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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레인지타임 Apr 18. 2021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2)

위대한 지휘자 중에 한 명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원래 첼로 연주자였다. 연주자 시절 그는 좋지 않은 시력 탓에 악보를 볼 수 없어, 대신 그것을 달달 외워야 했다. 어느 날 지휘자가 갑작스럽게 공석이 돼버렸고, 악보를 외우고 있던 그는 지휘자로서 뜻밖의 데뷔를 하게 된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어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대학교 2학년부터 나는 생활비를 홀로 마련해야 했다. 시공간적 제약 속에, 생업은 수업 결석이란 불가피한 결과를 낳았다. 초등학생인 내가 자유를 위해 학원 땡땡이를 쳤다면 대학생인 나는 생계를 위해 학교 땡땡이를 쳐야 했다. 여기서 나는 땡땡이라는 내 고질병을,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바꾸기로 했다.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공부는 학교를 가지 않고도 혼자 할 수 있다는, 나의 이 독단적인 행태는 영국에서 잘 먹혀들었다. 영국 대학교 시스템과 분위기 덕분이다. 그곳에서는 공부를 강제하기보다는 스스로 하도록 유도했다. '우리는 너희들의 공부 방향과 방법을 알려줄 뿐 결국 공부는 너 홀로 하는 거야'라는 식이었다. 대표적인 예는, 출석과 성적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Lecture(강의) 시간에는 아예 출석 체크를 하지 않았고 Seminar(토론 수업) 때 담당 조교수가 출석 체크를 했다. 하루는, 세미나 수업에서 10명인 한 반에 나를 포함 4명만 출석한 적이 있었다 (보통 일고여덟 명이 출석한다). 나는 그 조교수가 화를 내거나 우리에게 훈계를 할 줄 알았건만, 태연하게 출석체크를 한 후 이렇게 말했다. 


"다들 바쁜가 보군, 이유가 있으면 억지로 수업을 올 필요 없지. 다만 도서관에서, 내준 과제물과 관련 서적을 꼭 찾아 읽기만 하면 돼!"


우리 학교가 미술과 음악 같은 예술 전공이 특화된 대학교라 출석이 더 자유로운 면이 없지 않아 있을 테다. 하지만 내가 다른 학교 다니는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그들의 대답은 다 비슷비슷했다. 학생의 출석률은 세미나를 이끌어나가는 조교수의 수업 열정과 간혹 비례할 뿐, 학교는 출석을 성적평가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자율학습을 유도하는 또 다른 예는 바로 그들의 성적 평가 방식인 에세이다. 정해진 시험 범위를 암기해서 객관식 시험 또는 서술형 시험을 치는 게 아니라, 한 주제에 대해 한 편의 글을 완성해야 했다. 한 편의 에세이를 적기 위해선, 관련 서적과 논문들을 스스로 많이 읽어야 했다. 많이 읽은 후에야, 글을 조금씩 전개해 나갈 수 있었다. 더군다나, 하나의 의견에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 또는 예시를 달아야 했는데, 이것을 레퍼런스(참조)라고 부른다. 제대로 된 레퍼런스를 사용하지 않으면 나쁜 점수를 받거나 아예 과락을 당하기 부지기수였다. 이 알맞은 레퍼런스란 academic(학문적)한 자료를 뜻하고, 이것들은 모두 자기 스스로 읽어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모든 학습자료는 학교 학습포털과 도서관에 있었고, 교수와 조교수도 이 주제는 이러한 책들을 읽어라고 책 리스트만 던져줄 뿐이었다. 칠판에다가 책 내용을 적으며 설명, 해설하는 일은 드물었다. 즉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수업 출석이라기보단 도서관 출석이었다. 


학교를 못 가는 날이면, 나는 시간을 내어 도서관으로 향했다. 억지로 등교를 할 순 있었지만, 나에겐 비효율적일뿐더러 그럴 여유도 없었다. 가령 아침 열 시에 두 시간짜리 강의가 있고, 오후 두 시부터 세 시까지 한 시간 짜리 세미나 수업이 있다. 그럼 나는 열 시부터 세 시까지 학교에 간 후, 오후 다섯 시에 저녁 타임 알바를 가서 열한 시에 마쳐 집으로 오면 열두 시가 됐다. 이런 식으로 생활하면 나의 일상엔 학업과 생업 오로지 이 두 개만 남게 된다. 여유와 재미라는 삶의 요소는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그럴 바엔, 나는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낮 타임 알바를 갔다가 오후 여섯 시부터 여덟 시까지 도서관에서 그 날 학교 공부를 자습한 후에 여자 친구 또는 친구와 놀았다. 그 당시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란, 학교에서 다섯 시간 보내는 대신 두 시간 자습하고 남은 세 시간은 쉬거나 노는 것이었다.


내가 하는 얘기는 방법론일 뿐이다. 나는 이렇게 살았었다. 누구는 말했다. "비싼 돈 내고 다니는 학교 수업을 빼먹으면 아깝지 않니?". 매우 아깝다. 하지만 비싼 돈 내고 다니는 학교를 무사히 다니기 위해서 수업 결석은 나에게 필수였다. 또 누구는 "학교, 일, 집, 학교, 일, 집을 반복하는 생활을 하면 되지 않니?"라고 묻기도 한다. 맞다. 가능했다. 시도도 했다. 근데 그렇게 살면 정말 모든 걸 내려놓고 한국으로 가고 싶었다. 갑갑하고 숨 막히는 삶을 살 자신이 없었다. 숨이 가빠오는 생활의 연속 사이에서 나는 나의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을 만나서 대화하고 웃고 떠드는 일. 이 일만이 내 부식된 삶의 톱니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윤활유였다. 윤활유 같은 그들이 몸소 표현하는 인생 수업도 학교 수업만큼이나 값졌다. 게이인 친구의 슬픈 사랑 이야기, 마약을 팔다 잡혀간 오빠를 둔 친구 이야기, 총을 누구나 살 수 있는 미국을 증오하는 미국 친구 이야기. 이러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학교 공부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나에겐 더 의미 있는 인생공부였다. 


뽀로로는 즐겁게 노래 부른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나도 뽀로로처럼 노는 게 제일 좋았다. 특히 놀 여유가 지극히 부족할 때, 노는 것은 매우 달콤했다. 높은 산을 등반할 때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당이 필요하듯, 빠듯한 나의 삶에도 당이 필요했다. 그 당을 섭취하기 위해, 나는 내가 잘하는 땡땡이를 치고 스스로 공부했다. 근데 재밌는 건, 내가 어릴 때 강제로 다닌 학원을 그만둔 뒤에 학교 성적이 올랐듯 억지로 대학교 수업을 가는 대신 나 스스로 정한 시간에 스스로 공부를 한 2학년 때부터 성적을 잘 받았다. 이 정도면 나의 땡땡이 습성은 나를 괴롭히는 고질병이 아니라 '아픈' 나를 낫게 하는 치료제에 더 가까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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