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을 기억해봄 - 내 첫사랑 바게뜨
때는 바야흐로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는 길목에 있던 1994년.
다니던 직장의 상사 자제분(!)이 다니던 학교를 알게 되고 거기에 등록하기 까지 걸린 시간은 단 1개월이었다.
한 학기 등록금 무려 1백만원(그 당시 내가 다니던 은행의 월급이 아마도 70만원 가량이었던 걸로 기억함)을 내고 다니기 시작한 학교는 프랑스국립제과학교(INBP)와 자매결연을 맺고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던 대학부설 사회교육원이었다.
어려서 책이란 책은 다 좋아했던 나는 만화책 까지도 섭렵하여 국민학교 다닐 때 <베르사이유의 장미> 시리즈를 완독하고 주인공 '오스카'에 빠져 있던 프랑스빠였으니 프랑스빵을 배우러 다닐 생각에 주경야독의 일상이 그냥 즐거웠을 뿐이었다.
굉장히 귀했던 스파이럴 믹서도 처음 사용해봤으며 프랑스산 밀가루를 비롯한 재료들, 그리고 잘생긴 칼 토마 쌤의 프랑스어를 듣는 것이 너무도 좋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프랑스국립제과학교(INBP)의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한 수업이었던 터라 가장 기본중의 기본인 바게뜨를 매일 만드는 것을 당연지사였겠다.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빵'하면 단팥빵, 소보루빵 같은 달달구리한 과자빵을 간식 삼아 먹는 분위기였는데 딱딱하고 담백한 바게뜨는 이건 뭐지~라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직장에 자랑삼아 가지고 가도 독일에서 오랜 시간 유학했던 과장님을 제외하고는 다들 시큰둥한 촌스런 리액션들 뿐이어서 '흥! 담엔 가지고 오나봐라.'라며 서운해 했으나 매일 만드는 바게뜨는 차고도 넘쳐 그러거나 말거나 출근할 때마다 한 보따리씩 싸들고 갔었다.
그 바게뜨를 만드는 과정이 너무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도 2차 발효가 끝난 바게뜨에 눈을 띄워줄 때(바게뜨 특유의 칼집을 내는 과정) 진짜 내가 기술자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매일매일 업무가 끝나면 날듯이 지하철역으로 달려가 학교에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여의도에서 건대입구 까지 힘든 줄도 모르고 다녔던 그 때.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 만들었던 뺑드깡빠뉴나 뤼스틱, 뺑콩플레, 크롸쌍, 뺑오쇼콜라 등등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실습실 풍경이 그대로 떠오른다. 우리가 사용했던 믹서, 오븐, 바게뜨 눈을 띄워주던 도루코 면도날, 그리고 2인 1조로 실습 했던 작업대. 그 작업대에 마주하고 실습 했던 오빠. 지금은 남편이 되어 마주 보고 그때의 빵을 이야기하고 그 시절을 같이 그리워한다.
(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다른 것도 아닌 우리가 실습 했던 뺑드깡빠뉴가 너무도 먹고 싶어서 혼났었다. 유명 제과점에서 파는 것 말고, 우리가 실습 했던 그 빵.)
'첫사랑' 하면 떠오르는 바게뜨는 내가 빵을 알게 해주고, 빵 만드는 기쁨과 나누는 기쁨, 그리고 같은 추억을 나누는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게 해준 아주 귀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