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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Feb 24. 2024

어느 시골소녀가 놓쳐버린 핫도그


익숙한 튀김 냄새가 가던 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어디서 나는 냄새인지 몸에 감각을 코에 모으고 두리번거렸다.  프랜차이즈 치킨집과 샌드위치가게 근처에서 퍼져 나오는 냄새였다. 점심시간을 앞두고 주문이 많았는지 가게 밖으로 튀김 냄새가 고객을 유혹하고 다. 내가 찾던 가운 냄새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걸음을 옮겼다.


우리 동네는 아침통학버스가  딱 한 대뿐이었다. 초등학교는 걸어서 다녔지만 중학교는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 버스를 타지 못하면 학교에 늦었다.  버스도 집 앞에서 타는 것이 아니라  아랫동네와 윗동네를 이어주는 다리까지 30분 정도  걸어가야 탈 수 있었다. 아침 7시 15분 버스를 타기 위해서 최소 6시에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이른 시간도 문제였지만 버스에 올라타고 나서가 더 문제였다. 그래서 우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자전거를 배웠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오는 날이었다. 매일 이용하던 자전거 대신 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아랫동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윗동네에서 탄 사람들로 만차였다. 우리 동네는 버스가 출발하는 동네와 학교의 2분의 1 지점 위치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고 버스에 올라타는 것이 목표였다. 안내군(우리 동네 버스에는 항상 남자였음.)의 도움으로 버스를 탔지만 버스가 움직 일 때마다 '아~, 어~'하는 3부 이상의  아카펠라 연주가 시작 되다. 버스가 회전을 하면 나의 좌측에 서 있는 난생처음 보는 오빠품에 안겼다가 우측으로 핸들을 돌리면  담배 냄새나는 아저씨 가슴에 기댔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대로 파트너를 바꿔가며 학교에 가야 했다. 정말 참기 힘든 것은 비가 와서 모든 냄새가 견디기 힘든 와중에 남학생 겨드랑이 아래 내 머리가 멈춰 있을 때였다. 진돗개처럼 민감했던 내 코도 콩만 한 작은 키도 원망스러웠다. 나는 몇 번의 곤욕을 치르고 나서 그 버스를 타지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와도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비가 오는 날은  손에 우산을 다른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달려야 했다.

"늦었는데 왜 이렇게  안 묶여."

"비가 많이 오는데 우비 입고 가지."

비닐을 씌운 가방을 자전거 뒤,  짐받이에 묶으면 투덜 대는 나를 보고 엄마가 우비를 내밀었다.

"내가 우비가 어딨어?  설마 아빠 거?"

나는 아빠 우비를 들고 서 있는 엄마를 쏘아봤다.

"윗도리만 입고 바지를 걷고 가면 되지."

엄마는 아빠의 우비를 내 앞에 들이댔다.

"아~  진짜.'

미간에 인상을 잔뜩 주고 우산을 펼쳤다.

"무슨 똥 멋이야. 그냥 입고 가지."

등뒤에서 외치는 엄마의 소리가  멀어질수록 내가  틀리고 엄마가 맞다는 듯 비는 더 세차게 쏟아졌다. 바람이 불어 우산이 뒤집혀도 나는 아빠 우비를 입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 나는 사춘기 소녀였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개의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모였다. 이 친구들 중에 한 마을만 빼고 모두 같은 중학교를 배정받았다. 통학버스가 떠나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자전거 탄 학생들이었다. 집을 출발해서 아랫동네 다리를 건너면 자전거를 초등학교 들을 만나고 조금 더 지나면 다른  초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 합쳐졌다. 출발점을 막 통과한 사이클 선수들 같은 모습으로 학교를 향해 달렸다. 신작로를 차지하고 달리다  차가 지나가면 좌우로 흩어지고 다시 모여서 달렸다. 학교 아래 자전거포 앞자전거를 세우고 언덕 위에 있학교까지 자유로운 줄 서기로 올라갔다. 학교정문까지 자가용으로 와서 몇 걸음에 교문 통과하는 요즘 등교 보습과 사뭇 달랐다.


"호리야~ 같이 가자."

바구니가 달린 예쁜 자전거를 탄 진이가 뒤에서 나를 부르며 따라왔다. 자전거 앞에 달린 바구니 안에 가방을 실은 모습을 보니 자전거 뒤에 밧줄로 묶여있는 내 가방이 불쌍해 보였다. 진이 자전거는 튜브가 아래로 비스듬하게 내려져 있는 여성용이었.  머리 소녀가 바구니에 꽃을 가득 담고  플레어스커트 자락을 너풀거리며 탈 수 있는 공책 그림에 나오는 자전거였다.  자전거는 색상도 모양도  아저씨들이 타는 모델이었다. 탑튜브도 일자형으로 되어있어, 급하게 내릴 때는 발이 걸려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 일쑤였다. 진이는 친한 친구였지만 자전거를 볼 때마다 샘이 났었다.

