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 친구들은 내기가 취미다. 으레 취미가 그렇듯, 아주 시시콜콜하고 덧없는 내기를 한다. 스무 살 때는 주로 '술값 빵 내기 배' 대회를 진행했는데, 규칙은 간단하다. 똑같은 양의 소주를 건배라는 똑같은 시점에 들이켜기 시작한다. 그러다 더 이상 못 마시겠는 사람은 테이블에 있는 하얀 티슈를 백기 삼아 조용히 흔든다. 그럼 승자들은 패자의 지갑을 약탈하여 계산대로 진격한다. 돈이 궁했던 그때의 우리들에게, 패배는 아주 큰 재정적 타격을 불러왔으나 이기면 돈걱정 없이 술을 마셨다는 '보람찬' 기분과 변함없는 계좌잔고를 보상받았다. 이 '무식한' 내기의 발로는 우리 주량에 대한 자신감 또는 자만심이었다.
사람들 또한 종종 내기를 한다. 일부 '내기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내기할래?!"라는 말을 추임새처럼 사용한다. 같이 길거리를 걷다가도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제목 맞추기'를 하거나, 식당에서 라면을 먹다가도 이게 0 라면인지 0 라면인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 끝에 한 사람이 라면값을 뒤집어쓴다. 장난스럽든 진지하든, 모든 내기는 당사자들의 각기 다르지만 절대 굽힐 수 없는 확고한 확신으로부터 비롯된다.
런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했다. 주로 10 파운드 또는 맥주 한 파인트를 걸고 내기를 이어나갔다. Leicester Square 역에서 Covent Garden 역까지 지하철 타는 게 더 빠른지 뛰어가는 게 더 빠른지 베팅을 하기도 하고 (두 역 사이의 거리는 0.3km에 불과하다 지옥철 때는 지름길로 뛰는 게 더 빨리 도착하기도 한다), 자기 동네의 KFC가 더 맛있다고 주장하다 시식회를 열어 공개투표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곳에선 내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종목이 있었다. 실낱같은 확신 조차 가질 수 없는 대상 그래서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마치 건강 같은 그 대상은 '비'였다.
내기가 성립되기 위해선 당사자들의 팽팽한 의견 대립이 필수다. 하지만 영국의 날씨는 예측 불가할 정도로 변덕이 심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날씨에 대한 그 어떠한 확신도 가질 수 없고 따라서 내기도 이루어질 수 없다. 마치 북한이 도발적인 언사와 미사일을 쏜다고 해서 우리가 '전쟁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에 내기 걸지 않고 "또 00이네"라고 웃어넘기듯이, 그들에게 '비가 올지 안 올지'는 내깃거리도 아니고 관심사항도 아니다. 비는 만남과 이별처럼 언제 어디서나 문득 찾아온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소풍과 같은 야외활동을 하기 전에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운이 없어 당일날 구름이 드리워져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강수확률은 절대 100%가 아니다. 특히 강수확률이 50% 이하 일 때는 심각한 의견 분열 속에 내기가 싹트기도 한다. 50% 이상의 '비 올 확률'을 믿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것인가 아니면 반도 되지 않는 '비 안 올 확률'에 의지해 부푼 마음과 함께 떠날 것인가. 혹은 제갈량처럼 가부좌를 틀고 바람과 공기의 흐름을 조종하든가.
반면, 영국에서는 이러한 내기가 이루어질 수 없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금요일 기준 런던 일기예보이다. 금요일 오늘 날씨에 분명 해가 떠있지만 그 주위에는 비를 품은 구름이 서성이고 있다. 강수확률은 16%에 불과하나 이 날을 대상으로 비가 올지 안 올지 굳이 내기를 해야 한다면 런던의 내기꾼들은 '비가 오지 않는다'가 아닌 '비가 온다'에 그들의 맥주를 베팅할 것이 틀림없다. 금요일 이후의 날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일주일 내내가 마치 내 수학 시험지 같다.
