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약속은 지킵니다.
싱가포르 여행 마지막 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아이가 짜증 내며 말했다.
“사진 그만 찍고 싶어...”
싱가포르 가족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 가족은 유니버설스튜디오에 방문했다. 그날은 싱가포르 기상청에서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라고 예보했기에 걱정했지만 여행 갈 때마다 비구름을 물러가게 하는 ‘날씨 요정’ 아내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오래가지 못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맑은 날씨는 한국의 맑은 날씨와는 매우 달랐다. 한국의 한여름 폭염에도 느껴보지 못한 단어 그대로 불볕더위 속에서 양산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놀이공원에 들어온 지 3시간쯤 되었을 때, 더위에 지친 우리는 많이 지쳐 서로의 감정을 돌봐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놀이기구 두 개와 공연 두 개 밖에 못 봤지만 다들 지쳐있어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이는 더워서 그런 건지 화가 난 건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평소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가 쥐라기공원의 거대한 공룡알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고, 어린이집에서 배워와서 그렇게 자랑하던 이집트의 스핑크스의 모형을 보고도 신나 하지 않았다.
놀이공원을 나가는 길, 잠시 더위를 식히러 들어간 작은 기념품 상점에서 아이는 여러 장난감을 관찰하고 만져보더니, 평소 좋아하던 공룡인 브라키오사우루스 장난감을 사달라고 말했다. 관절이 움직이기도 하고 마감도 좋은 장난감이었으나 가격이 매우 비쌌다. 일단 입구 쪽에 더 큰 기념품 상점이 있으니, 거기도 둘러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만약 거기에 이것보다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면 아빠가 돌아와서 사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아이는 “이거 하나밖에 안 남았어! 누가 사가면 어떻게 해!”라고 했다. 설마 하고 확인해 보니 진짜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이도 나름대로 그걸 고르기까지 많이 고민한 것이 느껴졌다. 큰 기념품 상점에 이게 없고, 다시 돌아왔는데 이 장난감이 없으면 싱가포르 장난감 가게에서 드러누워 떼쓰는 한국 아이를 보게 될 것 같아 사줬다. 대신 사진 몇 번 더 찍어야 하니 적극 협조하겠다는 조건이 있었다.
아이는 여느 때와 같이 장난감을 받고 활짝 웃진 않았지만 지금 기분과 체력으로 울지 않는 게 고마울 정도였다. 이 더위에서 벗어나 호텔로 간다는 마음 때문인지 아이가 장난감에 집중해서 짜증 내지 않아서인지 평화롭게 유니버설스튜디오의 사진 명소인 지구본 모양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앞에 서보라고 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여기서 사진을 안 찍으면 유니버설스튜디오를 온 게 아니라고 할 정도로 사진 명소다 보니 많은 사람이 인증사진을 찍고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 내가 원하는 구도가 한 장이라도 나올 때까지 셔터를 열심히 눌렀다.
“사진 그만 찍고 싶어...”라는 아이의 짧은 말에 그 말에 더 이상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사진은 찍지 않고 곧장 호텔로 돌아왔다. 꽤 더웠을 텐데 장난감 사면서 했던 작은 약속을 지켜줘서 고마웠다. 사진의 표정처럼 힘들고 짜증 나는 상황이지만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이 아이와 하는 약속은 절대 쉽게 생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