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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레인지타임 Jul 05. 2021

Dirty talk

난 이제 조금 '더러운' 이야기를 하려 한다. 물론 나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성적인 이야기(Dirty talk)도 아니다. 진짜 dirty talk는 다음 기회에 하고... 대신 나는 유학생활 동안 만난 다른 이들의 '불결'을 말하고자 한다. 깨끗함의 기준이 아주 깐깐하고 '고상한' 한국인의 시각에서, 외국인들의 청결 상태는 매우 불량 그 자체였다. 단 짚고 갈 것은 이러한 사람도 몇몇 있다는 것이다. 절대 일반화하려는 의도는 없다.


내 첫 유학생활은 런던이 아닌 영국 켄트에 위치한 한적한 소도시인 '캔터베리'에서 시작됐다. 그곳에 있는 내가 다닌 어학원에는 정말 네이티브 잉글리시 스피커를 제외한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한국인이 처음 만난 외국인을 신기해하듯, 그들 또한 한국인에 대해 신기해하는 점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에 그들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한국식 '청결'이었다. 


대체적으로 그들은 잘 씻지 않는 편이었다. 아니 그들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한국인은 하루라도 안 씻으면 피부병에 걸리는 사람처럼 너무 자주 씻는 사람이었다. 많은 한국인은 외출을 하기 전 샤워를 하던가 못해도 머리는 감고, 옷이 별로 더러워지지 않았더라도 똑같은 옷을 3일 이상 입는 걸을 삼간다. 그렇지 않으면 "더러워"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집이 아닌 밖에서도 치약과 칫솔을 들고 다니며 양치를 하고, 때를 밀 수 있는 공중목욕탕이 존재하는 것도 모자라 회원권도 있으니 말이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하루 종일 대변을 참고 참다가 꼭 집에 가서 해소한다. 그 이유는 대변을 누고는 즉각 샤워를 해야 되기 때문이란다. 고생도 이런 사서 고생이 없다.


이에 반해, 그들 대부분은 샤워를 매일 하지도 머리를 매일 감지도 않았다. 머리에서는 윤기가 흘렀고 샴푸향이 아닌 진짜 본연의 머리카락 냄새가 났다. 건조한 날씨면 그들의 피부에는 하얀 각질이 눈송이처럼 쌓여가 나로 하여금 세신사가 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갖게 만들었다. 옷은 오물이 묻지 않는 이상 최대한 오래 입었으며, 가까이 가거나 포옹을 하면 몸에선 향수 냄새가 진동했다. 향수의 목적은 악취를 감추기 위함이었고 그들이 향수를 발명, 애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들은 이게 당연한 것이었고 자기 자신이 '더럽다'는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많은 것들이 그렇듯 청결 또한 상대적인 것이었다.


하루는 어학원 오전 수업을 마치고 학원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은 후였다. 나는 집에서 싸온 치약과 칫솔 세트를 꺼내 화장실로 향했다. 양치를 하며 소변을 누고 있는데, 외국인 친구 무리들이 왁자지껄하며 화장실로 들어왔다. 나를 본 그들은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휘둥그레 뜬 채로 나에게 물었다.


"우와 너 지금 양치하는 거야?"

"그래 그럼 이게 막대사탕으로 보이냐?"


그들은 내가 공중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는 것에 놀랐고, 양치를 하면서 소변을 누는 것에 두 번 놀라워했다. 나에겐 일반적이었지만, 그들에겐 양치는 아침에 한 번 그리고 일과를 끝낸 후 집에 가서 한 번 하는 집에서만 하는 행위에 속했다. 게다가 "뭐가 그리 급하냐"며, 양치를 하며 소변기 앞에 서있는 나에게 친구는 손목시계를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아직 점심시간 이십 분이나 남았는데?"


'소변을 누며 양치를 하는 것'. 청결에 민감하고 무엇이든지 '빨리빨리'하려는 효율을 중요시하는 한국 문화가 잘 접목된 전형적인 한국인 다운 짓이다.  


어학연수 생활 중 제일 압권이었던 경험은 여름 동안 일어났다. 여름엔 그들이 땀이란 걸 흘리기 시작했다. 땀이 흘러 곧바로 땅으로 떨어지면 좋으련만, 땀은 그들의 몸에 스며들어 특유의 체취와 혼합된 엄청난 땀냄새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땀은 누구나 흘린다. 근데 그들의 것은 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특히 유럽에서 온 백인들의 서머타임 체취는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종류의 냄새였다. 뭔가 한 달 동안 씻지 않은 암내 같은 캐캐 묵은 냄새라고 해야 하나. 어찌 됐건 그들이 개별적으로 있으면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들이 밀폐된 한 곳에 무리 지어 있을 때 그 파급력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나와 그들이 공유하는 공기는 마치 압박면접처럼 내 숨을 콱콱 조여왔다. 후각은 예민하지만 특정 냄새에 빨리 적응하고 무뎌진다던데, 나의 코는 마치 마약탐지견의 코가 된 듯 멀리서도 그들의 위치와 수를 탐지할 수 있었다.


단체로 연수를 온 백인 친구들이 머무는 기간은 대략 한 달 정도로 짧았다, 하지만 그들의 '여운'은 그들이 떠난 후에도 마치 피시방의 담배 냄새처럼 어학원 안을 낮게 떠다니고 있었다. 이 강렬한 후각의 기억은 그들을 여름 내내 떠올리게 만들었고 지금도 그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그때가 생각난다.


2019년 독일의 한 인종차별 광고가 이슈화 된 적이 있었다. 이 글 제목의 배경화면인 광고 내용은 이렇다. 한 백인 남성이 땀 흘려 정원을 가꾼다. 그 후에 그 땀에 젖은 옷을 한 아시아 여성이 맡으며 황홀해한다. 그리고 그 장면 밑엔 '이것이 봄내음'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아무리 연기라지만 나는 그 아시아 여성이 살아있을지 의심스럽다. 그것도 모자라, 봄내음이란다. 독일에 봄은 없는 듯하다. 내가 알기론 독일의 기후는 열대성도 한대성 기후도 아닌데 참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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