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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Dec 25. 2024

크리스마스 선물


딸은 여섯 살 때부터 오빠를 따라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오빠가 쓰던 책을 물려받았고 오빠를 따라잡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딸이 9년 선배인 오빠를 만만하게 생각한 이유는 피아노학원장님의 말씀이 한몫했다.  

"네가 오빠보다 훨씬 잘 친다."

그 말에 해석을 현재 시점으로 오해했던 딸이 말귀를 알아듣는 나이가 되었고, 결국 작곡과 입시를 준비하던 오빠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오빠를 따라가려면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만큼 딸도 성장했다. 그 뒤로 대충대충 피아노를 치는 것 같았다.  


고학년이 되면서 수학, 영어학원 다니는 또래 친구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딸은 피아노 학원만 다녔다. 친구들보다 시간이 많은 딸은 친구들 학원이 비는 날에는 마라탕집도 가고 코인 노래방, 다이소에서 쇼핑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콩쿠르 한번 나가봐. 무대도 서보고, 목표가 있으면 뭐든 신나거든."

딸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딸은 피아노 선생님과 의논이 끝나고 3개월 가까이 콩쿠르 준비를 했다.

"오빠들도 콩쿠르 나갔어?"

"아니, 오빠들은 쫄보라서 콩쿠르 한 번도 못 나갔어."

같은 곡 반복 연습이 재미없다는 딸을 위로하는 방법으로 오빠들을 기꺼이 팔았다.


콩쿠르 하루 전, 폭설 소식이 들려왔고 차를 집 대신 언덕 아래, 길가에 세워두고 집으로 향했다.

"밤에 눈이 많이 오면 쓸어야 하니까 내일 일찍 일어나."

아들이 둘째와 약속하는 소리를 듣고 잠자리에 들었다. 콩쿠르를 위한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일어나자마자 날씨를  확인했다. 다행스럽게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다. 아들들은 집 앞 언덕에 쌓인 눈을 쓸었다.


나는 딸을 응원하는 아침을 만들기 시작했다. 흰쌀밥과 등갈비 김치찜. 고슬고슬한 흰쌀밥을 좋아하는 삼 남매를 위해 압력솥에 쌀을 안쳤다. 등갈비에 매실과 후추, 간장, 들기름, 맛술을 넣고 조물조물했다. 묵은지 대가리를 뚝 잘라 등갈비를 돌돌 말았다. 먹다가 남긴 토마토를 마지막으로 집어넣고 냄비에 불을 켰다.


음식이 되는 동안 흰 블라우스와 검은 주름치마를 다림질하고 양말과 신발을 꺼냈다. 가장 중요한 핫팩은 가방에 넣었다. 딸에 머리를 하나로 묶었다.

"실수해도 괜찮아. 너는 그냥 막 쳐도 잘하는 거야."

어릴 적 대회에 나가는 내 머리를 묶어 주며 엄마가 했던 말을 딸에게 그대로 하고 있었다. 힘 나는 아침을 먹고 눈길을 걸어 내려왔다. 온 가족이 서울로 향했다.


콩쿠르가 열리는 학교에 도착해 접수를 했다. 벽에는 이미 오전에 참가한 저학년 학생들의 콩쿠르 결과가 붙어 있었다.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 평가라는 점에서 본인이 준비한 것을 잘 치면 된다.

"엄마, 나 심장이 막 튀어나오려고 해. 만져봐."

딸이 뱉어낸 말에 나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종일관 1번으로 치고 싶다고 말했던 이유가 바로 이 떨림 때문이었다.

"오빠가 얘기한 거 생각하고 면 좋고, 아니면 그냥 쳐."

전공자 오빠의 조언을 뒤로하고 대기실로 입장하는 딸의 모습은 떨린다는 말과 다르게 당당해 보였다.


5학년 타임, 딸을 시작으로 콩쿠르가 시작되었고 아이들의 공연이 끝났다. 아들 말에 의하면 딸은 실수했고 8등 정도라고 짐작했다. 실수를 10번 했어도 나는 상관없었다. 작은 손으로 건반을 두드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콩쿠르 참가 과정에서 경험한 모든 것이 딸의 성장과 성취감을 안겨  줬다면 오늘 연주는  성공이다.


그런데 게시판 차상란에 우리 딸 참가 번호가 적혀있었다. 아들 말이 맞았다. 92점을 넘겼고 8명 안에 들었다. 우리는 몇 배 기뻤다.


"아, 진짜 배고프다."

아이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모자라지 않게 주문해서 먹자."

메뉴를 터치하는 삼 남매의 바쁜 손가락을 바라보는 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아이들 셋과 함께하는 외식은 행복했다. 화려한 불빛으로 빛나는 서울 거리를 지나쳐 눈이 덜 녹은 언덕 위, 우리 집에 도착했다.

"아~ 집이 좋다."


아빠를 갑자기 떠나보내고 두 번째 맞이하는 우리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첫 번째보다 덜 슬프고 많이 웃을 수 있어 감사했다. 우리 가족의 희로애락 속에 남편은 항상 소환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아이들과 살면 된다.  


막내딸의 도전과 연주가 우리 가족에 산타클로스가 되어 주었다. 크리스마스 최고의 선물이다. 오늘 도전한 600명이 넘는 아이들이 각자의 집에 산타클로스가 되었을 것이다.


나를 일으키고 웃게 만들어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는 매일 선물을 배달하는 산타클로스와 살고 있었다. 다만 모든 부모들이 매일 방문하는 산타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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