"달리자."

나는 속도를 내면서 외쳤다.

"같이 가자. 안 늦었어."

미적으로는 친구의 자전거를 이길 수 없지만 성능으로라도 이겨보겠다는 마음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우당탕."

속도를 내고 얼마 후에 짐받이에 묶여있던 책가방이 풀리면서 뒤따라오던 동네 오빠들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

"호리야, 가방 가져가야지. 내가 갖는다."

재미있다고 웃는 소리와 함께 가방을 들고 오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방을 찾으러 갈 수도 모른 달릴 수도 없던 나는 가방이 도착할 때까지  나무처럼 서있었다.

"잘 묶어야지. 도시락도 엎어졌겠다."

가방을 건네주고 낄낄 거리면서 떠나는 오빠들 뒤통수를 보면서 웃기는 뭘 웃냐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밧줄을 잡아당겨 가방을 더 단단하게 묶었다. 그 뒤로도 눈이 오는 날은 길이  미끄러 넘어지고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에 휘청이다가 쓸어지고 날이 좋거나 좋지 않거나 내 가방은 누군가의 손을 통해 전달받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바구니가 없어서라고 집에 와서 엄마께 화풀이했다. 하지만 몇 가지 불편함을 빼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등하교 길은 사계절을 고스란히 마주했던 소중한 시절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오는 길에 내 코를 자극하는 가게가 있었다. 비포장 길로 접어들기 전에 있던 핫도그 파는 가게였다. 가게라기보다 허름한 가정집에 부엌 같았다. 가게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핫도그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핫도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둥근 통에는 갈색 기름이 끓고  바로 옆에는 밀가루 반죽이 붙어 있는 반죽였다. 나무젓가락에 끼어놓은 새끼손가락 만한 찐 분홍색 소시지가 쟁반 위에 쌓여 있었다.

"너는 몇 개?"

주인아주머니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소시지에 밀가루반죽을 둘둘 말면서 말했다.  후라이드치킨의 닭다리 모양을 한 핫도그 하나를 받아서 정성스럽게 들고 자전거를 탔다. 비포장 길로 접어들면 차도 없고 사람들도 없이 천천히 오면서 핫도그를 먹을 수 있었다. 핫도그 값이 50원이었다. 동생들 신경 안 쓰고 혼자 먹는 핫도그는 그 어떤 간식보다 꿀맛이었다.


"야~ 이호리, 핫도그 먹니? 맛있냐?"

핫도그를 한입 물고 행복해하는 것도 잠깐, 언제부터였는지 영수 놈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모른 척 앞만 보고 달렸다.  속도를 내면 곧 따라와서 똑같은 말로 내 심기를 건드렸다. 나만의 소중한 간식시간 즐길 수 없었다. 설마 집까지 따라오겠어. 조금만 참자는 마음으로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았다.

"툭!"

나무젓가락이 부러 지면서 핫도그가  흙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아~"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괴성과 함께 자전거를 던지듯이 엎어트리고 나도 뛰어내렸다.

"꺼져. 안 꺼져?"

돌멩이를 주워서 영수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르고 내 뒤를 따라오던 영수는 갑자기 변해버린  태도를 보고 뒤도 안 돌아보고 자전거 페달을 밟아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 동안 돌멩이를 던졌다. 영수와 핫도그는 그렇게 나를 떠났다.


날 이후,  성질이 고약하다는 소문이 교에 돌았고 영수는 작전을 바꿔 등교하는 나를 향해 2층 교실에서 이름을 불러댔다. 그 뒤로 돌멩이를 던지는 대신 모른척하는 방법을 택했다. 한참 후에 나를 좋아했었다는 말을 풍문으로 들었다.


커다란 비엔나소시지가  들어간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나는 아직도 핫도그를 좋아한다. 명량핫도그, 뉴욕 핫도그 등 다양한 맛에 핫도그들을  어보지만 작은 소시지 밀가루 덩어리였던 그 맛을 느낄 수가 없다. 그날 바닥에 나뒹굴었던 귀하고 소중한 핫도그를 만날 수가 없어서일까?

"영수야, 미안하다. 돌에 안 맞아서 다행이다. 좋아한다고 했어도 돌은 던졌을 거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놓치고 잃었을까?
돌멩이를 던지며 원망을 해도
본래로 돌아갈 수는 없음을
진즉에 배웠는데...

지금 당신이 간절하게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놓치거나 잃지 않도록 집중해야 한다.
욕심이라고 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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