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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Jan 17. 2024

코카 콜라와 검정고무신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라디오를 켜는 일이다. 직장에서도 라디오를 들으면서 업무를 볼 때가 많다. 그중에  빼놓지 않고 듣는 프로그램이 경제 관련 프로그램이다. 진행 시간은 짧지만 경제의 흐름이나 이해를 돕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오늘 문산법(문화산업 유통법)에 대한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자와 취재 기자의 방송이 시작되었다. 듣다 보니 요즘 추진되고 있는 문산법에 대한 이야기다. 곧이어 남편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라디오 볼륨을 켰다.  일명 '검정고무신방지법'이라고도 불린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문산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예를 든 것이 '코카콜라'와 '검정고무신'이었다

"미국에 코카콜라와 같은 거네요. 잘 될 줄 모르고 팔았다가 낭패 보는 상황이네요. 미국은 검은색 음료 코카콜라 한국은 검정고무신이네요."

진행자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뭔 소리야."

통학차량 운전 중이라서 차를 멈추고 문자를 보낼 수도 없었다.


목에 칼을 들이대고 쓰지 않은 계약서는 무효가 아니다. 그러니까  '계약서를 잘 읽어보고 써라.'는 충고도 좋고 '한 푼도 안 받고 다 넘겼다고? 바보 아니냐?'비아냥도 좋다. 남편은 자신의 작품을 알리고 싶어서 독소조항이 잔뜩 숨겨진 계약서를 써야 했던 신인작가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계약서를 쓰게 된 이유가 단지 개인의 어리석은 판단이라고만 정리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마치 소가 되새김하듯이

하고 있었다.


60쪽이 넘는 판결문도 설명이 어려운데 몇 백 페이지가 넘는 재판 자료를 모든 사람에게 설명할 수는 없다. 나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이다. 갑에게 들으면 갑이 맞고 을에게 들으면 을이 맞는 상황에서 어떤 이야기도 하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오늘 같은 방송이 나오면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친다. 1심에서 계약 해지의 판결을 받아낸 가장 큰 이유는 코카콜라처럼 돈을 받고 양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을 받지 않고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을 맡겼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계약자 간의 신뢰가 깨졌기 때문에 해지가 된 것이다.  


"방송이 다 그래요. 그냥 넘겨요."

스트레스받지 말고 편안하게 생각하라고 위로하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그것이 잘 안 된다. 기사나 방송이 정확한 것, 진실만을 전달하지 않는다는 것은 경험에 의해 이미 알고 있다.


가끔 다양한 방송을 듣는 박식한 분이 타인의 생각이나 의견을 '아니다.'라고 단정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방송이나 기사를 바탕으로 한  그 정보가 명백하게 참이 아닐 때도 있고 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정보에 설득된  바보가 되느니 듣지 않고 바보가 되는 것이 괜찮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문산법'은 2020년 유정주 의원의 발의안과 2022년 김승수 의원 발의안을 반영해 만든 대안 형태의 법안이다. 남편의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국회와 정부에서 창작자 보호를 취지로 적극 추진하게 되었다.


'문산법'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작가들을 위한 법안이 분명하다고 들었고 그래서 '검정고무신방지법'이라는 이름에도 크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작가들이 속한 협회와 단체에서도 반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디오가 끝나고 '문산법' 관련 보도를  검색하고 주변 작가들에게도 문의를 해 보았다. 내가 아는 작가들은 플랫폼에 자신의 작품을 빼앗겼던 분들도 있어서 법안에 대해서 긍정적이었지만 기사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작가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무료 보기'나 '할인' 등의 비용을 플랫폼과 업체에 부담하라는 것이라서 이름이 알려져 있고 매출이 보장된 작가가 아니면 프로모션을 받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신인작가들에게는 오히려 좋지 않은 환경이고 문화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의 일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을 알게 되었다. 일반인의 눈에는 다 비슷해 보이지만 단체마다 특성과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작가들과 업체들, 작가와 업체를 함께하는 협회등의 의견이 잘 수렴되어서 갑과 을로 갈라진 구조가 변화하기를 바랄 뿐이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면 남편이 없는 상황에서 이 법안이 만들어지고 버려지고는 나와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창작자들에게 필요한 법안이라면 남편의 사건을 계기로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과 같은 구조가 아니면  신인작가들에게 기회가 없을까?

신인 작가들의 글을 볼 수 없는  플랫폼 아무 문제가 없을?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의 입장은 갑일까? 을일까? 각해 보게 된다.


사람도 앞모습과 뒷모습이 다르다. 같은 마을도 앞산에서 봤을 때와 뒷산에서 봤을 때 다르다.

이 법안을 보는 시각이 돈이나 힘의 원리가 만들어준 모습만을 앞세우지 말고 꼭 보아야 하는 면이 생략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상생의 길을 바란다.

적어도  나 같은 가족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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