 얘기하지 못하는지. 심지어 새로운 거래처에서 의뢰된 작업도 이 문제집 때문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실장님.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이 사람들, 수정 다 해준다고 너무 대충 봐요. 추가 수정비 좀 받으세요... 그러면 제가 좀 덜 억울할 것 같아요. 회사에 도움도 안 되는 일 하는 거 같아서 너무 힘들어요...”
“알겠어요. 방 대리- 내가 얘기할게요.”
S는 학원 측과 통화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추가 수정비도 받지 않았고, 그냥 원고를 꼼꼼히 잘 봐달라는 말로 끝이났다. 대충 보는 원고, 무리한 수정 요청은 계속되었다.
의사소통도 어려웠다. 대화해도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설명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설명을 잘못 하는 건지 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건지 답답했다. 오죽하면 친구들에게 똑같이 설명하고 이해가 안 되는 것 있으면 얘기해 달라고까지 해봤다.
‘도대체 학원 선생이 왜 못 알아듣는 거야? 도대체 애들은 어떻게 가르치는 거지?’
학원 대표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사람 속을 마구 긁어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수정해달라고 연락하는 통에 퇴근 시간 이후 연락하지 말라는 프로필을 만들어 걸어두었다.
본인이 해달라는 대로 해줬는데 이게 아니라며 뒤집는 일도 있었다. 억울한 것은 죽어도 싫었기에 카톡방 검색을 통해 진실을 밝혀냈지만, 자기가 말한 건 그게 아니란다.
처음으로 사무실에서 소리를 빼액!!!!!질렀다. S가 놀라 쳐다봤다.
“실장님. 저 열받아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어... 어.... 어 그래요. 방 대리 바람 쐬고 와요.”
직원이 이렇게 열받아 하는데도 조치 하나 안 해주는 S가 야속했다. 차라리 수정비를 받으면, 그들이 원고를 대충 보든지 말든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돈이 들면 최선을 다해 보겠지.
“차라리, 인성이 개 빻은 게 낫겠어. 멍청한 사람들이랑 일하는 것보단”
내가 매일 달고 다니던 말이었다.
그러다 그 학원에서 학습지를 만들어야 하는 새로운 일이 생겨 S도 학원 대표와 소통하며 일을 했다.
“아오!!!!!! 열 받아!”
S가 외친 한마디.
저는 그걸 1년을 넘게 겪었답니다.
편집디자인 일은 항상 새로운 일을 기획해야 했던 사회복지사의 일과는 다르게 정말 단순한 작업이었고, 기술을 익힐수록 빠르게 소화되는 작업량을 보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외주였기에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을 하는 기분에 열정은 금방 식어버렸다.
이후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정리하고 S와 공유하면서 효율을 높이는 일에 재미를 느꼈지만, 어느 정도 디자인툴을 잘 다룰 줄 알게 되니 그것마저도 지겨워졌다. 내가 기획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편집디자인 일을 2년 정도 경험하고 다른 곳으로 이직할 생각이었지만, 사람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터져버린 코로나. 불안한 새 직장으로 이직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불안정했기에 코로나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버텼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다시 활기를 찾을 때쯤 새로운 회사를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인턴이 들어왔고, 인턴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주면서 이직을 준비했다.
이직에 성공하며, S에게 퇴사를 통보했다. 놀란 눈치였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는 모습이었다.
“방 대리 자리는 언제나 여기 있어요. 어딜 가도 잘할 테지만, 힘들면 다시 여기로 와요! 기다리고 있을게.”
S는 좋은 사람이었다. 본인이 겪었던 것들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직원들이 짐을 질까 봐 스스로 짐을 지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거래처와 관계가 끊길까 늘 염려했고, 권리를 주장해도 될 부분을 양보하고 을의 입장을 자처했다. 직원들을 감싸는 만큼, 스스로를 감싸고 높였으면 어땠을까.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직원들을 책임져야 하는 사장으로서 S가 택한 생존 방법이었겠지만, S가 더 당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