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엄마보다 더 많은 도움을 받는 분이 계시다. 30년 가까이 유치원 바로 옆에 사시는 남궁아저씨다. 가끔 검색이나 유튜브로 이해가 어려운 것이 있을 때를 빼고는 찾아가서 시시콜콜 물어보거나 귀찮게 하는 일은 없다. 그냥 잘 관찰하면 된다. 언제 무엇을 심는지 어찌 심는지 관찰을 하고 바로 따라 하면 아주 안전하다.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서 시골로 이사를 오시는 분이라면 주변에 밭농사를 짓는 분들을 잘 살펴보기를 권한다. 책이나 유튜브보다 확실한 멘토가 된다. 텃밭을 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전원생활의 맛은 텃밭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계절을 따라 자연을 느끼면서 텃밭의 행복을 느껴보기를 기대한다.
멘토 아저씨 따라 하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시기 때문이다.
"농사도 공부도 다 때가 있는 거야. 아무 때나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하시던 엄마의 말씀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공부는 예전보다 나이와 장소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농사는 여전히 때가 중요하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옆집 무는 김장 무인데 우리 집 무는 한입에 쏙 들어가는 동치미 무로 밖에 사용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옆집 배추는 속이 꽉 찬 김장 배추가 되어있는데 우리 배추는 속 빈 배추로 우거지나 닭의 먹이로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남궁 아저씨는 내가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오기 전에도 유치원 옆에서 매년 농사를 짓고 계셨다. 당근을 캐는 날에는 바로 캔 당근을 맛있게 얻어먹기도 했다. 내가 당근을 먹는 모습을 보고 평소에는 채소 비슷한 반찬이 급식으로 나오면 다 골라내던 아이들도 '선생님 저도 먹어 보고 싶어요.'라면서 당근을 달라고 졸랐다.
"아저씨 당근이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거예요?"
"맛있어요?"
"네, 진짜 맛있어요. 10개만 파세요."
"팔기는 뭘 팔아요. 여기 작은 거 가져다 먹어요."
이렇게 가져온 당근을 큰 아들이 좋아했다. 소파에 앉아서 당근을 먹던 아기의 모습이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바로 캐서 가져온 신선한 당근맛이 아기 입맛에도 잘 맞았나 보다. 수분도 많으면서 달큼한 당근을 지금도 매년 재배하고 계시다.
남궁아저씨가 20년 가까이 옆에서 농사를 짓고 계셨지만 내 눈에 들어오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고 했던가 내가 텃밭을 하기 전에는 아저씨의 농사 솜씨가 궁금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순간 아저씨가 퇴비를 뿌리면 퇴비를 뿌리고, 밭을 갈면 나도 밭을 갈고, 아저씨가 비닐을 씌우면 나도 비닐을 씌우는 참 괜찮은 나만의 멘토를 찾은 것이다. 이렇게 한 지가 10년 정도가 되는 데 나는 딱 3일에서 1주일 정도 늦게 심고 수확한다. 아저씨가 시작하는 것을 보고 시작하고 주말밖에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퇴비를 뿌리더니 오늘은 아저씨가 관리기를 이용해서 밭을 갈았다. 아저씨는 감자 심을 밭과 완두콩 심을 곳을 정리하는 것이다. 감자와 함께 심기에 적당한 콩이 완두콩이다. 추위에도 강하고 모종으로 심는 것이 아니고 콩으로 심는 것이라서 재배하기가 쉽다. 또 순을 지르거나 잎을 따주는 일도 필요 없다. 그냥 내버려 두면 자유롭게 맘대로 커서 꼬투리가 생긴다. 단 완두콩 덩굴순이 나오면 지주대와 유인줄을 설치해 주어야 타고 올라가서 잘 자란다. 하지만 나는 구식으로 한다. 풍성한 나뭇가지를 꺾어서 박는다. 남궁아저씨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이용해서 농사를 지으신다. 나는 올해 옆집 담장을 이용해서 심을 계획이다. 쉽게 할 방법을 찾으면서 창의성이 생긴다. 모든 아이디서 물건의 시작이 이런 요령에서 나왔을 것이다.
완두콩 씨앗은 농자재 파는 곳이나 인터넷에서 3,000원 정도면에 한 봉지를 사면 100개 정도 들어있다. 용량이 너무 많아서 심고 남은 것은 내년에 또 심어도 된다. 6월에서 7월 사이에 꼬투리를 잘 지켜보고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수확해서 냉동고에 넣어 놓고 다음 콩을 수확할 때까지 먹으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