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죽음은 아이들을 철들게 만들었다.
용돈이 적다고 호시탐탐 용돈 인상할 건수만 찾고 있던 둘째가 용돈을 스스로 벌어 쓰겠다고 알바를 알아보고 있었다.
"엄마, 나 알바하려고."
"학교적응하고 2학기 때 하기로 했잖아."
"괜찮아. 둘 다 적응하면 되지 뭐."
"그렇게 안 해도 돼."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힘든 일을 겪고 2주 만에 용돈을 스스로 벌겠다는 얘기를 꺼내는 아들이 안쓰러워서 알바를 말리고 싶었다. 그런데 아들의 생각을 꺾을 수가 없었다.
"어디서 할 건데?"
알바 구인 광고를 찾고 있는 아들을 보니 서울이 아닌 집 근처에서 찾고 있는 것이었다.
"알바를 집에 와서 하려고?"
"나라도 집에 와야 덜 쓸쓸하지 않을까?"
1주일에 한 번은 집에 와야겠다는 생각에서 집 근처에서 알바를 찾았던 것이다. 1학기는 학교에 집중하기로 했던 당초 계획을 지키려고 했지만 아들의 생각은 달라져있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마침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는 편의점 구인광고를 찾아냈다.
"너무 힘든 거 아니야?"
"하루 집중해서 하고 일요일은 쉬면서 과제하면 되니까 괜찮아. "
"엄마 생각엔 무리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돈도 벌고 잡생각도 없어지고 하루만 쉬면 충분해.
그래야 월요일부터 금요일을 야무지게 산다니까. 엄마, 걱정 안 해도 됩니당."
편의점 주인과 전화통화를 하고 바로 면접을 가기로 했다. 알바 경험이 없는 아들은 편의점 알바 경험이 있는 큰 아들에게 약간의 조언을 듣고 중학교 1학년 첫날처럼 긴장된 걸음으로 옷매무새를 만지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 남편은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대학에 가면 아르바이트를 다양하게 해 보면서 경험을 쌓는 기회를 꼭 가져야 한다.'라고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본인은 대학 다니면서 연재를 시작해서 사회경험이 없는 게 후회된다는 이유였다. 그럴 때면 내가 껴들어서 말했었다.
"나는 알바라면 지겨운데. 자취도 지겨웠고 하숙하는 애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자기는 하숙했지?"
"그때 자취방비랑 하숙집값이 차이가 많았나?"
"당연하지. 자기는 서울에서 온 브르주아였다고."
"나도 물새는 반지하에서 살아본 적 있어."
"나는 대학 다닐 때도 자취방에서 비만 오면 부엌에 물 펐는데 "
"그러니까 자기는 못하는 게 없잖아."
"그건 맞는데. 하숙할 수 있는 집에 태어났으면 더 잘했을 것 같은데. 아닌가?"
이런 식으로 우리의 대화가 이어지고는 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떠나고 난 지금, 아들의 알바 면접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경험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안 경제를 걱정하는 아들의 선택 같아서 쪼끔 아주 쪼끔 슬펐다. '일부러도 시키는 알바를 뭐 그리 감정이입을 하고 있나.'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내 마음을 쓰다듬었다.
아들이 면접을 끝내고 나오면서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원을 만들어 보였다. 면접에 합격한 아들이 오랜만에 활짝 웃으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 그렇게 웃으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