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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Jul 02. 2022

꿈, 그 영혼의 얼굴을 아름답게

어젯밤도 예외 없이 잠을 설쳤다. 수없이 찾아드는 꿈의 홍수 속에서 심신이 가닥가닥 흩어져 버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끝없는 심연 속의 파노라마는 잠을 깨고 나면 몇 조각의 파편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돈 몇 푼 때문에 무진 실랑이를 벌이고,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지저분한 방안에서 무언가를 애타게 찾아 헤매고, 검고 하얀 공간들이 눈앞에서 끊임없이 명멸하는 어지러움 등....


이런 장면들은 그 중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나는 왜 꿈들의 대부분이 이렇게 어둠침침하고 조잡하고 세속적인 것뿐이라는 걸 너무도 잘 느끼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꿈의 색깔이 변질되기 시작한 것은.... 이런 느낌을 갖는 것부터가 이미 오래 전부터 꿈의 병을 앓아왔다는 증거가 아닐까?


소년 시절의 내 꿈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밝은 햇살을 받은 파란 호수가 끝없이 펼쳐지고, 하늘에서 흰눈처럼 쏟아지는 영롱한 별들, 푸른 들판에서 현란하게 춤추는 아름다운 여자들..... 무서운 꿈일지라도 쏜살같이 달리고 달리다 하얀 칼에 찔려 튀어나던 새빨간 피가 눈부셨었지.


프로이드는 꿈을 ‘무의식 세계의 표출’로 설명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 생활은 그 시절의 꿈처럼 일상적인 삶의 궤적을 벗어나 자유분방하게 온 우주를 유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때의 나는 천성적으로 생존 경쟁의 인간사를 거부하곤 했었다. 더 좋은 옷, 더 맛있는 음식, 더 높은 성적엔 관심 없이 혼자 산이나 강을 헤매 다녔고, 잠자는 것보다도 하늘의 별을 쳐다보길 좋아했었다. 그리고 이 땅의 빈한한 생활을 도외시하고 세계 명작을 순례하면서 먼 먼 곳 사람들의 삶 속에 끼여들길 즐겨했다.


그런데 지금의 내 생활은 어떠한가? 그저 하루하루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 아니 그때 그때의 삶을 땜질하듯이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지?


오늘 낮엔 정말로 오랜만에 부드러운 햇살이 빗살처럼 퍼져 내리는 교정의 잔디 위를 홀로 걸어 보았다. 일찍 찾아온 겨울의 찬바람으로 대지는 온통 누런 조락의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다가 몇 안 남은 국화 앞에 멈추어 서서, 오래오래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 때 나는 지금이야말로 피폐해진 영혼을 가꾸어야 할 때라는 것을 아프게 깨달았다.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가 없다.


회복 불능의 날이 오기 전에 자신을 추스려야 한다. 그저 먹고, 입고, 활동한다고 해서 그것이 의미 있는 삶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요즈음의 나는 너무나 단순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귀찮다고 집에만 처박혀 지내면서도 한달 내내 책 한 권 제대로 못 읽고, 누구와 대화를 나누어도 가벼운 사회나 정치 얘기뿐이고, 심지어 매일 매일 생각하는 대부분도 일상 생활의 잡다한 것들뿐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세사의 질긴 줄기에 얽매여 속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모습이라고 할지라도, 소년 시절의 아름다운 꿈, 높은 이상을 잃어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더구나, 세상살이의 깊은 질곡에 빠져 자기 완성이나 삶의 의미에 대해서 고뇌해 보기는 고사하고, 아예 거기서 헤어 나오고자 하는 가냘픈 의지마저 포기해 버린 영혼은 진실로 절망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차츰차츰 너덜너덜해진 영혼은 밤마다 음습하고 추한 얼굴로 꿈을 통해서 나타나,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것이리라. 우리가 몸담고 사는 세상이 시지프스의 그것처럼 아무리 무겁고 끝없이 다시 굴러 떨어지는 바위일지라도, 가만히 그것에 깔려 있는 감옥 속의 자유에 만족할 수는 없다.


오늘부터는 새로운 나를 가꾸어야겠다. 자주 자주 별을 바라보고, 오다가다 지나치는 길가의 꽃 한 송이에도 깊은 애정을 보이자. 아름다운 음악도 찾아 듣고, 눈물 흘리며 책을 읽어보자. 그리고 가끔 가끔씩 어디론가 훌쩍 여행이라도 떠나서 영혼을 얽어매고 있는 세상의 줄을 끊어도 주자.


그리하여 맑고 아름다워진 영혼의 방울방울들이 시냇물 되어 내 온 몸을 기운차게 흐르게 될 때, 나의 꿈도 무지개처럼 찬란하게 퍼져 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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