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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Nov 04. 2023

총각김치 드셔 보실래요?


8월 말과 9월 초 사이는 김장에 필요한 무 씨를 뿌리고 배추를 심는 시기다. 무와 추를 심고 나서 2주 정도 지난 텃밭 한쪽에 총각무씨를 뿌렸다. '내가 김치를 담그지 않더라도 필요한 사람들을 주면 되겠다.'는 생각에 작년에 뿌리고 남은 씨를 모두 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싹이 잘 올라왔다. 점점 자라는 싹을 보면서  출근하면서 한 번  '솎아줘야 하는데' 생각하고   퇴근 시간에 텃밭을 보면서 '솎아줘야 하는데' 이렇게 미루다 보니 결국  처음 발아한 상태로 다 자라고 말았다. 이미 무의 윗부분이 하얗게 보이기 시작한 무를 보면서 '올해 총각김치는 다 먹었네.'라고 생각을 했다.


양파를 심고 총각무를 뽑기 시작했다. 뽑다 보니 씨앗이 과밀한 상태로 발아를 한 곳은 무끼리 엉켜서 한 덩어리처럼 뽑혔다. 크기도 각각이고 비비 꼬인 양부터  가지각색이었다. 그래도 씨앗이 듬성듬성 뿌려진 곳이랑 지나다가 몇 번 솎아준 곳은 제대로 된 모양과 크기의 총각무가 뽑혔다.


땅을 파서 씨를 뿌리기만 하고 방치하다시피 했다. 아침저녁눈길만 줬는데 이렇게 멀쩡한 무가 되다니 참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웠다.


'마치 시험 기간에 일이 바쁘고 피곤해서  간식한 번 제대로 못 챙겨주고 먼저 숙면에 들었는데 시험 성적 잘 받아 온 아들을 보는 심정 이라고나 할까?' 그런 마음으로 무를 대하고 있었다.


나는 뽑은 무를 창고 처마 밑으로 가져와서 데크에 앉았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잠깐 쉬면서 하늘도 보고 주변에 떨어진 엽과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을 보면서 가을을 즐겼다. 라디오를 틀어 놓고 무를 다듬기 시작했다.


무는 연하고 잔뿌리 없이 깨끗해서 기분 좋게 다듬을 수 있었다. 잔뿌리가 많은 무는 다듬다가 지쳐서 김치 담글 맛이 떨어지도 하는데  이 번에는 이 들어갈 때마다 느껴지는 연한 느낌으로 이미 아삭아삭 씹히는  예상되면서 빨리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돗가로 옮긴 무를 수세로 살살 문질 가면서  무의 뽀얀 얼굴을 들어 날 때까지 씻었다.

"엄마 제 들어와. 이제 깜깜해지려고 하는데.."

딸이  창문을 열고 들어 오라고 재촉했다.

"다 했어 이제 들어갈 거야."


나는 아들을 불러서 다 씻은 무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10년 넘게 간수를 뺀 천일염을 물에 타고 무청을 제외한 무부분만 먼저 소금물에 걸치듯이 담갔다. 그 사이에 샤워를 하고 나와서 무청을 마저 집어넣었다. 절여지는 동안 양념을 만들었다. 집에 있는 양파과일, 새우젓이랑 액젓도 넣고 쌀밥도 함께 휘휘 갈았다. 고춧가루에  마늘, 생강도 넣고 매실청도 첨가하면서 간을 맞췄다.  밭에서 바로 뽑아 온 대파도 썰어 넣었다. 사실 간만 맞으면 맛있는 것이 총각김치라고 생각해서 딱히 신경을 많이 써서 담그지 않아도 익고 나면 다 맛있다. 물론 내 입맛이 그렇게 평가한 것이다.  


먹을 입이 반으로 줄어서 김치도 반으로 줄였다. 

"도 해보고 싶다. 이거 아빠가 좋아하는 김치다."

김치를 버무리는 나를 보면서 딸이 말했다.

"이름이 총각김치야."

"총각?"

"무는 뿔처럼 생기고 여기 초록색을 무청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달린 모습이 옛날 어린 남자아이들

길게 딴 머리 같다고 해서 모양 보고 만든 이름이래. 한자야. 궁금하면 네이버 박사님께 물어봐."

어설프게 들은 총각김치에 대한 이야기를 알려주고 결국 네이버에게 정답을 미뤘다.

"해보고 싶어?  고춧가루가 옷에 다 묻을 텐데 할 거야?"

내가 안 했으면 하는 감정을 실어서 말한 것이 느껴졌는지 잠깐 고민 하던 딸은 다음에 하겠다고 말하고 사진 찍어줬다.

"너는 이런 거 하지 마. 엄마가 계속해줄게. 그리고 엄마가 김치 못 하는 할머니가 되면 김치 장인한테 사서 나도 주고 너도 먹어."

김치장인이 무슨 뜻인지, 엄마는 하면서 자기는 왜 하지 말라고 하는지, 어쩌고 저쩌고 얘기를 하면서 총각김치는 마무리가 되었다. 다 버무린 김치를 통에 꾹꾹 눌러 담고 비닐로 덮은 후에 실외 다용도실로  옮겼다.


내가 담근 김치가 이 있거나 없거나 늘 감탄해 주던 사람이 없는 것은 아쉽지만 며칠 뒤에 한 손에는 갓 구운 고구마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알타리 김치를 들고  행복하게 웃고 있을 딸을 상상하면 위로가 된다.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리는 수고를 거쳐   싹을 키우고 열매를 맺은 자연의 도움을  받아서 나는 오늘 맛있는 총각김치를 나에게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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