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on sense is not so common." ("상식은 그다지 상식적이지 않다.") - Voltaire
한 지역에는 지역적 특색이 존재한다. 특정 기후와 환경 덕분에 지역적 특산물이 만들어지듯, 한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뚜렷하고 고유한 문화를 보유한다. 내 고향에선 많은 사람들이 바다회로는 성에 안 차는지 수온이 내려가는 가을이면 향어(민물회)를 찾는다. '언성을 높이는' 대화를 즐겨해 우리의 '다정한' 대화는 말다툼으로 자주 오해받고, 2와 알파벳 E를 다르게 발음하는 우리의 사투리는 간혹 중국어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아 맞나"라는 대답은 "알겠다"라는 의미일 뿐, "아 맞나?"라는 더블체크 성격의 질문이 아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굳이 "어 맞다"라는 '불필요한' 대답으로 우리의 말투를 꼬집는다. 그 색채가 크게 옅어졌지만 다수의 우리들은 여전히 진보적 가치보단 보수적 가치를 추구한다.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벚꽃 축제가 봄의 서막을 울리고, 아구찜(아귀찜)에는 진실로 아귀 반 콩나물 반이며, 형을 형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노골적'이라 '햄'이라 부르는 이 곳. 나는 여기서 우리들과 함께 나고 자랐다.
내가 나의 고향에서 우리끼리 우리의 문화를 향유했듯, 인간은 보통 끼리끼리 논다. 인류는 인류끼리 놀고, 국민은 국민끼리 놀고, 주민은 주민끼리 논다. 더 세분화하면 내가 쓸 공간이 없다. 시공간적 제약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이 유유상종 행태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인간이 유유상종에서 벗어나기 힘들 듯, 그에 따른 부작용에서 자유로워지기 또한 쉽지 않다. 그 부작용이란 바로, 다름을 부정하는 경향이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금언을 남겼다. 이 말의 인과관계를 조금만 비틀면, '보이는 만큼 안다'라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즉 인간은 보아서 알게 된 지식만을 바탕으로 생각한다. 고로 비슷비슷한 것만 보면 비슷비슷한 것만 알게 되고 비슷비슷하지 않은 것은 '불편한' 진실이 되어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많은 인간이 이러한 굴레에 이미 얽혀있다. 혐오할 '권리'라는 이상한 발언을 내세우며 성소수자 퍼레이드를 반대하는 유명 정치인과 그 속사정만 봐도 안다. 동네 뒷산에는 목탁소리가 울리고 그 산에 올라 아래를 보면 십자가가 땅따먹기 하는 마냥 꽂혀 있는데도, '이슬람 사원 건립 반대'라는 팻말을 드는 주민만 봐도 안다. 사고로 눈을 다쳐 장애인 등급 신청을 할 수 있지만 "그런 걸 왜 하냐"며 결사반대하는, 아는 형의 부모님만 봐도 안다. 나 역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의 '우물 밖' 행 비행기를 탑승하기 전까진.
무슨 죄를 말하는 걸까
“라일라야, 너는 아직 어리니까 조금씩 세상을 알아나가기 시작할 거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는 도처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될 테고, 멀리까지 그것들을 찾아 나서게 될 거야.” <황금 물고기>
라일라가 그랬듯 나도 내가 갇혀있던 세계를 떠났다. 다른 문화의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며 나의 세상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수많은 세계의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통감했다. 서울 사람을 만난 후 알게 됐다, 나의 '공격적인' 사투리가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걸. 중국 사람을 만난 후 의문이 생겼다, 1일 1샤워가 깨끗함의 기준이 아니라 '사회의 기준'일 수도 있다는 걸. 이란 사람을 만나고 배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돼지고기가 누군가에겐 실수로 먹으면 일부러 토해내야 하는 끔찍한 죄악인 것을. 특히 다문화로 가득 찬 런던이라는 장소는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지혜의 배움터였다.
런던 거주민의 약 삼분의 일 가량이 외국에서 태어났으며, 200개가 넘는 언어가 사용된다. 44.9%의 영국 백인만이 있을 뿐 나머지 반 이상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의 공간이다. 말 그대로,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다문화적인 도시 중 하나이다. 다름과 차이로 풍성한 이 도시는 시골 촌뜨기인 나에게 아주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처음 런던에 도착한 날을 기억한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내가 탄 우버(택시)의 기사는 영어가 서툰 폴란드 이민자였으며 도착한 기숙사의 관리인은 우크라이나에서 온 젊은 대학원생이었다. 그 날의 첫끼는 기숙사 옆 터키 음식점에서 사 먹은 케밥이었고 다음 날 첫 수업 때 만난 강사는 히잡을 두른 모로코 사람이었다. 런던은 나의 상식과는 많이 다른 공간이었다. 나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두 가지 예를 들자면, 가족과 담배다.
