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별생각 없이 듣던 노래가

윤동주 시인과 별 하나에 담긴 것들

by 윤숲





며칠 전 오랜만에 노래방에 갔다.


이런저런 노래를 고르던 중, 같이 간 지인이 '당신의 밤'이라는 노래를 선곡했다.

'맞아, 이런 노래도 있었지.'

그 곡은 예전에 나도 참 좋아했던 노래다.


서정적인 멜로디가 흐르기 시작하고 별생각 없이 스크린에 띄워진 가사를 눈으로 따라가던 나는 어느새 마음이 시리고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노래 속 가사가 이리도 깊게 내 마음에 와닿은 것은 얼마 전 윤동주 시집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나는 과거 이 노래를 수백 번 듣고도 아무것도 몰랐다.

20대의 나는 참 무지하고 무관심하기 짝이 없었나 보다.

내가 음악를 듣는 기준이 어릴 때와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이제는 멜로디뿐 아니라 가사에 담긴 내용을 음미한다는 것이다.

이제야 노래의 메시지가 내게도 전해진다.

너무도 아름답고 슬픈, 주옥같은 가사에 눈물까지 핑 돌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여운이 남아 광복절에 사두었던 시집을 가만히 읽어보았다.

그 안에는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中)


하루에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돌아와 보는 밤 中)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

(쉽게 씌어진 시 中)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을 주으려

숲으로 가자

...

(반딧불 中)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으면 시골 밤이 떠오른다.

까만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과 그 아래 외로이 선 집 한 채.


그의 시가 이토록 아름답게 빛나는 이유는 그 시절의 배경이 너무도 어둡기 때문일지 모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한줄기 흐르는 별빛이 더욱 반짝이고 아름답듯.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와 송몽규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동주: 시도 자기 생각을 펼치기에 부족하지 않아.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살아있는 진실을 드러낼 때 문학은 온전하게 힘을 얻는 거고, 그 힘이 하나하나 모여서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몽규: 그런 힘이 어떻게 모이는데? 그저 세상을 바꿀 용기가 없어서 문학 속으로 숨는 것밖에 더 되니?



그 시절에 쓰인 글들을 보면 그들이 문학 속에 숨었다는 표현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 총칼보다 강력한 호소의 울림을 고스란히 글에 녹여놓았다.


무기를 들어 상대방을 강제로 굴복시킬 수는 있을지언정, 그 사람의 진심을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깊은 울림을 주는 글 한 편은 읽는 이의 사상과 마음과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

무기는 사람을 한없이 무자비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을 손에 든 사람이 마음 먹기에 따라 한낱 고철덩어리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문학은 결코 약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 일제강점기에 대해 공부할 땐 그냥 답답하고 분하기만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그때 그 사람들을 한 번 되새겨본다.

그리고 깨달은 건, 앞으로도 반드시 어려움은 닥쳐올 것이고, 그 속에서 문화의 힘은 중요하다는 것.

어떤 무기로도 죽일 수 없는 고결한 무언가가 이 세상에 분명 존재한다는 것.

그렇기에 문화와 문학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는 것.

문화는 장소를 가리지 않기에 발붙일 땅이 없어도 고유의 문화를 공유하고 지켜낸다면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이 땅에 사는 내겐 너무도 당연한 자유와 나라.

앞서간 누군가의 희생과 사투, 사랑과 열망이 있었기에 그것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우리는 그때를 떠올릴 때, 그들의 뜨거운 마음에 공감하면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가슴 뭉클해지곤 한다.

최태성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우리는 역사에 빚을 지고 살아간다고.


내가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들처럼 자유와 나라의 주권을 위해 몸 바칠 수 있을까?

괜스레 죄책감이 든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서의 나는 어떤가.

후세에 물려줄 세상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물론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겐 쉽지 않은 일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그렇지만 아주 작고 약소한 마음 하나를 전해본다.

민족과 나라를 위해 스러져간 별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


자신의 이름을 부끄러워하며 감옥에서 생을 마친 그는, 그 깜깜한 시대에도 푸른 하늘과 살랑이는 바람과 한줄기의 별빛을 노래했다.

오늘날 그가 남긴 시를 읽어 내려가는 나의 마음속에 그 순수한 아름다움이 깊숙이 사무친다.


오늘은 밤은 '당신의 밤'을 들으며 잠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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