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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토그래퍼 Jul 10. 2024

귀여운 아빠

내가...귀엽다고?

그날도 아이와 나는 뒹굴면서 힘겨루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우리가 자주 하는 힘겨루기는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 나는 아이의 팔과 다리의 대근육 근력 발달을 위한 운동시키기가 목표이고, 아이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으로 날 간지럼 태우기가 목적이다. 내 얼굴에 아이의 머리카락이 닿을 때마다 '으악, 간지러워'라고 소리치는 목소리와 반응이 재미있는지, 팔과 다리 그리고 몸통을 모두 이용해 나를 일어나거나 머리카락을 피하지 못하게 막는다.     


그러다 가끔 20kg 남짓한 아이 몸무게에 내 어깨와 골반 쪽에 무게중심이 딱 맞아 못 움직일 때가 있다. 그럴 땐 항복을 외치며 패배를 인정한다. 그러면 아이는 자기의 머리카락을 내 코와 입술, 귀 근처에서 살랑살랑 간지럼을 태우며 승리의 달콤함을 맛본다.      

그러다 갑자기 아이가 나에게 

'귀여워, 아빠 너무 귀여워'라고 했다.     


아이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물을 마시자며 휴전을 제시했다. 아이도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을 마시는 동안 나는 속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면서 귀엽다는 말을 들은 적은 거의 없다. 40살이 가까운 내가 그것도 8살짜리 내 아이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당황스러웠다.


먼저 아이가 전에 귀엽다고 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고양이, 강아지, 햄스터, 금붕어, 만화 캐릭터들....이 생물과 무생물들의 특징들과 나는 전혀 공통점이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 몇 명이 부르는 별명이 햄스터이긴 했지만, 지금은 애완용 햄스터라기보단 야생 들쥐 쪽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외형적으로 귀엽다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적인 관점에서 아이가 귀엽다고 표현했던 것은 갓난아이가 웃는 것, 강아지가 빙글빙글 도는 것, 고양이가 혀를 빼꼼 내밀고 멍한 표정으로 있는 행동들을 보고 귀엽다고 했다. 근데 난 지금 괴로운 표정을 짓고 항복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쯤 되니 아이가 약간 무섭게 느껴졌다.      


아직 어휘력이 많이 발달하지 않아 귀엽다는 말을 오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가장 확실한 방법인 아이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아빠가 귀엽다고?"

"응 아빠 귀여워"(확실히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귀여운 건 작은 것들한테 하는 표현 아닌가? 아빠는 이렇게 크고 얼굴도 네모네모한데?"

"..."

"아빠가 어른이 되고 나서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네가 말한 귀엽다는 뜻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래?"

아이는 귀엽다는 말을 대체할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는지 한참을 생각하다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웃겨!"


웃긴다는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뭔가 아이 생각을 억지로 꿰맞춘 느낌이 있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귀여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혹시 모른다... 아이 눈엔 어쩌면 내가 진짜 귀여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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