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에서 만납시다
오후 12시에서 1시쯤 되면 집 앞에 커다란 차 한 대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택배차다.
열어둔 창문 밖으로 한여름 무더위에 땀을 비 오듯 흘리는 택배기사님이 보인다.
우연히 처음 그 모습을 보았을 땐, 너무 더워 보여서 걱정이 될 뿐이었다.
다음날 그다음 날에도 항상 같은 시간에 택배차는 온다.
내리쬐는 햇볕, 찝찝한 습기와 온몸을 적시는 빗물.
궂은 날씨는 그에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라면 단 하루도 해내지 못할 것 같은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활기를 띄며 일할 수 있나.
어느 순간 그분에 대한 걱정은 존경이 되어있었다.
김승희 시인의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는 시를 읽었다. 왠지 그 택배기사님이 떠올랐다.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
...(중략)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삶의 풍파를 정면으로 부딪히며 살아간다.
나를 좌절하게 만드는 온갖 일들을 겪고, 이겨내는 과정.
그 중간 어딘가에는 반드시 '그래도'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사는 게 너무 괴롭다. 그래도 이겨내야지.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 번 해봐야지.
열정을 다해 도전했는데 실패했다. 그래도 한 수 배웠으니 감사해야지.
'그래도'를 통해 희망을 얘기한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는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꼈다.
나에게 상사는 내가 실수하지 않는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는 불편한 사람들이었고,
동료는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위치지만, 적당히 선을 그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관계를 적절하고 문제없이 유지하는 게 피곤하고 힘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퇴사하고 나서, 사회에서 한 발짝 물러나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구슬땀 흘리며 집집마다 기쁨을 전하는 택배기사님, 매장 한편에 귀여운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는 편의점 점주님, 늦은 밤까지 장사하시면서도 들어서면 '어, 또 오셨네'하며 반갑게 눈주름을 접는 치킨집 사장님.
그들의 일상은 참 아름답다.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나는 내가 얽힌 이해관계와 입장에 매여 그들을 그저 상사로만 직장동료로만 보았다.
이해관계에 갇힌 그 좁은 눈으로 그 '사람' 자체를 보지 않던 나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들을 내려놓고 바라보면 그들도 그저 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인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들은 나와 비슷한 피로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하루를 시작하고, 그래도 사람들을 만나 미소를 건네고,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주변을 상사, 동료라는 관계의 틀에 씌우지 말고 오늘을 함께 시작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면 어떨까?
힘겨운 일상 속, 그래도 오늘 하루를 시작해 내는 것에 성공한 멋진 사람들이라고, 응원해 주는 마음으로 다가가보면 어떨까?
그런 마음가짐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던 관계를 나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와 위로로 바꾸어 줄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해본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장하다.'
가끔 이런 문장을 접하곤 한다.
정말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그래서 이제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는 내게, 살고 싶어 하는 내게 감사하려고 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하루를 시작한 장한 이들을 응원의 눈길로 바라보고 싶다.
그 첫걸음으로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모든 것에서 도망쳤지만, 그래도 또다시 나름대로의 오늘을 열심히 살고 있는 나를 응원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응원한다.
김승희 시집 『희망이 외롭다』에 수록된 시,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