위의 금요일 같이 비교적 화창할 거라 추측되는 날에도 방심할 순 없는 이유가 있다. '여우비'(sun shower)가 어김없이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 설화에 따르면 '여우비'의 유래는 이렇다. 숲 속의 왕인 사자와 결혼하려는 여우가 있었다. 사자와 결혼하면 자신도 왕 노릇을 할 수 있다고 믿은 여우는 '여우짓'을 부려 사자를 꼬시는 데 성공한다. 한편, 그 여우를 짝사랑하던 구름이 있었다. 결혼식 날, 시집가는 여우를 보며 슬퍼한 구름은 눈물을 흘리지만 결국에는 여우의 행복을 빌며 눈물을 그치고 웃으니, 비가 개고 날이 다시 화창해졌다. 이러한 사연을 담고 있는 여우비는 '볕이 나 있는 날 잠깐 오다가 그치는 비'를 뜻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영국엔 구름이 많을 뿐 아니라 여우 또한 많다. 인간이 차지한 도심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길거리에서도 여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한 번씩 생각한다. 영국에서 비가 자주 오는 이유는 해양성 기후 탓이 아니라 여우가 많은 탓이 아닐까라고.
금요일 이후에는 비의 행진이 예측되는 데, 저것도 항상 사실은 아니다.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만큼 비가 많이 오지는 않는다. 게다가 비가 온다고 해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 동안 억센 비가 쏟아지는 게 아니다. 내리는 비는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고 때로는 먼지 같거나 안개 같기도 하다. 마치 스프레이로 잎에 물 주듯 몇 초 뿌리다 그치는 경우도 빈번하고, 내 동네는 젖었는데 불과 몇 키로 떨어진 옆 동네는 말짱한 경우도 다반사다. 그들은 그 줏대 없는 날씨를 오랫동안 경험하고 습득해왔다. 그 결과, 그들은 비를 대비하거나 피하는 대신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떼쓰지 않겠다고 약속했건만 장난감을 사달라며 바닥에서 뒹구는 아이가 있다. 부모는 아이를 달래다 달래다 결국 포기하고 그 자리를 뜬다. 영국인들에게 비란 이 '심술부리는 아이'다. 끝끝내 그들도 비를 포기해버렸다. 동시에 우산도 포기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비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매일 들고 다닐 수가 없기에 차라리 우산 없는 생활을 선택했다. 웬만한 폭풍급 비가 오지 않는 이상, 영국에서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호우가 아닌데도 우산을 든 사람은 대개 관광객이거나 탈모 또는 중요한 미팅을 신경 쓰는 중장년층일 가능성이 높다. 대신 그들의 집 안에는 건조기가 있으며, 집 밖에서는 비를 그냥 맞거나 후드를 쓰거나 레인코트를 입는다. 이 정도로도 비를 상대하기엔 충분하다. 보통의 비는 짧고 가볍고 옅어서 옷과 몸을 흠뻑 젖게 만들지 못한다, 다만 꿉꿉할 뿐이다. 그들은 꿉꿉하게 살아간다.
영국 생활 동안 나는 우산 없는 거리를 걸었다. 비가 오면 안경을 벗고 그냥 맞았다. 적당한 비를 몸소 맞는 것은 마치 좁은 샤워부스에서가 아닌, 길거리에서 샤워를 하는 듯한 야릇한 기분을 선사했다. 길가의 풀냄새가 비 냄새와 섞여 한층 자연스러운 향기가 나는 촉촉한 거리를, 물기를 살짝 머금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당당히 걸어가는 것은 한국에서는 하기 힘든 이곳에서 만의 재미였다. 집에 도착한 뒤에는 꿉꿉함이 그림자처럼 따라오지만 축축한 옷을 라디에이터에 반듯이 걸쳐놓고 난로 앞에 앉아 따뜻한 차를 홀짝이는 것 또한 나름의 즐길거리였다. 그렇다 보니, 어느새 비를 맞는 것은 나의 습관이 돼버렸다. 문제는 나는 더 이상 영국이 아닌 한국에 있다는 것이다. 비가 와도 무의식적으로 우산을 챙기지 않는다. 물에 빠진 생쥐꼴로 돌아다니다 다음날 침대에 드러누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제발 정신 차리자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 하얀 두피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은데 제발 우산 좀 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