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를 1주일 보내고 딸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 담임선생님과 나의 첫 만남도 장례식장에서 문상을 하면서 이루어졌다.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 낯설고 어색할 것이다. 게다가 친구들도 다 아는 아빠가 사망한 이유로 쉬었다 가는 학교 생활을 생각하니 딸의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났다.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갑자기 딸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엄마, 방송이 이상해. 아빠가 극단적 선택을 했데. 아빠는 심장마비잖아."
순간 아들들과 나는 멈칫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극단적 선택이 뭔지 알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질문을 했다.
"내가 다 찾아봤지. 자기가 갑자기 죽는 거잖아. 아빠가 왜?"
"우리 딸 역시 똑똑하네. 엄마가 이따가 자세하게 얘기해 줄게."
나는 밥을 먹는 내내 딸을 위해 가장 합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초등학교 교사인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설명을 했다.
"언니, 너무 고민하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을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잘 못 얘기하면 더 상처받을 수도 있을 거야. 정이는 영리해서 잘 알아듣고 이해할걸. 학교 애들도 그것 가지고 상처 주는 일은 없을 거야. 너무 미리 걱정하지 마."
동생의 말을 듣고 안심이 되면서도 안쓰러운 생각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아빠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 맞아. 왜 인지는 엄마도 잘 몰라. 아빠마음이라서 아빠만 알아. 아빠가 재판 때문에도 힘들어서 술도 먹고 화도 냈던 거 알지?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화나고 속상한 일들이 엄청 많아서 힘들었나 봐. 우리가 싫어서나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빠가 너무 힘들어서 스스로 선택한 거야."
"그럼 방송이 맞네."
"그래도 아빠가 너무 했지?"
"맞아. 약속도 하나도 안 지키고 아빠 마음만 중요했네."
"미안해. 엄마가 아빠를 지켰어야 하는데."
"아빠 마음이 선택한 건데. 아빠도 내가 선택하면 다 이해해 줬잖아."
눈물이 핑 돈 눈으로 내 이야기를 듣다 말고 일어나더니 의자에 걸려 있는 남편의 깔깔이를 집어 들었다.
"엄마, 여기서 아빠 냄새가 나는데. 오빠, 냄새 맡아봐. 이제부터 이 옷이 아빠야 알았지?"
하면서 옷을 들고 냄새를 킁킁 맡으면서 빨래를 하지 말라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오빠들이 '아빠 아빠 '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웃프다는 말을 떠올렸다. 참았던 그리움과 두려웠던 마음을 눈물대신 저렇게 표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만화가 이우영 자식들이구나.'싶었다.
딸은 쿨 한 척 인정했고 깔깔이를 아빠로 부르기로 했지만 학교에 가려면 일찍 자야 한다고 평 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에는 방문을 못 닫게 하는 딸이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한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도 딸이 잠들 때까지 방에 들어가지 않고 기다렸다. 한 참 뒤에 딸이 잠든 모습을 보고 옆에 누웠다. 딸이 늦게 철들기를 바랐는데 1주일 만에 마음이 훌쩍 커버린 거 같아서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심정에 나도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학교생활은 동생의 말이 맞았다. 딸의 학교 생활을 묻는 나에게 '아빠에 대한 질문이나 관심도 아예 없고 예전이랑 똑같아.'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내 딸과 남편을 연결 짓지 않고 본래 친구로만 대하고 있었다. 내가 어른의 시선으로 복잡하게 판단하고 걱정한 것이 미안했다.
며 칠 뒤에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께 톡이 왔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겉으로 보기에는 정이는 밝게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는데.. 학교생활에서 살짝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요. 저희 학급은 알림장을 손으로 쓰지 않고 클래스팅으로 확인합니다. 쓰느라 아이들 힘들어서요. 그런데 정이가 확인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제가 클래스팅 확인 안 했길래 카톡을 보내는데 정이가 카톡 확인도 잘 안 되어서... 부모님도 클래스팅 가입을 희망하시면 제가 초대장을 보내드립니다. 혹시 어머님도 같이 클래스팅 보시면서 정이 챙겨주시면 어떨까 싶어서요... 초대장 보내봅니다.'
1주일 만에 직장에 복귀해서 지친 심신이 허둥대느라 딸의 학교 생활을 챙기지 못한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는 메시지 같았다. 늦둥이 막내가 제일 딱한 이유는 부모와 함께할 시간이 제일 짧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양보다는 질로 승부해야 한다고 우리 부부는 늘 말했었다. 그런데 아빠와의 시간마저 끊어졌으니 내가 몇 배는 더 관심을 갖고 몇 배는 더 행복하게 지내야 한다. 영양제를 털어 넣고 아침밥을 같이 먹고 클래스팅에 가입을 했다. 나는 극성 맞고 장군 같던 엄마로 빨리 돌아가야 한다.
소중하고 소중한 딸아. 원래 엄마로 돌아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