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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레인지타임 Mar 28. 2021

차라리 굶기를 택했다.

 대학교 방학이 시작되면, 나는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 해골이 되어 귀국한 나의 몰골을 보며 내 친구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 당시 내 몰골만 봤을 때, 나는 영국에 공부하러 간 것이 아니라 석탄을 캐러 간 듯 보였다. 살이 쏙 빠져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은 상태가 한국에 있으면 하루하루가 다르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귀국할 때는, 홀쭉이로 들어왔다가 한 달만에 포동이가 돼서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 당시 나는 최고의 고무줄몸무게 능력 소유자였다.


나는 영국에서 반기아의 모습을 취했다. 나는 잘 먹지 못했다. 문제는 못 먹은 게 아니라 안 먹었다는 점이다. 아주 '자발적인' 단식이었다. 나를 단식으로 이끈 것은 헌법수호, 부패척결이 아닌 상실감과 그리움이었다. 그 대상은 헤어진 연인이 아니라 한국 음식이었다. 한국 음식이 아니면 아무것도 먹기 싫었다. 중국 음식이나 일본 음식은 감지덕지였지만 그 이외의 다른 문화권 음식들은 정말 먹기 싫었다. 한국 음식을 사 먹거나 만들어 먹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자주 사 먹기에는 너무 비쌌고(김치찌개와 밥 한 공기가 대략 만 오천 원), 한국 식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자니 그것이 오히려 더 비쌌다. 부모님께 한국 음식 좀 보내달라 하기도 싫었다. 받아봤자 달라질 게 없었다. 며칠 동안만 맛볼 수 있는 한국의 맛은 차라리 나에게 고문에 가까울 테니,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대학 입시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만 해도 그곳의 음식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되니 (학업과 생업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그곳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튀기면 책상다리 빼고는 다 맛있다지만, 감자튀김까지 먹기 싫은 지경에 도달했다. 내 최후의 보루였던 감자튀김을 잃은 후에, 내가 먹을 수 있는 그곳의 음식은 몇 남지 않았다. 그래서 정 배고프면 값이 싼 토스트나 라면을 입으로 쑤셔 넣었다. 그것마저 싫증 나는 날엔 하루 종일 빈속으로 있다가, 저녁에 그나마 한국음식보다 값싼 중국음식을 사 먹었다.


그곳의 음식은 내 입맛과 많이 달랐다. 그곳 사람들은 담백한 음식을 주로 먹었다. 맵고 짠 음식에 길들여진 나에게 그들의 음식은 맹물과 다름없었다. 그들의 식재료도 제한적이었다. 한 끼에 보통 많으면 두세 가지의 식재료를 먹었다. 빵과 과일을 먹던가, 샌드위치를 먹던가, 파스타를 먹던가 이런 식이다. 밥, 국, 반찬들로 이루어진 한 끼에 여러 가지 식재료가 있는 한국의 식단과는 많이 달랐다. 그에 따라 메뉴에도 한계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김치라는 식재료로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김치찜과 같은 많은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이와 다르게, 영국에서는 감자라는 식재료로 으깬 감자, 튀긴 감자. 고기는 스테이크에 소스만 바뀌는 이런 식이었다. 그들은 다른 식재료와의 조화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 재료 본연의 맛을 즐겼다. 언젠가 같이 밥을 먹던 내 친구 해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왜 식사할 때 감자를 아직 씹고 있는데 고기를 입에 집어넣니?".

"뭐 어쩌라고?".

"아니 그렇게 먹으면 감자랑 고기랑 섞여서 맛이 이상해지지 않니?".


그들은 타인종과의 조화, 다양한 문화들의 조화 같은 것에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음식의 조화는 그들의 노력 대상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애초에 먹는다는 행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식사의 목적은 그 본연의 목적인, 배고픔을 달래 일상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함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식사시간에 무엇을 먹을지 행복한(?) 고민도 하며 맛집을 애써 찾아가기도 한다. 왜 괜히 Mukbang(먹방)이라는 영상 콘텐츠의 콘셉트가 한국말에서 유래를 했겠는가. 한국 사람에게 먹는 행위는 허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반대로, 대부분의 영국인은 식사시간에 한국인이 하는 고민과 수고를 하지 않는다. 나와 내 영국인 친구들은 점심시간에 학교에 있는 상점에 가 3파운드짜리 샌드위치와 1.5파운드짜리 커피를 사서 학교 광장에 앉아 먹었다. 이게 일상이었다. 간혹 저녁에 다 같이 식당에 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친구 생일, 과제 제출 마감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해당됐다.


또 한 가지 신기했던 것은, 그들이 가진 마실 것에 대한 관점이다. 그들은 무언가를 마시는 행위를 좋아하며 그것도 일종의 먹는 행위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펍(술집)에 가서 술만 먹는다. 안주는 없다. 한국에서는 안주 없이 술을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안주를 만들어주거나 아니면 최소한 걱정이라도 해주는 미덕이 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술을 마시면 배가 부른데, "왜 굳이 무언가를 먹느냐?"라는 식이다. 음료수도 마찬가지다. 내 주위 친구들은 커피와 콜라 같은 음료수를 달고 살았다. "왜 먹냐?" 물어보니 배가 고파서란다. 처음에는 웃었다. 하지만 나도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다, 배가 고파 콜라캔을 집어 드는 나를 발견한 뒤로는.


유학 전에는 좋아했던 빵을 나는 이제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국밥의 소중함을 알아 신성시한다. 탄산을 왜 먹는지 이해를 못하던 나는 이제 탄산을 줄이라는 의사의 권고도 듣게 됐다. 미슐랭 음식보다 집밥이 훨씬 더 맛있다. 이처럼 유학생활은 나의 식성을 바꿔놓았다. 내가 그곳 음식에 관해 무척 유별났다 라고 볼 수도 있다. 부분적으로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이 나고자란 곳과 다른 환경은 복합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 상황에서, 삶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은 깊은 좌절을 동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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