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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Mar 10. 2023

고구마 좋아하시죠?


처음에 산 땅은 밭이 아니라 논이었다. 하지만 나는 논농사는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주로 엄마가 담당하셨던 밭농사를 따라 하기로 마음먹고 논에 흙을 메꿔서 밭으로 만들었다. 흙을 메꾸는 과정에서 점프트럭 기사가 물었다

"여기다 무슨 작물을 심으실 거예요?"

조금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고구마빵 공장 주인의 꼬임에 빠져 갑자기 대출받아서 땅을 구매할 때도 계획이 전혀 없었는데 땅에 무엇을 심을지 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텃밭도 아니고 뭐를 심지?'고민하는 나를 보고 덤프트럭 기사가 말했다.

"고구마 심으세요. 옆에 고구마빵 공장도 있으니까 농사 져서 팔면 되겠네요."

"고구마를 좋아하기는 합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어릴 때부터 고구마 농사를 지어도 봤고 우리 집 아이들이 즐겨 먹는 간식이기도 했다. 기사말대로 다 못 먹으면 옆공장에 팔아도 그만이었다.

"좋습니다. 고구마 심어야겠네요."

"그럼 제가 고구마 농사 잘되고 맛도 좋은 흙으로 골라서 채워 드릴게요."

이렇게 지금의 고구마 밭이 완성되었다.


첫해는 멋도 모르고 밭 600평에 고구마를 다 심었다. 고구마순 값만 해도 80만 원이 넘게 들었다. 퇴비도 비료도 굼벵이 약도 없이 그냥 밭만 갈고 비닐만 씌워서 심었다. 아시는 분께 부탁해서 트랙터로 밭을 갈고 두둑까지는 만들었는데 비닐 씌우는  작업을 1주일을 넘게 하고 병이 났다. 그래도 고구마를 심기 위해서 퇴근을 밭으로 하고 주말을 밭에서 보냈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도 아닌데 왜 그리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땅을 놀리면 큰일 난다.'는 부모님의 말씀이 세뇌되어 있다가 농사지을 땅을 보는 순간 농부의 딸인 것을 깨닫게 되었나 보다. 며칠이 지나고 그곳은 고구마 밭으로 변했다.


고구마는 조금 가물어도 잘 사는데 그 해 너무 가물어서 반은 죽고 반만 살았다. 그리고 풀밭인지 고구마밭이었는지 모를 정도로 풀이 많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고라니가 와서 살면서 고구마를 먹고 똥을 싸서 영역표시를 하는 고라니에게는 좋은 맛집이 되어 주었다. 그런 나의 고구마밭에도 가을이 왔다. 풀이 너무 많아서 고구마를 캐기 전에 비닐을 벗기는 데도 며칠이 걸렸다. 고구마 농사 때문에 우리 부부는 이혼의 위기를 몇 번이나 넘겼다. 지금도 고구마를 캘 때마다 그때의 이야기를 한다. 수확량은 다른 분들에 비에 절반이었지만 고구마는 정말 맛이 좋았다. 유치원 아이들 체험도 하게 해 주고 지인들에게 선물로 다 돌렸다. 무농약, 유기농을 강조하면서 보내주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언니 고구마 너무 맛있어. 우리 집 고구마랑 맛이 달라. 밭이 다르긴 한가 봐. 엄마한테는 비밀로하고 나한테 몇 박스 팔면 안 돼? 선물하게."

"팔게 없어. 농사가 망했거든. 몇 박스 남은 것 중에 나 먹을 거 빼고 보내줄게."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우리는 고구마를 먹고 자라서 고구마가 맛이 좋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기사 아저씨가 고구마 밭을 최적의 흙으로 만들어준 것이 맞았다.


그 뒤로 나의 고구마 농사는 진화하였고 판매도 가능했다. 하지만 돈으로만 환산한다면 사서 먹는 것이 가성비는 최고라는 결론이 팩트다.


고구마 심는 시기는 보통 어린이날 즈음이다. 5월 초 가정의 달에 모인 가족들이 모여서 고구마를 심는 모습을 지금도 많이 보게 되는데 이 모습은 예전에 우리 가족의 모습이기도 했다. 어린이날 아침에 아빠는 함지박 가득 담긴 고구마순과 삽, 괭이, 비닐을 챙기고 엄마는 막걸리와 미숫가루등 간식과 새참을 경운기에 실었다. 우리 4남매는 경운기에 올라타고 놀이공원 대신 고구마를 심으러 밭으로 달려갔었다.


3월까지 신청을 맞춰야 하는 고구마순 지원비를 신청하러 면사무소를 방문했다. 심는 것은 5월 초에 많이 심는다. 요즘음 빨리 심고 일찍 수확해서 비싸게 파는 경우도 많다. 이 고구마순 값을 지자체에서 일부 지원을 해준다. 지역마다 규정이 있지만 일단 농지가 300평 이상 되어야 신청이 가능하다. 고구마순 외에도 퇴비, 택배비, 농자재 구입비등 많은 지원을 통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귀농을 목적으로 오시는 분들은 300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무리지만 작게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는 여러 혜택을 받으면서 농사의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농촌에 전원주택을 짓고 생활하실 계획이 있다면 300평 정도의 농지를 구입해 보는 것을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3월에 필요한 양만큼 고구마순 지원비를 읍면사무소에 신청하고(무제한은 아님) 고구마순 판매 자로 지자체에 가입한 농민이나 가게에서 구입해서 심고 나서 구매 영수증을 농촌 진흥원에 제출하면 통장으로 지원금이 지급된다.

"여기에 신청서 쓰시고 통장도 주세요."

통장을 안 가져가서 내일 다시 가야 한다. ㅠㅠ


텃밭에 조금 심으려면 고구마순이 1단에 100개 묶음으로 팔기 때문에 난처하다.  이런 분들은 고구마싹을 직접 내면 된다. 작년에 사놓은 고구마가 있다면 알아서 싹이 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것을 꺼내서 수경재배를 하던지 화분에 심고 안에서 키우다가 따뜻 해지면 그늘부터 서서히 밖에 내놓고 키워서 잘라서 심으면 된다.

없으면 고구마를 두 개정도 마트에서 구입해서 위에처럼 키우면 된다.

땅이 없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감자도 고구마도 화분에 재배가 가능하다.


봄비가 멈췄다. 내일 아침에는 마늘 밭에 보온 덮개를 고 출근해야겠다. 바빠지는 3월이 설렌다.

비를 먹은 들판은 점점 덧칠해서 짙어지는 초록 그림으로 변해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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