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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토그래퍼 Jul 03. 2024

비 오는 날 중에 가장 좋았던 날

힘들었지만 가족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응석이 늘어 조금만 걸으면 다리가 아파 안아달라고 한다. 아이가 5살쯤에는 10kg이 조금 넘는 정도라 안아주는 게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은 무게였는데, 운동 삼아 안아주기 시작한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다. 학교 가는 길에도 안아달라고 하고, 집에서도 화장실 앞까지 같이 가자며 안아달라고 한다. 나는 아이의 다리 대근육 정상적인 발달을 위해 아이가 다쳤거나 특별히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안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비가 오던 그날은 아이를 안고 집에 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미디어센터 체험교육을 받은 후에, 학교에서 봤던 단원평가 만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실내 놀이 활동 체험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차를 타고 갈 수 있긴 했지만, 두 곳 다 주차가 어려운 곳이기에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아침부터 하늘이 흐렸다. 평소에 주로 야외에서 일하다 보니 비가 오기 전에 느껴지는 바람의 세기와 습도가 육감적으로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어젯밤 잠에 들기 전 다리 쑤심이 있어 뒤척였기에 오늘 비가 올 것이 확실했다. 비가 확실히 오긴 할 텐데 얼마나 올진 모르기에 예보를 확인해 봤다. 우리가 밖에서 이동할 시간에는 비 소식이 없었고 조금 일찍 오더라도 시간당 3mm 정도 온다고 예보가 되어있었다. 비가 많이 올 것 같진 않아 우산을 하나만 챙겼다. 우산을 여러 개 챙길 수도 있었지만, 우산을 여러 개 가지고 가서 쓸 일이 없으면 아내가 짐이 많다며 투덜거릴 것이 예상되었다. 그래서 우산을 딱 한 개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실내 놀이 활동 체험을 하고 나서 밖에 나오니 아니나 다를까 나오자마자 땅이 젖어있었다. 마중비가 먼저 인사하고 간듯했다. 다행히도 우리가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동안은 비가 오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젖은 우산의 빗물을 털면서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보고, 비가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함을 알게 되었다.


버스를 내리기 직전, 창밖으로 엄청난 강풍으로 뒤집히고 날아다니는 우산을 보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시간당 3mm의 강우량은 확실히 아니었기에 비를 맞고 걸어갈 수는 없었다. 우리 셋은 우산 하나를 어떻게 쓰고 가야 할지 고민했다. 가장 합리적인 결론은 내가 아이를 안고, 아내와 같이 우산을 쓴다면 우리 셋 다 우산을 쓸 수 있었다. 아이로서는 비도 피하고, 아빠한테 안겨 편하게 갈 수 있었기에 버스에서 내려 세찬 비바람을 속으로 가면서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추가로 버스정류장에서 바로 집까지 가기엔 조금 거리가 있어 중간에 있는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김밥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첫 번째 목적지까지 약 5분 정도 걸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20kg이 넘는 아이를 안고 가는 것은 꽤 힘들었다. 우리는 떡볶이와 김밥을 든든히 먹고 집으로 향했다. 아이의 무게가 적응돼서일까? 아니면 몸에 탄수화물이 들어가서일까? 처음 버스정류장에서 분식집까지의 5분의 짧은 시간보다, 분식집에서 우리 집으로 가는 10분이 조금 덜 힘들게 느껴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젖은 옷들을 갈아입는데 내 몸이 어색했다. 뭔가 전체적으로는 가벼워진 느낌인데, 팔과 허벅지는 근육이 단단해져 무겁게 느껴졌다. 내 배낭에 있던 전자제품들이 비에 젖진 않았는지 확인하던 중에 구석진 곳에서 항상 챙겨 다니는 작은 접이식 우산을 발견한 나는 소리쳤다.


'아 억울해!!' 

"무슨 일이야?"

"가방에 우산이 하나 더 있었어!!"

"항상 무겁게 들고 다니더니 필요할 땐 결국 못 썼네!"

아내는 평소 내 가방이 항상 무겁다며 물건을 좀 빼고 다니라고 핀잔을 주기에 약간은 약을 올리는 것처럼 들렸다. 아이는 젖은 옷을 다 갈아입고 기분이 좋은지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아빠~ 왜 억울해하고 그래~ 난 좋았어~"

"우산을 미리 찾았으면 옷도 덜 젖고 안아서 걸어오지 않아도 됐는데?!"

"나는 아빠가 안아줘서, 비 오는 날 중에 오늘이 제일 좋았어."

"그래, 너만 좋았으면 됐다..."     

내가 우산을 가방에 넣어두고도 깜빡한 덤벙거림이 우리 가족의 옷을 젖게 했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낸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리고 그 일이 지난 후에 추억하며 웃을 수 있음이, 우리가 가족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강풍이 부는 폭우 속에서 우산 하나를 셋이 함께 쓰고 가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누군가 사진으로 남겼다면 우리의 표정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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