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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레인지타임 Oct 24. 2021

오리엔탈리즘

누구에게나 미지를 향한 궁금증이 있다. 확인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확신하려는 경향이 있다. 유럽이 아시아를 바라보는 태도가 그랬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자신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조화하고 동양에 대한 권위를 갖기 위한 서양의 스타일". 과거 제국주의 유럽은 지배자의 입장에서, 아시아는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정립된 관점을 말한다. 즉, '우등한' 유럽이 확인되지 않은 아시아를 '열등한 위치'로 확인하고 확신하려는 관점을 오리엔탈리즘이라 일컫는다. 


쉽게 말하면, 오리엔탈리즘이란 유럽인들이 아시아 문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종차별적 편견을 말한다. 하지만 요즘엔 이러한 편견이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정통 오리엔탈리즘을 접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전과 비해 유럽인들의 인식이 급격하게 변화했다. 북한과 남한도 구분 못하고, 한반도에서 곧 핵전쟁이 발발하거라 믿으며, 엘지와 삼성이 일본 기업인 줄 아는 것도 모자라 한국이 한자를 쓴다고 생각하던 그들이었다. 정말 그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러한 편견들은 불과 몇 년 만에 빠르게 바뀌었다. 김정은의 거처가 북한인지 남한인지 정확히 구분하고, 휴전 상태이긴 하지만 안전하다고 믿으며, 엘지와 삼성이라는 기업을 보유한 기술 강국을 넘어서 한글이라는 고유 언어로 음악, 영화, 드라마를 만드는 문화 강국이라는 것도 안다. 정말 이렇다. 여전히 몇몇 사람은 헷갈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믿고 있다. 


다만 아주 귀여운 오리엔탈리즘은 여전히 만연했다. 농담으로 의도한 것도 있었고 진지하게 의도치 못한 것도 있었다. 


몇몇 친구들은 나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너 태권도할 줄 알지?"


"어, 당연하지 어릴 때 오래 다녔어"


"오~ 그럼 검은 벨트야?"


"어..."


"우와 너 그럼 싸움 잘하겠다. 싸울 때 아무래도 발을 쓰는 게 유리할 것 같아. 그럼 한국 사람은 주먹 말고 다 발로 싸우겠네? 조심해야겠다"


그들은 이게 뭐 엄청나게 대단한 것처럼 반응했다. 아니, 한국 어린이가 영수 학원은 안 다녀도 태권도 학원 다니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그리고 태권도 한 지가 이십 년이 다돼가서, 내 어린 날의 태권도 실력은 지금의 나에게서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단 말이다. 내 발이 언제 허리 이상의 공기를 맛보았는지 까마득하며, 돌려차기를 시도했다가는 내 허벅지 근육이 비틀어진다는 걸 그들은 진정 모르는 표정이었다. 


또 다른 친구들은 다 같이 밥 먹은 후 계산을 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의도된 농담의 성격이 짙은 질문이었다.


"총 얼마 나왔어?"


"나야 모르지"


"너희들 다 수학 잘하잖아, 영수증 보고 스캔하면 바로 계산 가능한 거 아냐?"


"야 너 진짜 뒤지고 싶냐?"


이뿐만 아니라 게임, 컴퓨터, 인터넷, 만화 등 많은 분야에서 그들 각자만의 다양한 오리엔탈리즘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의 무지에 기인한 것도 있지만, 마른 체형에 검은 반곱슬 머리 밑에 안경까지 끼고 있었던 나의 외양이 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부추기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이러한 발언들이 기분 나쁠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러한 편견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문화를 간접적으로 접한다. 오랫동안 직접적으로 아시아 문화를 경험한 소수의 유럽인들을 제외하고는 아시아 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는 사실상 불가하다. 더군다나 아시아에 속하는 국가는 한 두 개에 그치지 않고 무수하다. 아시안 국가들은 각자 미묘해 보이지만 확연히 다른 문화를 향유한다. 아시안인 한국인도 간혹 태국과 타이완을 헷갈려하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문화 차이점을 논해보라 하면 막막하기 마련이다. 서아시아 국가로 넘어가면, 우린 아시아 사람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무지한 게 사실이다. 


그래도 여전히 기분 나쁠 수 있다. 정확히 모르면 입이라도 닫고 있어야 본전이라고 하지 않는가. 내가 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귀엽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이유에는 다른 것이 하나 더 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귀엽고 사소한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선, 나 또한 그들을 편견이 담긴 농담으로 꼬집는 것이다. 나도 맞받아쳐야 피해자 입장이 아닌 동등한 입장이 된다. 사실, 난 그들보다 더 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물론 친한 친구들끼리 다 장난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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