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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레인지타임 Apr 12. 2021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1)

초등학교 때였을 테다. 난 저녁시간에 울리는 집 전화벨이 무서웠다. 내 신경은 온통 전화기를 향했고 벨이 울릴 때는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이 끔찍한 소리를 막기 위해 전화선을 부모님 몰래 빼놓기도 하고, 전화 옆에 꼭 붙어 벨이 울리자마자 수화기를 꺼버리기도 했다. 내가 이러는 이유를 아는 동생들의 입막음을 단속하는 것도 중요한 일과였다. 라면을 끓여주고 컴퓨터 자리도 내주었다. 코 묻은 돈을 코 묻은 동생에게 주어가며 동생들에게 쩔쩔매야 했다. 하지만 완전범죄는 없듯, 나의 '범죄'는 한 번씩 들통이 났고 그런 날이면 내 하룻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부모님이 받으면 안 되는 전화 그 전화는 내가 다니던 학원에서 온 전화였다. 


또 학원을 빼먹었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되면 나는 팬티바람으로 밖에 쫓겨났다. 현관문 앞을 서성거리며 혹시나 이웃이랑 마주치지 않을까 계단 소리에 내 귀를 기울였다. 하필 그때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리면 그때서야 엄마에게 애걸복걸하며 용서를 구했다. 문을 조심히 두드리며 나는 인터폰으로 속삭이듯 말했다. 


"엄마, 이제 진짜 학원 안 빼먹을게 제발 문 열어줘"


지금 그날들을 생각해본다. 날 수치스럽게 망신 주려했던 엄마의 처벌이 가혹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엄마와 아빠에게 가혹했던 것 같다. 나의 짧은 강제 외출은 삼 형제의 교육비를 벌기 위한 부모님의 외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제일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장남의 학원 땡땡이는 아마 부모님께 많이 허무하고 배신스러웠을 테다. 일탈적인 땡땡이라고 표현할 수도 없다. 일주일에 다섯 번 수업을 한 번 갈까 말까 했으니, 나는 전형적인 상습범이었다. 비록 나는 내 만행에 대해 매일 반성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난 이상하리만큼 학원을 안 갔고 저녁엔 식은땀을 흘리며 전화벨이 울리지 않기를 바랐다. 


왜 나는 지독스러울 정도로 학원을 안 갔을까? 차라리 학원을 다녀오면 모든 게 편할 텐데. 긴장과 두려움이 지배하는 밤이 아닌 따듯하고 편안한 밤을 맞을 수 있었을 텐데. 무엇이 어린 나로 하여금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땡땡이로 이끌었을까?. 


그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은 이제 가물가물하다. 정확히 그 당시에 내가 무슨 의도로 학원을 줄기차게 가지 않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현재의 나에 비춰 과거의 어린 나를 유추해보건대, 내가 학원을 빼먹은 까닭은 단순하다. 학원을 갈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까지는 이해가 됐다. 어린이면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하고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고 순순히 복종했다. 근데 돈을 들이면서까지 다녀야 하는 학원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책에 다 나와있는 정답을 학원에서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으니, 나는 학원을 갈 이유와 동기를 찾지 못했다. 학원에서 두 시간을 보내느니 차라리 집에서 한 시간 공부하고 한 시간 동안 스타크래프트(게임)를 하는 게 나에겐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공부를 억지로 하는 데에 있었다. 학교를 강제로 다녀온 후에까지 학원을 또 강제로 가는 건, 어린 나에게 '집전화벨' 보다 더 큰 스트레스였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게 아니라, 학원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학원이 하고 싶을 때 해야 한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자유주의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밀의 '자유론'을 읽어본 적도 없는 초등학생이었지만, 나는 나의 자유를 찾기 위해 땡땡이라는 방법을 취했던 것 같다. 노동자들이 파업이라는 방법으로 저항을 표현하듯. 


나를 괴롭게 하는 학원으로부터 돈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돈을 내고 다닌다니, 나에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집에서 수십 차례 더 쫓겨났고 이웃과 불편한 만남을 가졌다. 마침내, 부모님은 나를 학원 보내길 포기하셨고 나는 스스로 공부를 해야 했다. 근데 신기하게도, 내 학업성적은 학원을 다니던 초등학생 때가 아닌 자습을 한 중학생 때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공부를 내 자유의지에 따라 할 수 있다는 건, 나에겐 학습을 위한 최고의 동기부여였다.


이런 내가 의무교육이 아닌 대학교를 한국에서 다녔으면 과연 졸업이나 가능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출석률이 성적에 반영되는 한국 대학교에서 내가 스스로 공부를 했더라도 애초에 '자격미달'로 F학점을 밥 먹듯 먹었지 않았을까 싶다. '다행히도' 영국 대학교에선 출석과 성적은 관계가 없었고, 저조한 출석률을 달성했지만 무사히 졸업을 했다. 어찌 보면 나는 영국으로 유학을 갔어야 하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공부란 남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혼자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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