한국에서 통하는, 가족에 관한 '상식'은 영국 런던에선 상식이 아니었다. 내가 한국에서 만난 절대다수의 사람은 다 '토종' 한국인이었다(이것은 대개 사실이 아니다. DNA조상 검사를 해보면 안다). 부모님도 한국인 조부모님도 한국인 그 위의 분들도 적어도 족보상으로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의심할 여지없는 한국인이었다. 하나, 이러한 상식이 그곳에선 통하지 않았다. 가령 흑인인 소피아라는 친구는 알려진 것만 해도 4개 국적의 피가 섞여있다. 아버지는 영국, 어머니는 케냐, 할아버지는 핀란드, 할머니는 나이지리아 사람이었다. 영국 백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부모님을 비롯한 조상님들이 다 영국 사람이라고 간주할 수 없었다. 대개 다른 유럽 국가의 피가 그들 피 속에 섞여있는 게 보통이었다. 다른 것들과 섞이는 것은 그들이 위스키를 얼음과 섞어 마시는 것처럼 당연했다. 국적뿐만 아니라 가족의 형태 또한 제각각이었다. 별거 중이거나 이혼을 한 부모님을 둔 친구들과 그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그들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새엄마와 새아빠는 엄마와 아빠만큼 흔했으며 배 또는 씨가 다른 형제자매들은 형제자매만큼 존재했다. 오히려 조상 대대로 한국인으로만 살아온 부모님과 동생들로 구성된 나의 가족이 그곳에서는 '비정상'이었다.
토종 한국인이란 애초에 어불성설이다
심지어 담배에 관한 사회 통념도 달랐다. 한국 사회에서 담배는 '절대 악'에 해당한다. 흡연을 하면 흡연자의 건강은 둘째 치고, 간접흡연 같은 2차 피해에 우리 사회는 민감하다. 흡연 구역은 한양에서 김서방 찾기만큼 힘들고 그 외의 공간에서 담배를 태우면 벌금도 문제지만 주위 행인들의 따가운 눈초리는 담배와 라이터처럼 필연적이다. 더욱이 길을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는 '길빵'은 아주 저급하고 교양 없는 행동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이 담배에 대한 '당연한' 사실은 어찌 보면 오로지 한국의 것이었다. 런던에서는 그 사실의 형태가 조금 달랐다. 내가 정말로 놀랐던 삶의 장면 중 하나는, 젊은 백인 여성이 한 손으론 아기를 안고 한 손으론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었다. 지금도 그 충격이 생생하다. 물론 건물 안에서의 흡연은 불가능했지만 건물 밖 어디서든 담배를 피우는 건 '상식적'이었다. 인산인해인 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루는 펍 야외 테라스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야외 테라스니 당연히 담배를 필 수가 있었고 비흡연자들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 너무 생소했던 나는 함께 있던 비흡연자인 친구에게 물었다.
"너희들 담배도 안 피우는데 이렇게 담배 연기 마시는 게 싫지 않니? 간접흡연 문제도 있고... 한국에서 이러면 큰일 나는데"
"어... 근데 담배 피우는 건 흡연자 권리인데 내가 뭐라고 하겠어. 더군다나 담배 연기를 흡연자처럼 하루 종일 마시는 것도 아니고 그들에 비하면 아주 잠시일 뿐인데 뭐. 그리고 밖이면 연기가 다 흩어지잖아. 간접흡연 때문에 건강이 신경 쓰이면 애초에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으면 안 되지 안 그래? 하하".
그들에겐, 흡연은 개인의 자유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간접흡연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상식은 통했지만 그에 대한 기준은 또 달랐다. 밖에서 잠시 맡는 담배 냄새는 그들에겐 간접흡연이 아니었다. 담배 연기로 뿌연 밀폐된 화생방 같은 방에서 호흡을 해야 간접흡연 축에 낄 수 있었다.
나의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 그래서 나의 상식에 물음과 의구심을 던지게 하는 사회. 그곳은 많은 충돌을 가져왔다. 한때는 새로움과 다름의 파도에 맞서 '도대체 무엇이 옳은 건가?'라는 고민을 했다. 그 파도를 거스르며 힘겹게 서핑을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파도 속으로 떨어졌다. 모든 게 편해졌다. 파도가 자연법칙에 의해 끊임없이 밀려들 듯, 새로움과 다름도 '인간 법칙'에 의해 무궁무진하다는 걸 인정하고 그 파도와 함께 수영을 하기로 했다. 이제 나는 그 파도에 맞서는 대신, 그 물결에 맞춰 인생이란 수영을 한다. 더 멀리 더 편하게 더 빨리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순리의 파도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