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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토그래퍼 May 09. 2024

너 몇 살이야?

놀이터에서 놀다가 새로운 아이를 만나면 가장 먼저 하는 말

놀이터에서 놀다가 새로운 아이를 만나면 가장 먼저 하는 말

“너 몇 살이야?”

한가한 휴일 오후, 바닷바람을 쐬러 삼대가 같이 강화도에 나들이를 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시장 구경을 하고, 우리 가족은 공원을 산책했다. 공원에서 작은 놀이터를 발견한 아이가 “나 놀이터 갔다 올게!”라고 말하고 신나게 뛰어갔다. 


그곳에는 여자아이가 혼자 놀고 있었다. 그 아이는 우리 아이를 보고 굉장히 좋아했다. 멀리서 봤을 때 혼자서 미끄럼틀만 타던 아이가 갑자기 우리 아이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두 아이는 통성명도 없이 같이 놀이터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둘 다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이 되자 우리 아이가 말했다.      


“너 몇 살이야?”

"난 다섯 살"

"난 여덟 살인데 내가 언니네"     


서로 통성명도 없이 나이 서열이 정해진 후에는 환상의 짝꿍이 되어 놀기 시작했다. 10분 넘게 뛰다가 물을 한 모금 마시면 또 처음처럼 뛰어놀기 시작했다. 내가 듣기에 양쪽 엄마들의 그만 놀고 가자는 말을 20번 넘게 들은 거 같은데 아이들은 노는데 빠져서 그냥 갈매기 소리처럼 들렸나 보다. 그렇게 그 둘은 신나게 놀고 나서 "다음에 또 만나면 같이 놀자"라는 말을 남기고 아쉽게 헤어졌다.      


사실 같이 놀 때는 나이가 많은 게 좋은 점이 별로 없다. 큰 애들은 전력을 다해서 놀았다간 동생이 칭얼거려 부모님께 "동생을 봐주면서 해야지"라며 한 소리 듣기 마련이다. 그래서 보통 어린애들이 술래를 하고 나이 많은 애들이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며 잡는 게 아름다운 상황이다. 그런데 누가 봐도 우리 아이가 나이가 많은 걸 알 정도로 키 차이가 크게 났지만, 나이를 꼭 물어보는 이유가 뭘까? 그러다 내가 보았던 사례들이 생각났다.      


학교 놀이터에서 놀다 보면 우리 아이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아이들과 섞여서 놀게 된다. 5~6학년은 학원에 다니느라 놀이터에서 놀 시간이 없으니 아마 3~4학년쯤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이다.      


한번은 우리 아이가 학교 놀이터에서 어떤 언니가 타고 있는 놀이기구를 기다리다가 자기 다리에 걸려 넘어져 울고 있는데, 나보다 먼저 그 언니가 다가와서 "괜찮아? 너 몇 학년이야?"라고 물어보았다.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구조대원이나 의료진이 이름과 나이를 물어보며 의식 확인을 하는 것과 상황은 비슷하지만, 목적은 다른 느낌이었다. 우리 아이는 "1학년이야"라고 대답했고, 그 여자아이는 이내 "놀 수 있지? 저거 타러 가자"라면서 자기가 타던 놀이기구를 양보해 주었다.      


그리고 다른 날 정글짐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정글짐을 올라가고 있었다. 꼭대기에 앉아있던 어떤 오빠는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우리 아이가 가까이 왔을 때 "너 몇 학년이야?"라고 물어보더니 1학년이라는 말을 듣고는 아무 말 없이 꼭대기 자리를 비켜 주었다.      


싱가포르의 어떤 호텔 수영장에서 한국 아이들과 외국 아이들이 섞여서 물장난을 치며 노는 진귀한 풍경을 본 적이 있다. 그 상황에서 한국 아이들이 가장 먼저 꺼낸 영어는 "How old are you?"였다.      

아이들의 사례들과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와 상대방의 서열을 확실하게 정리해야 빨리 친해지는 것 같다. 


수평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요즘 사회에서 굳이 나이를 따지면서 형, 동생을 따지면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이런 문화는 아직 어리고 부족한 사람을 도와주려는 우리나라의 정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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