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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토그래퍼 May 15. 2024

과일 파티하자!

그날은 아빠와 딸만의 첫 소풍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가을 주말 오후에 뭘 할지 고민 중 아이가 말했다.

“우리 옥상 가서 과일 파티하자!”


주말은 나에게 집 탈출게임과 같다. 꼭 밖에서 해야 할 일이나 가족 행사가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게 아닌 평범한 주말이라면 어디라도 가야 할 것 같은 답답함이 생긴다. 집순이인 아내는 나가는 걸 아주 싫어한다. 아이도 그 유전자와 기질을 물려받았는지 밖으로 놀러 나가자고 떼를 쓰지도 않는다. 나에겐 주말이 이렇게 지나가 버리는 것이 너무 아쉽다.      


나는 즉흥적이고 탐험적 활동을 좋아한다. 하지만 계획적인 생활을 좋아하는 아내는 내가 어디를 가자고 제안하면 그곳이 어딘지, 다녀온 사람들의 평가는 어떤지, 차를 타고 얼마나 걸리는지, 주차는 되는지, 밥은 뭘 먹을지 정도는 알아야 별말 없이 따라나선다. 신혼 때의 아내는 성심당이라는 빵집의 튀김소보로가 맛있으니 같이 대전에 가자거나, 겨울 바다를 보며 커피 한잔하고 싶으니 속초에 가자고 해도 별말 없이 갔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아내의 본질은 집순이 성향인데 그땐 날 많이 맞춰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평범한 가을 주말 오후 아내가 교회 모임이 있어 혼자 외출했을 때였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기 너무 답답했던 나는 소파에서 아이와 같이 책을 보던 중 아이에게 우리 어디라도 나가자고 얘기했다. 아이는 “엄마 없이 어디 가게! 엄마 오면 같이 가야지”라고 대답했다. 철없는 남동생을 자제시키려는 큰누나 같은 말에 나는 “그래.. 그러면 엄마 올 때까지 기다리자”라고 말하고 풀이 죽어 책을 보는 나에게 갑자기 아이가 말했다. 

“그러면 우리 과일 파티 할까?”      

과일 파티? 그게 뭔지 난 알 수 없었지만 지루한 나에게 굉장히 기대되는 단어였고, 어떻게 하는 건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여러 과일을 챙겨서 밖에 나가서 먹는 거야 재미있겠지?"라고 대답했다.

나는 일단 밖에 나간다는 말에 신났다. 아내가 이 말을 들었다면 왜 집을 놔두고 굳이 바람이 불고 먼지가 날아다니는 밖에 나가서 먹냐고 하지 말라고 반대했을 것이 분명하다. 아내가 약속이 끝나고 올 시간이 다 되었기에 우리 둘 다 본능적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냉장고에 있는 잘 익은 단감 두 개와 사과 하나와 나한테 쉽게 허락되지 않은 과일인 샤인머스캣 몇 알을 먹기 좋게 잘라 적당한 크기의 반찬통에 담아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캠핑 의자 두 개와 간이 테이블을 챙겨 문 앞에 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메라도 챙겼다. 

돗자리를 가져가서 누워서 흐린 하늘을 볼지 고민도 했었지만, 가을바람에 다른 집 옥상으로 날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먼저 준비가 끝난 아이는 현관에 있는 자기 의자를 들겠다며 들고 있었다. 챙겨놓은 짐을 나눠 들고 계단 약 100개를 올라 옥상에 도착했다. 나는 어린이용 캠핑 의자를 먼저 펼쳐주고 아이를 앉게 했다. 그리고 테이블을 펴고 반찬통을 열어 감을 하나 찍어 먹게 했다. 아삭아삭한 감을 아그작대며 먹던 아이가 어른용 캠핑 의자를 펴고 있던 나에게 말했다. 

“아빠 이렇게 나와서 과일 파티 하니까 좋다~ 그렇지?”


나는 아이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우리끼리라도 자주 좀 나가자고 했다. 얼마 뒤 약속이 끝나 돌아왔더니 집에 아무도 없어 놀란 아내의 전화가 왔다. 우리는 옥상에서 놀고 있으니 올라오라고 했다. 옥상이라는 말에 더 놀라서 뛰어 올라온 아내는 우리를 보고 헛웃음을 쳤다.

그날은 아빠와 딸만의 첫 소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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