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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Oct 30. 2023

 월동 양파를 심으며...


10월은 주말마다 자의 반 타의 반 일이 많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일도 쉬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내키지 않지만 가야 하는 여행이 나는 더 일처럼 느껴진다. 사람들과의 단풍구경보다 우리 집에 단풍과 뒷산의 가을을 보면서 낙엽을 쓸고 국화 밭에 풀을 뽑다가 데크에 걸터앉아서 따끈한 차 한 잔 마시는  것이 훨씬 즐겁다.


"아들아, 잠시 나와서 엄마 좀 도와줘."

"허리 아프다면서 뭘 또 하시려고?"

아들이 슬리퍼를 끌고 나오면서 장화를 신고 장갑을 낀 나를 보면서 물었다.

"신발이라도 갈아 신지."

"일을 많이 해야 하나?"

"퇴비만 같이 날라줘."

아들에게 구체적으로 말하면 '힘드니까 조금 사다 먹자'라고 할까 봐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필요할 때 또 부르셔."

아들은 내가 원하는 곳에 퇴비만 옮겨주고 들어갔다.


더 추워지기 전에 양파를 심어야 한다. 마늘은 조금 더 추울 때 심어도 보온 덮개를 사용하면 죽지 않고 월동을 하는데 양파는 다르다. 뿌리를 내리기 전에 얼어 버리면 양파는 폭망이다. 미리 퇴비를 뿌려 놓고 밭을 갈아 놨어야 하는데 다른 일들로 바빠서 미루기도 했고 전처럼 꼭 심어야겠다는 욕구가 크지 않았다.  '꽃씨나 뿌릴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이내  마음을 바꿨다. 심고 기다리고 쑥쑥 성장해서 수확하는 기쁨을 맛보려면 일단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심어야 하는 이유로 발효가 끝나서 냄새가 없는 퇴비를 골라서 렸다. 다음은 삽으로 밭을 파서 엎어야 한다. 들을 부를까 고민하다가 일단 내가 시작을 했다. 얼마 전에 비가 와서 땅이 촉촉했다. 땅을 쉬엄쉬엄 파고 뿌리를 튼튼하게 지켜주는 비료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뿌렸다.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요즘은 비료도 소량으로 팔아서  참 좋다.


"엄마, 또 일해?"

딸이 물을 가지고 나오면서 말했다.

"양파만 심을 거야. 물 마시고 싶었는데 우리 딸 센스쟁이."

"오빠가 가져다주라고 했는데."

쓸데없이 솔직한 건 나를 꼭 닮았다.

"20분  있다가 오빠 나오라고 해. 비닐 씌우는 건 혼자 못하거든."


흙을 쇠스랑으로 두드려가면서 평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정리밭을 보면 추수가 끝나고 만들어 주시던 시루떡이 생각난다.  할머니가 쌀가루와 팥을 삶아서 만든 물을 번갈아 앉히던 손길이 내가 게레로 흙을 고르는 모습과 연상이 되기 때문이다. 시루떡 같은 곳에 구멍이 규칙적으로 뚫린 양파 비닐을 덮었다. 롤을 사면 몇 년을 쓸 수 있다. 마늘용이 따로 있지만 나는 양파용에 마늘도 심는다. 멍이 크고 줄 간격이 넓어서  마늘이나 양파를 촘촘하게 심을 때는 구멍을 더 뚫어서 심으면 된다.

"이렇게 한쪽 발로 비닐을 밟고 양쪽이 팽팽하게 균형이 맞아야  바람 불어도 안 벗겨."

반대쪽에서 흙을 덮는 아들에게  설명을 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았다. 남편에게 했던 말을 똑 같이 하고 있었다.


미리 물을 줬던 모종판 양파를 하나씩 뽑아서 비닐판 하나의 구멍에 하나씩 심었다.

"모종이 잘 뽑히지 않으면 모종판 밑을 손가락으로 밀어주면 부서지지 않고 잘 나온다."

양파 싹을 잡아당기면서 끊어질까 봐 애쓰는  아들에게 설명을 했다.


"엄마, 이제 물 줘요?"

"모종에 물 줬었으니까. 이 따가 해 떨어지면 주자.

한 여름이 아니라 상관은 없지만 사람이고 식물이고 너무 목마를 때 물을 주면 급하게 먹어서 탈이 나거든. 이따가 엄마가 줄게."


양파가 겨울이 오기 전에 뿌리를 잘 내려 주길 바라며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나는 낙엽을 모아서 양파 밭에 뿌려줄 것이다.

이제부터 양파의 운명은
 자연이라는 환경과 양파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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