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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레인지타임 Apr 02. 2021

너를 떠나보내며 (콜라에게)

콜라는 기호식품이다. 콜라 섭취 목적은 영양분 공급이 아닌 심리적, 생리적 욕구 충족이다. 말 그대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불필요'한 식품이다. 더군다나 탄산음료가 함유하는 필요 이상의 설탕은 치아를 부식시키며 다양한 성인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한때 콜라를 등한시해왔다. 콜라를 마시는 경우는 오로지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몇 모금 삼키는 게 전부였다. 그 이외의 상황에서는 어릴 때부터 길러진 습관으로 인해 일절 탄산음료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냉장고에 콜라캔이 최소 2개 이상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마치 앞니가 모조리 부서져 이 사이로 바람이 새듯 내 마음에 냉랭한 바람이 분다. 현재의 콜라는 나에게 기호식품이 아닌 필수품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유학 생활 동안 일어났다. 국과 찌개 같은 국물이 있는 음식을 즐겨 먹어왔던 나는 영국에서 식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이 먹는 일반적인 음식에서 물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애초에 물을 애용하지도 않았다. 영국에서 정수기를 본 적이 손에 꼽는다. 그들은 탭 워터(수돗물)를 마시거나 대개는 그 물을 끓여 차나 커피를 만들어 마셨다. 그들은 물이 굉장히 'Boring'(지루한)하다 라고 표현했다. 그런 그들에게 물기가 있는 음식이 존재할 턱이 없었다.


이러한 나를 구해준, 국물과 같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콜라였다. 콜라의 톡 쏘는 탄산은 나에게로 와 국물의 역할을 했다. 뻑뻑한 음식들로 텁텁해진 내 입 안과 위장을 개운하게 씻겨주었다. 또 콜라는 마치 부모가 갓난아이를 소화시키기 위해 등을 토닥이듯, 내 속을 토닥였다. 나는 비록 이것이 잘 먹고 잘 소화했다는 사실이 아닌 착각에 지나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에 따른 만족감을 무시할 순 없었고 그 허구의 만족감마저 나에게는 소중했다. 그렇게 나는 한국에서 밥 한 술 뜨고 국 한 술 뜨듯, 파스타 한 입 먹고 콜라 한 모금 마셨다. 게다가 콜라 한 캔은 허기진 나에게 포만감을 주었다. 이 또한 일시적이고 착각에 가까웠지만, 돈이 없어 배고플 때 동전 몇 푼으로 내가 찾던 것은 캔 콜라였다. 나에게 콜라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캔이라는 딱 맞는 옷을 입을 때 제일 맵시가 났다. 그리고 그 적당한 양의 마음씨는 너무 과하지도 않고 너무 적지도 않게 나를 감동시켰다. 캔 콜라의 분수를 아는 겸손함은 나를 그것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매력이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듯, 캔으로 차려입은 콜라는 엄청난 밀당의 고수였다.


내가 처한 환경의 변화는 주목하지 않던 것들에 주목하고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낯선 이를 보듯 보았던 그녀는 내 곁으로 와 연인이 되었다. 그녀는 내가 고된 알바에 지쳐 입에 단내가 날 때 그 특유의 청량감으로 날 위로해주었고, 에세이 과제 제출을 위해 20시간 이상 깨어있어 비몽사몽 할 때도 바다 같은 시원함으로 날 깨워줬고, 전날의 과음으로 인해 침대를 벗어나지 못할 때도 기꺼이 내 숙취해소제 역할을 했다. 그녀는 내가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내 곁을 지켰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많은 미군이 척박한 환경에서 식수 대용으로 콜라를 마셨듯, 나도 내 나름의 전쟁터 속에서 콜라를 물 마시듯 마셨다. 


하지만 분명 그녀를 향한 나의 사랑과 의존을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 마치 독이 든 성배를 마신 듯, 건강 손상이라는 내 사랑의 대가가 점점 몸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 이는 점점 본래의 색을 잃어가고 심장은 지나치게 자주 두근거리며 내 위는 역류라는 방식을 통해 그녀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지만, 오랫동안 함께하다가 내가 오랫동안 살아있을 수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콜라에게


한때는 너 없이 못 살았고 지금도 네가 있어 행복하지만, 이제는 너를 조금 놓아주려 해. 내 삶의 아주 중요한 부분과 얽힌 너를 가차 없이 끊지는 못해. 다만, 지나치게 너에게 매달리는 나를 너도 원치 않을 거라고 믿어. 둥글한 곡선이 매력적이며 때로는 날렵하고 때로는 통통한 너의 핏빛 몸매와 영어로 된 그 이국적인 문신을 보며, 너와 함께한 나날들을 추억할 거야. 내가 너를 좋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내가 너의 이름을 잘 못 부른 거 기억하니?. Coke라는 네 이름을 Cock으로 발음하곤 했잖아. 그런 내 발음에 당황 섞인 웃음을 짓는 친구들의 표정도 기억나네. 그때 참 재밌었는데... 그리고 이제야 너의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가 있게 됐는데... 정말 미안해. 이제 너를 만나는 횟수와 열정이 전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걱정 마! 나는 여전히 너를 아주 많이 좋아하니깐. 그리고 네가 나에게 한 행동이 대부분 하얀 거짓말이었던 거 알아. 하지만 그건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아. 내가 신경 쓰는 건 너의 진심이야. 네 방식이 정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를 도와주려 했던 너의 진심을 잊지 않을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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