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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키 Nov 18. 2023

엄마의 투병(3)



 여러 번 고비에 고비를 넘긴 엄마는 입원한 지 3개월 만에 2022년 8월 퇴원 아닌 퇴원을 해야 했다. 종합병원에서 3개월 이상은 계속 입원이 어려웠다. 전혀 서 있지도 앉을 수도 목도 못 가누고 콧줄, 링거줄, 산소포화도줄, 소변줄을 달고 있는 우리 엄마를 또 어디로 모신단 말인가~거기다가 엄마는 일주일에 3번은 신장투석을 받아야 했다. 암담했다. 엄마 같은 중증 뇌출혈환자를 받아 줄 수 있는 신장투석과 재활이 가능한 우리가 사는 생활반경 안에 있는 요양병원을 찾아야 했다. 언니들이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지만 조건과 잘 맞지 않고 병실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작은언니가 우연히 본 현수막광고에 나와있는 요양병원에 전화를 걸어봤는데 다행히 입원 가능하고 재활치료에 신정투석까지 가능한 병원이었다. 그 병원 앞을 수없이 지나다니면서 그런 병원(베데*다)이 있었나 싶었다. 


 엄마는 앰뷸런스를 타고 퇴원과 동시에 요양병원 입원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낯선 환경이었지만 간병인여사님의 도움과 정성으로 빨리 적응해 나갔다. 재활치료도 꾸준히 병행 가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눌하지만 말도 조금씩 하시고 잠깐씩 앉을 수 있었고 팔과 손도 움직일 수 있었다. 팔을 움직이게 되자 엄마는 그제야 콧줄의 답답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는지 자꾸 콧줄을 빼서 우리를 힘들게 했다. 결국 엄마 손은 장갑이 채워진 채 침대보호대에 묶을 수밖에 없었다. 또 섬망증세 때문에 밤에 잠을 안 자거나 자꾸 엉뚱한 소리를 했다. 쓰러지기 전까지 치매증세는 없었는데 뇌출혈에 치매까지 온 거 같았다. 


  요양병원에 계시지만 종합병원 외래도 수시로 가야 했다. 간병인 여사님과 함께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엄마를 모시고 외래진료를 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종합병원 몇 번 가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주차부터 만만치 않다. 접수, 대기, 각종검사, 대기, 진료, 대기, 수납...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 멀쩡하다가도 병원만 가면 파김치가 되는 게 다반사다. 


 2022년 12월 그렇게 조심 또 조심했는데 엄마도 코로나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코로나 환자는 요양병원에 있을 수가 없었다. 격리가 가능한 코로나전문병원(강남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이제 좀 좋아지나 싶었는데 코로나라니~엄마가 그동안 무수하게 넘겨 온 고비처럼 이번 코로나도 잘 견뎌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한 달 정도 후 해를 넘겨서 2023.1월 무사히 퇴원을 했지만 엄마의 상태는 많이 안 좋았다. 말은 더 어눌해지고 운동기능은 많이 떨어진 상태였고 더 빼짝 마른 상태였다. 다시 만난 간병인 여사님과 엄마는 어린 아이 같이 엉엉 울었다고 했다. 


 다시 돌아온 요양병원에서 엄마의 투석치료와 재활은 계속되었다. 재활치료 덕분으로 엄마는 약간 발음이 부정확하지만 말도 잘하시고 혼자는 힘들지만 간병사의 도움으로 약간의 거동도 가능했다. 투석도 일주일에 2번만 할 수 있게 되었다. 씹는 기능도 좋아져서 2023년 4월 세브란스에서 연하검사(목으로 음식물을 넘길 수 있는 검사) 정상 판정을 받고 지긋지긋한 콧줄을 뺄 수 있었다. 입으로 뭔가를 씹는다는 것이 정상인한테는 너무도 쉽고 간단한 일이지만 엄마한테는 정말 중요하고 것이었다. 입으로 음식을 드시게 되니 이렇게 세상 편할 수가 없었다. 간병인 도움으로 조금씩 걸을 수도 있게 되고부터 2023.5월에 소변줄도 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외출을 허가받고 엄마가 살던 시골 집으로 갔을 때 엄마를 본 동네사람들이 다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고 울고 불고 난리였다. 


 올해 안에 퇴원하는 것이 목표인 엄마는 지금 현재(2023.11월)도 요양병원에 계신다. 하체에 힘이 없어서 아직 걷기 능력이 떨어져 아직까지는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워커를 끌고는 혼자 걷기는 가능하시지만 화장실에 혼자 가시는 것은 아직 무리이다. 그 사이 간병인도 다른 분으로 바뀌었다. 먼저 엄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던 간병인여사님은 일이 있으셔서 고향(중국)으로 돌아가셔야 했다. 엄마는 그분과 헤어질 때도 참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분께 다시 한번 감사 아니 큰절이라도 드리고 싶다. 그분을 못 만났다면 엄마도 다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요양병원 사람들도 모두 엄마가 좋아진 것을 보고 놀라워한다. 역시 재활치료가 그만큼 중요하다. 이 글이 뇌출혈환자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누군가가 그랬단다.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엄마처럼 잘 부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고. 엄마가 봄날은 간다를 다시 부를 수 있기를~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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