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참 궁금한 게 많다. 특히 외국에 관한 티브이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 그녀의 궁금증은 아이의 그것처럼 증폭된다. 그날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네모난 상자 속의 비한국인(non-korean)들은 한국인에겐 아주 당연한 것들을 경험하며 번뜩이는 리액션을 발산 중이었다. 그들의 반응에 놀란 엄마는 나를 질문의 시간으로 몰고 갔다.
"쟤들 나라에는 저런 게 없니?"
"에이 없지, 참 재미없는 놈들이라니깐"
"아 그래? 그럼 쟤들은 뭐하고 노니?"
그녀에게 유일한 외국 '전문가'인 나는 나름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답했다.
"맨날 노가리만 까고 있는 거지 뭐"
그곳은 참 재미없는 곳이었다. 문화의 다양성은 풍부했지만, 즐길거리의 다양성은 빈약했다. 주로 카페, 술집, 공원을 중심으로 쳇바퀴 돌듯 여가시간을 돌려나갔다. 그들은 이들 이외의 장소를 굳이 목말라하지 않았다. 삶이라는 그들의 무대에서 주연배우는 대화였다. 무언가를 하는 활동은 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에 불과했다. 그들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즉 그들에게 필요한 곳은 활동의 장소보다는 대화의 장소였다.
'할 것'에 치중되었던 일상을 보냈던 나의 일상은 그곳에선 일상적이지 못했다. 한국인의 활동 반경은 아주 넓다. 똑같고 진부한 대화에 지쳐 갈 때면, 무언가를 하면 된다. 영화관, 당구장, 피시방, 볼링장, 스크린골프에서부터 카페만 하더라도 펫카페, 낚시카페, 만화카페, 보드게임카페 같은 흥미로운 활동의 장소들이 무궁무진하다. '오늘은 어떠한 장소에 가서 무엇을 하지?'라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할 것들을 찾아 헤맨다. 한국인, 우리의 삶이라는 무대에서, 활동은 대화에 버금가거나 오히려 비중이 더 큰 역할을 맡고 있는 듯하다.
이에 반해, 그들은 묻지 않은 것들에 대해 스스로 대답해나갔다. 오늘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의 사소한 디테일에서부터, 그때그때 찰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늘어놓았다. 가령 'How are you?"라고 인사치레 상 던진 나의 말에 그들이 '목도리를 구매한 일'을 이야기한다고 치면, 목도리를 사게 된 동기에서부터, 어디에서 어떠한 스타일의 목도리를 살지 고민하는 과정과 결정한 목도리를 사게 되는 순간을 그때그때의 감정과 생각들을 넣어 최대한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목도리를 산 것에 대해 몇 십분 가량을 이야기할 수 있을 진데, 진지한 고민과 문제와 같은 사생활을 이야기한다면 정말 그 끝이 어디일지 아득하기만 했다.
'아 진짜 나보고 어쩌라고?' '나한테 이 얘기를 왜 하는 거지?' '도대체 하고 싶은 말, 핵심이 뭐야?'라는 사춘기 소년의 반항심 같은 생각들을 감추며 그들의 대화 방식을 인내해나갔다. 그들의 이야기에 졸지 않으려 사이사이에 감탄사들을 넣고 애써 생각해낸 추가 질문들을 제공하며 나의 비밀스러운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진실한 대화의 축에 끼지 못한 나는 마실거리만 축내고 있을 뿐이었다. 친구들의 잔에 비해 확연히 빨리 줄어들어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 나의 잔은 어김없이 내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고 있었다.
내가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건지, 상담사 직업 체험을 하고 있는 건지 처음엔 분간이 안 섰다. "How are you?"의 늪이 무서워 이 말을 던지기도 꺼려했다. 근데 동화(assimliation)의 힘이란 참 무서운 것이어서 어느 순간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닮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나의 요약적이고 결말 지향적인 스토리텔링은 발단과 전개 같은 플롯을 가지게 됐고 내 목구멍에서만 맴돌던 나의 생각과 감정의 말들도 서슴없이 내 입 밖을 떠나 훨훨 날아갔다.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는 의미 없는 이야기가 아닌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일상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들을 그들로 보지 않고 함께 우리가 되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 온 뒤의 햇살처럼 쏟아졌다.
내가 한때 천박하고 경솔하다고 느낀 내 비한국인 친구들의 대화는 사실 가벼울 뿐이었다. 가벼운 이야기들은 화자와 청자가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종종 무겁고 의미 있는 이야기로 진화하기도 했다. 대화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 가벼움들이 모여 더 무게감 있는 소통을 만들어 냈다.
한국에서 나는 "목도리가 없으니 목이 너무 차가워서 목도리를 샀다"라는 한 가지의 단편적인 정보밖에 공유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당시 목도리를 산 '레자'가 늘어놓은 수많은 단편적인 정보를 통해 나는 그는 '전보다 목 상태가 좋지 않다', '어릴 때 어머니가 직접 목도리를 뜨개질 해준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검정과 갈색 같은 단색의 심플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온라인으로 사기보다는 오프라인 구매를 선호한다'와 같은 무수히 많은 단편적인 정보가 모여 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낳았다.
풍부한 활동의 장소들은 역설적이게도 대화와 소통의 빈곤을 의미한다. 생각과 감정 표현에 인색하고 말이 많으면 경박하다고 여기는 우리들은 대화를 참 못하는 듯하다. 대화 능력의 부족은 대화의 대체재를 갈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대체재들은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들로 발현됐다. 우리는 '오늘 뭐 하지?'라며 무언가를 하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고 고민하기보다는 누구와 무엇을 이야기할지를 한 번 고민해보면 어떨까?
내가 따분하다고 여겼던 그들은 사실 내가 따분한 놈이란 걸 일깨워줬다. 그리고 진정한 소통은 '할 말'만 주고받는 게 아니라 '할 말 이상'을 하는 TMI(Too much information)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있는 지금도 친구를 만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항상 "오늘 하루 어땠어요?"로 말문을 연다. 대부분의 여성은 이 말에 잘 대답하지만, 특히 남성들은 당황과 어색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뭐 그냥 집에 있었지', '일 했지'라는 단답을 내뱉는다. 우리는 좀 더 '여자'처럼 대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