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크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원장 선생님."
키가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학생이 내 방 앞에서 인사를 했다. 마스크로 가린 얼굴을 보고 잠깐 생각했다.
"아! 지민이 맞지?"
유치원을 졸업하고 13년 만에 고3 제자가 찾아온 것이다. 오늘이 초등학교 프로젝트 수업과정 중에 '나 혼자 잔다.'는 프로그램으로 유치원에서 1박 2일을 하면서 졸업파티를 하는 날이다. 수능 전에 유치원 후배들의 응원카드를 받았던 졸업생이 아이들의 행사 날에 맞춰서 선물과 간식을 준비해서 온 것이다. 본래는 유치원 졸업식에 참석해서 다 함께 후배들의 졸업식을 축하해 주고 동창회 겸 소주한 잔 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코로나로 몇 년 동안 진행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시기가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이라서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제 더 이상 고3행사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번에 졸업파티날에 찾아온 것이다.
"진짜 반갑다. 얼마 전에는 준이가 취업을 나가야 해서 졸업식에 못 온다고 애들 간식 사가지고 엄마랑 다녀갔어."
"개구쟁이 그 준이요?"
"맞아."
우린 준이에 대한 에피소드를 특별하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개구쟁이로 기억하는 자체만으로 추억을 소환하고 웃음을 공유하기에 충분했다. 가족의 안부와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요즘 아르바이트하는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이제 초등학교 갈 준비를 하는 후배들의 교실로 향했다.
"이 선배님은 13년 전에 유치원을 다니셨어. 오늘 너희들 파티를 축하해 주고 예전에 유치원 이야기가 궁금하면 질문해도 됩니다."
아이들은 예전에 무슨 반이었고 자기들이 보낸 카드는 잘 받았는 지를 물어보고 무슨 대학에 갔는지도 질문하였다. 질문은 간단하게 끝내고 준비한 선물에 관심이 더 많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검색해서 준비했다는 스티커를 하나하나 포장해서 나눠주고 졸업식에도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갔다.
오후가 되자 3년 전에 유치원을 졸업한 학생들이 7세 때 담임 선생님의 손을 잡고 내 방에 찾아왔다. 초등학교 생활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유치원을 방문한 것이다. 유치원 졸업생들이 가장 많이 진학하는 초등학교 두 곳의 3학년에서 선정된 1일 강사다. 처음에는 1학년 학생으로 진행을 해 보았는데 질문에 대한 대답이나 학교 설명을 하는데 조금은 어려움이 있어서 3학년으로 바꿔서 초청을 했다. 유치원 아이들은 오전과는 다르게 초등학교에 대한 궁금증을 40분이 넘게 쏟아냈다. 대답 역시 교사들과 다르게 아이들 눈높이에서 척척해주는 모습을 보고 담임선생님들도 나도 가슴이 뭉클했다.
학교 선생님들도 유치원 선생님들처럼 친절하다. 때리지 않는다. 심지어 욕하는 친구도 무섭게 혼내지를 않는다. 하지만 친구를 괴롭히거나 왕따를 시키는 것은 금지다.
쉬는 시간에는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있다.
밥도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만 달라고 하면 된다. 억지로 다 먹지 않아도 된다.(물론 선생님에 따라 다르다.)
화장실도 급하면 아무 때나 갈 수 있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 가는 것이 좋다.
숙제는 거의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받아쓰기는 0점 맞아도 혼나지 않는다. 선생님이 미리 알려주는 것만 공부해서 쓰면 된다.
준비물도 학교에서 거의 다 준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하고 놀아도 되는데 친구가 싫다고 하는 걸 계속하거나 위험한 놀이나 뛰어다니면 안 돼.
수업이 끝나면 군것질을 할 수 있는데 용돈을 잘 보관했다가 써야 한다.
반복되는 질문도 많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선배들은 친절하게 각자 학교의 생활 방식을 알려주었다. 마무리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강사들에게 질문을 했다.
"지금 까지 얘기한 것 중에서 초등학교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해요?"
제 경험상 공부 잘하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한테 칭찬받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하고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로 사이가 안 좋아지면
계속 꼬여서 슬픈 일이 생겨요.
초등학교 선배님들의 조언은 그 누구의 어떤 가르침보다 도움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초등학교입학을 앞두고 불안증을 호소하는 유아들이 몇 명씩 생긴다. 공간이 변해서 생기는 불안보다는 '너도 이제 초등학생이니까 다 큰 거야. 초등학교 가서도 그렇게 하면 선생님한테 혼난다.'라고 부모님들이 무심코 건네는 부정적인 말 한마디에 심리적인 부담이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에 가는 것이 설렘과 기대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